<23 >조국을 위한 공주의 선택

 이뇌왕은 소가야 왕과 아들에게 꺼둘리는 상태가 될까 두려웠다. 또한, 대부분의 가야연맹 왕들과 장자들이 찬성하는 상태에서 뚜렷한 명분도 없이 그들의 주장을 밀막을 방도도 없었다. 회의는 다시 중지되었다.

회의 도중에 불쑥 일어나 월화공주를 신라에 시집보내는 일을 거론한 뇌주는 부왕에게 혼이 날까 두려워 얼른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뇌왕은 뇌주에게 질책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는 곧장 양화왕비와 월화공주를 집무실로 들게 하였다. 모녀는 이미 시자(侍者)를 통해서 연맹회의 석상에서 나온 이야기를 모두 들어 알고 있었다.

“대왕, 왕들과 뇌주가 공주를 신라왕에게 시집보내라고 주청했다면서요? 연맹 왕들은 그냥 헛소리라고 할 수 있으나 뇌주가 부왕와 나의 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회의석상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답니까? 그 애가 부왕의 자식이 맞는 겁니까?”

양화왕비는 이뇌왕을 보자 핏대를 올렸다. 그러나 지아비 이뇌왕은 응답이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뇌주를 비난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아들 도설지가 신라로 망명한 뒤로 부쩍 눈에 띄게 설치고 다니는 뇌주가 뇌꼴스러웠다.

“소녀는 신라로 시집가는 일에 찬성합니다. 뇌주 오라버니가 천방지축으로 소양배양할 나이가 아닙니다. 평소 이 동생을 생각하는 속종을 오늘 토설했을 뿐입니다. 소녀가 만약 신라왕 김심맥부(金深麥夫)에게 시집을 간다면 반파국과 동맹국들의 안정을 위하여 헌신할 것입니다. 백제 성왕의 큰딸도 심맥부 왕에게 양국의 친선을 위하여 시집 간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신라왕의 후궁이 되었음에도 그 아비의 죽음을 사전에 막지 못한 것은 그녀의 능력 문제입니다. 소녀는 아버님이 백제왕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신라의 보도왕태후는 모후의 배다른 언니이니 소녀에게는 이모가 되십니다. 소녀는 어떠한 경우라도 백제왕의 딸 부여소비(扶餘小妃)처럼 빙충맞게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왕, 모후, 소녀를 신라왕에게 시집 보내주셔요.”

“월화야, 너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모후, 소녀가 언제 함부로 말하는 거 보셨어요?”

“그래도 그렇지. 어찌 부왕과 이 어미의 의견도 들어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양화왕비는 월화공주에게 서운해 했다. 여태껏 딸과 단 한 번도 의견 충돌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왕비는 월화공주가 늘 고분고분하고 착한 딸인 줄 알았었다. 이뇌왕도 딸 월화공주의 말에 기가 막혔다. 공주는 이미 신랑감으로 전부터 신라왕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뇌왕은 공주가 마치 뇌주와 짜고 말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하기는 했으나 가야연맹의 왕들에게 며느리로 보내느니 신라의 왕비가 되는 편이 훨씬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다.

“왕비는 공주가 심맥부 왕에게 시집가겠다면 어찌하겠소?”

“저야 좋지요. 이 아이가 자질구레한 가야 연맹국이나 주변 소국의 왕이나 태자에게 시집가는 것보다야 훨씬 좋지요.”

“부왕, 모후. 서라벌에는 도설지 오라버니도 계시니 마음 붙일 데가 있잖아요. 소녀가 신라왕에게 시집가게 해주셔요.”

“대왕,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이번 기회에 월화를 신라왕에게 시집보내는 일을 공식적으로 공표하셔요.”

이뇌왕은 모녀의 간청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당장 가야연맹의 왕들과 장자들로부터 친 백제 정책을 앞장서 주도했던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라는 압박에 그는 상당한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신라가 아직은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으나, 머지않아 어떤 공세(攻勢)를 취할 것이 분명했다.

가야연맹 회의석상에서 왕들과 뇌주가 제의하여 딸을 시집보낸다는 게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당사자인 월화공주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니 이뇌왕에게는 부담이 크지 않았다.

이뇌왕은 아라가야 왕과 소가야 왕 등 친 신라 정책을 옹호한 인사들을 별도로 불러 밤늦도록 술자리를 가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이뇌왕은 친 백제 정책을 포기하고 친 신라 정책으로 선회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성산가야 왕과 몇몇 장자들은 계속해서 친 백제 정책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친 신라를 주장하는 다수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연맹회의가 다시 열렸다. 회의 주재자인 이뇌왕이 본회의 시작 전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연맹의 여러 왕과 장자들이 건의한 건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인사가 이뇌왕의 입이 열리기를 고대하였다. 그는 잠시 침통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뜸을 들이다 이뇌왕이 입을 열었다.

“나는 간밤에 가야연맹의 여러 왕과 장자들을 만나 우리 가야연맹이 장차 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진지한 토의를 하였습니다. 간밤에 임시로 합의된 사안을 말씀드리니 나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시고 가부(可否)의 결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 가야연맹은 지금, 이 순간부터 친 신라 정책을 취한다.

둘째로 가야연맹을 대표하여 반파국의 월화공주를 신라왕에게 시집보내 예전에 단절되었던 혼인동맹을 부활시키는 데 노력한다.

셋째로 가야연맹은 매년 정월 그리고 신라 왕실에 경사(慶事) 있을 때 신라에 사신단을 보내 조공을 하는데, 상세한 내용은 별도로 각국의 대표들이 모여서 정한다.

넷째로 가야연맹은 신라로부터 그 어떠한 요구라도 적극 수용한다.

이상의 내용을 문서로 기록하여 보관하고 즉시 이행한다.

“대왕, 이의 있습니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성산가야 왕이 일어섰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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