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최광림
어머니,
오늘은 당신의 치마폭에서
달이 뜨는 날입니다
아스라한 황톳길을 돌아
대 바람에 실려온 길 잃은 별들도
툇마루에 부서지는 그런 날입니다
밀랍처럼 곱기만 한 햇살과
저렇듯 해산달이 부푼 것도
당신이 살점 떼어 내건
등불인 까닭입니다
새벽이슬 따 담은
정안수 한 사발로도
차례 상은 그저 경건한
풍요로움입니다
돌탑을 쌓듯
깊게 패인 이랑마다
일흔 해 서리꽃 피워내신
신앙 같은 어머니,
다만 살아온 날 만큼
당신의 고운 치마폭에
두 무릎 꿇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눈물 비친 웃음 한 소절
입김으로 펄펄 날리며
모두가 오래도록 그랬음
정말 좋겠습니다
옛날 시라도 좋다. 시간이 많이 지난 오랜 냄새가 풀풀 나서 더욱 좋다. 반듯하고 커다랗게 뻥 뚫린 길이 아닌 좁고 꼬불꼬불한 볼품없던 황톳길이 너무 좋아서 추석명절날 도시 한복판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이 시를 읽는다.
부모 품안에 있을 때가 자식이고 가족이라고 어느덧 부모님은 다른 나라로 가셨기에 두 무릎 꿇을 수 있는 행운도 없게 되었고 형제들도 늙어서 자기 자식들 건사하기 바쁘고 나 또한 손녀가 태어나서 내 가족 안에 갇혀 버렸다.
눈물 비친 웃음 한 소절 입김으로 펄펄 날리며, 기쁘면서도 슬픈 현실에서 향수만 치마폭 가득 안고 추석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