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뇌주 가야연맹 사신단을 이끌다

 “장군, 아니 태자님, 월화공주님이 신라 왕비가 된다니 정말로 경사입니다. 빨리 가례 올리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제야 우리 반파국에도 봄이 오려나 봅니다. 가야연맹과 신라가 다시 혼인동맹을 맺게 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요?”

항우가 마치 자신이 장가라도 가는 것처럼 좋아하였다.

‘이것은 청년왕 김삼맥종의 뜻이 아닐 것이다. 보도왕태후나 지소태후의 무서운 계산법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태후와 신라왕의 흉중에 어떤 셈속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빨리 그들의 셈법을 알아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반파국 이하 가야연맹과 주변 소국들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야. 도대체 그녀들이 무슨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월화만 괜히 양국 사이에서 불행하게 되는 게 아닐까. 어머니도 신라와 반파국 사이에서 늘 가슴을 졸이며 사셨는데, 월화마저도 같은 길을 걷다니.’

“장군, 어서 드셔요. 안주가 다 식습니다.”
“고마워요. 그대도 드시구려.”

미소(美蘇)가 안주를 집어 월광 앞에 놓았다. 아랑이 피살된 이후에 월광의 딱한 처지를 지켜보던 보도왕태후의 뜻에 의해 신라조정 고관의 딸을 집안에 들였다. 월광은 아직 아랑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남아 있는 상태라 그녀에게 선뜻 정을 주지 못했다.

절륜한 신라왕 삼맥종에게는 이미 한 명의 왕비와 일곱 명의 후비(后妃)가 있었다. 왕비 사도부인 박씨(朴氏)는 각간 박영실(朴英失)의 딸로 동륜(銅輪)과 구륜(九輪) 두 아들을 두었다.

후궁 숙명궁주 김씨는 이사부의 딸이었고, 후궁 보명궁주는 구진(仇珍) 장군의 딸이었으며, 후궁 미실궁주 김씨는 아찬 미진부(未珍夫)의 딸이었다. 또한, 후궁 지도부인 박씨는 왕실 인사 기오(起烏)의 딸이고, 후궁 금진부인 김씨는 1세 풍월주 위화랑(魏花郞)의 딸이었다.

후궁 옥리궁주, 후궁 부여소비(扶餘小妃)도 있었는데 부여소비는 백제 성왕의 딸이었다.청년 왕은 여러 명의 후비 중에서 미실과 보명, 옥리궁주를 총애하였다. 정력이 절륜한 왕은 정사를 보지 않을 때는 후비 세 명을 동시에 불러 주연을 열며, 쾌락을 탐닉하였다.

절세가인이 많을수록 왕에게는 다다익선이었다. 삼맥종 왕은 반파국의 월화공주가 무비일색(無比一色)이라는 소문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생모가 신라공주 출신이라는 데에 왕은 더욱 하해와 같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제신들은 가야연맹 사신단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고, 국혼(國婚)에 흠결이 없도록 하시오.”

지소태후가 의례와 외교사절을 담당하는 관리들을 불러 가야연맹 사신단을 맞을 준비와 왕의 혼례를 차질 없이 하라고 주문하였다. 중신들은 왕의 명령보다 지소태후의 명령을 더 어려워했다. 왕과 보도왕태후는 신하들의 작은 실수 정도는 그냥 넘어가지만 조쌀하면서도 깔밋한 성정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용납하지 않았다.

“서라벌에는 네가 사신단의 대표가 되어 신라에 다녀오너라. 월화공주는 너의 동생이지만 장차 신라의 후비(后妃)가 될 신분이니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사신단은 우리 반파국을 비롯하여 연맹의 고관들과 장자들이 동행할 것이다.

나는 네가 알다시피 몸이 불편하니 장차 반파국 태자의 자리에 앉을 너를 외교적 경험도 쌓을 겸 해서 대표로 임명하는 것이다. 이번 사신단의 목적은 우리 가야연맹이 친 신라 정책으로 방향을 바꾸었음을 알리고 월화공주를 신라왕에게 시집보내는 의식을 올리는 것이다. 절대 실수가 있으면 안 된다.”

“부왕, 사신단 대표는 소자보다 가야연맹 왕 중의 한 명을 지정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는 여러모로 부족한지라…….”

뇌주는 도설지의 분노한 얼굴이 두려웠다. 그가 만약 사신단을 이끌고 서라벌에 갈 경우 도설지나 혹은 항우에게 보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안 된다. 네가 이번 일을 얼마나 잘 성사시키느냐에 따라 태자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네가 대표로 다녀오너라.”

“아버님, 명심 또 명심하여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들을 바라보는 이뇌왕의 얼굴이 밝지 못했다. 신라의 요구에 의한 사신단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풍전등화에 처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고육책에 그는 마음이 퍽 내키지 않았다. 이십여 년 전에 신라와 맺었던 혼인동맹이 신라의 일방적인 조치로 깨지고 금관가야가 멸망하는 것을 목격한 이뇌왕은 아직도 그 당시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지난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연합군이 승리했더라면 내가 이리 고뇌하지 않을 텐데…….”

“대왕, 이미 지난 일입니다. 이번에 뇌주가 사절단 대표로 가게 되면 만사를 매끄럽게 처리할 겁니다. 그냥 맨손으로 가는 게 아니잖아요. 대왕의 금지옥엽 월화공주를 시집보내고 가야연맹과 주변 소국들에서 갹출한 각종 조공물품이 산더미 같잖아요.

오늘은 한 잔 드시고 푹 주무세요. 대왕께서 그동안 밤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어요.”

양화왕비는 뇌주가 자객을 파견하여 며느리 아랑 태자비와 손자를 죽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뇌주가 그 일을 함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월광도 반파국에 있는 이뇌왕과 양화왕비에게 알리지 않았다.

월광이 만약 천인공노할 사실을 알렸다면 뇌주는 이뇌왕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났을 것이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반파국의 태자였던 자신이 신라로 망명하였기 때문에 자식 중에 부왕과 모후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뇌주에게 남동생들이 있었지만, 동기간에 의초도 없고 배려할 줄도 모르는 파락호 같은 존재들이었다. *계속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