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
변종태

납작 엎드리는 게 습성이 되어버린

내일도 해가 뜰 것이라는 기대와

너를 만난 어둠 이후에도

동박새 한 마리 날아와 부리를 씻는

때늦은 채송화 한 송이 피어준다면

몸뚱이 위로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

벌레 한 마리 바퀴에 깔려 죽어 있다

바람도 납작해지기 위해 흔들리는 거지

비틀거리는 건 쓰러지기 위한 준비

세상 가장 낮은 자세로 지구의 자전에 귀를 기울이며

서서히 말라가는 시간

애초에 너의 밤에 나는 없었는지 몰라

어둠을 잘게 썰어대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두운 채 내일로 가는 마지막 열차

어차피 지고 말 것이라는 절망 사이에

손을 담그면 순식간에 흩어져버리는 추억

플랫폼에 기대어 아침을 기다리는 무화과

이마에 입을 맞추고 멀어져가는 잎사귀 한 장

저 자세로 여러 밤을 지세웠겠다

 변종태 시인님의 시를 오늘에서야 자세히 읽는다. 4편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은 젊은 시를 쓰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있음을 엿보고 깜짝 놀랐다.

젊은 시들이 언뜻 보기엔 난해한 것도 사실이지만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여 단순함에서 벗어나 확장된 시들을 쓰고 있고 정확한 골격이 있어서 전체가 연결되는 무늬는 시를 치밀하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는 애인과 헤어지는 장면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납작 엎드린다’는 것은 상대의 처분을 바란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더 이상 연락이 없을지도 모를 이별을 예상하는 화자의 모습일 것이다.

여기서 오는 아픔을 시인은 구구절절 올려놓았다. 이를테면 ‘서서히 말라가는 시간, 어둠을 잘게 썰어대는 빗소리, 어차피 지고 말 것이라는 절망, 무화과 저 자세로 여러 밤을 지세웠겠다.’ 등등 화자의 마음으로 주변에 사물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시적인 구절이 곳곳에 많은데 특히 ‘바람도 납작해지기 위해 흔들리는 거지/ 비틀거리는 건 쓰러지기 위한 준비’는 처절하도록 아름답다.

한 가지 의문은 시의 제목이 보통 명사로 되어 있는데 부사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납작은 두 가지 뜻으로 하나는 말대답을 하거나 무엇을 받아먹을 때 입을 냉큼 벌렸다가 닫는 모양을 말할 때도 쓰이고, 또 하나는 몸을 바닥에 바짝 대고 냉큼 엎드리는 모양을 부사로 사용하는 것으로 ‘납작하다’의 어근이다.

제목을 꼭 '납작'으로 써야 한다면 명사인 ‘납작궁’은 어떨까 감히 상상해 보면서 좋은 시를 한 번 더 읽고 간다.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