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남매의 동상이몽

월화공주가 신라 왕실의 대원신통 계열이라면 왕비가 가르칠 필요 없이 보모(保母)가 가르칠 일이었다. 그러나 가야는 대원신통이라거나 색공(色供)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방술(房術)을 가르치는 어미나 배우는 딸이나 서로를 바라보며 민망해했다. 그러나 중단할 일이 아니었다. 왕비는 모조 남근(男根)과 여곡(女谷)을 끼웠다 뺐다 하며, 공주에게 실전과 같은 교육을 했다.

필요할 때는 왕비가 직접 죽부인을 상대로 실전 같은 자세를 보이며 월화공주에게 이불 아래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체위를 시연해 보였다. 딸이 초야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청년 왕의 혼을 쏙 빼놔야 장래가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착실하게 따라 하는 딸이 한편으로는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음은 용번(龍飜)이라는 자세다. 사내와 여인이 편한 마음으로 심신의 조화를 극대할 수 있으며, 사내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자세란다.’

‘어머니, 꼭 이런 걸 배워야 해요?’

‘왕은 얼굴만 반반한 여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럼, 어떤 여인에게 관심을 두는데요?’

‘왕은 여러 후궁 중에 *합기(合氣)에 능한 여인을 총애한단다. 신라 왕실에는 미실 궁주가 있다. 소문에는 그녀가 지금 삼맥종 왕의 혼을 빼놓고 있다고 하는구나.’

왕비는 혼자서 피식 웃고 나서 잔을 비웠다.

이뇌왕은 양화 왕비가 왜 웃는지 몰라 당황하였다. 혼자서 잘 웃는 왕비가 아니었다. 이뇌왕은 왕비가 자신을 흉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왕은 요즘 들어 부쩍 힘을 쓰지 못하고 왜소해진 양물로 인하여 상당한 중압감을 받아오던 터였다.

* 합기 – 남녀가 육체적 관계를 맺는 일.

“왕비, 뭘 보고 웃는 거요?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며칠 전에 월화에게 초야를 치르는 법을 가르쳤는데, 제법 잘 따라 하더이다. 부전여전(父傳女傳)이라는 말이 실재하는가 봅니다?”

양화왕비가 한마디 던지고 이뇌왕의 눈치를 보았다. 왕비의 대답에 이뇌왕의 눈이 금방 화등잔만 해졌다. 그는 술잔을 비우더니 묘한 얼굴을 하였다.

“모전여전이겠지요?”

“부전여전일 수도 있답니다.”

왕비가 손으로 입을 반쯤 가리고 빙그레 웃어 보이자, 왕도 두 뺨이 발그스름하게 익으며 파안대소했다.

“아무튼, 그 방면에서는 왕비가 가야에서는 최고일 겁니다.”

왕이 양화왕비를 추켜세웠다. 양화왕비와 이뇌왕이 밤늦도록 정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 뇌주도 여인들을 옆에 끼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자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 자신이 사신단 대표로 서라벌에 가면 도설지와 항우를 만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므로 대비를 해야 했다. 도설지는 신라 장군의 신분이기에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지만, 항우는 욱하는 성질이 있어 주의해야 할 인물이었다.

“태자님, 저희도 한 잔 주시어요.”

“태자님, 안주 식어요.”

뇌주는 곁에 있는 해어화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이 평생 심복으로 만들 작정으로 왜나라 무사 히라이(平井)에게 왜의 검법까지 익히게 한 연두와 철수가 죽어 믿고 의지할 만한 수행원이 없었다. 그렇다고 명분도 없이 사신단에 군사들을 붙여 서라벌까지 대동할 수는 없었다. 부왕의 엄명이라 서라벌에 안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이번 일로 인하여 자신이 태자비 아랑과 태손을 죽인 사실이 탄로 나면 그동안 공들인 일이 모두 허사가 될 판이었다. 뇌주는 아무리 머리를 짜내봐도 위기를 탈출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 그거야. 월화, 월화공주를 이용하는 거야.’

“여봐라 지금 당장 월화공주를 이리 모셔오너라. 당장.”

술 시중들던 한 미인이 부리나케 월화공주 궁으로 달려가고 얼마 안 돼서 반파국 최고의 미인 월화공주가 뇌주가 있는 처소에 들었다. 배다른 남매라 궁에서 만나면 눈인사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월화공주도 뇌주가 사신단의 대표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 찾으셨어요?”

“오, 월화공주, 어서 와라. 역시 가야연맹 최고의 미인이 들어오니 방안이 대낮같이 밝아지는구나. 잘 왔다. 같은 아버지를 두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우리가 좀 소원하게 지낸 듯 하구나. 나는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늘 공주를 친동생처럼 생각했었다. 이제 신라왕의 후비가 될 존귀한 몸이니 신라로 가기 전에 만나보고 싶었다.”

뇌주는 평상시와 다르게 월화공주를 무척 살갑게 맞았다. 그는 공주 앞에서 두 손을 비벼가며 비굴할 정도로 아양을 떨었다. 공주는 뇌주의 그러한 행동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싫지는 않았다. 옆에 있던 시비(侍婢)들도 뇌주가 딴 사람처럼 변한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오라버니, 고마워요. 오라버니가 저를 그리 아끼는 줄 몰랐습니다.”

뇌주는 시녀들에게 다과상을 내오게 하고 미주(美酒)도 새로 한 주전자 내오게 했다. 모처럼 만들어진 남매의 오붓한 자리를 물이나 마시며 밋밋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뇌주가 월화공주에게 먼저 술을 따라 주었다. 월화공주는 오라비가 건네는 술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술이 서너 순배 돌자 금방 자리가 화기애애해졌다. 뇌주도 도설지 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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