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월화공주 요지경 속에 들다

 “대왕께서 반파국의 미거(未擧)한 소녀를 받아주시니 감읍할 뿐입니다.”
“저희 가야 사신들은 대왕의 선처에 무조건 따를 뿐입니다.”

신라왕의 온건한 반응에 가야연맹의 사신들은 넙죽 엎드려 절을 하였다. 신라 중신들 틈에는 월광도 있었다. 그는 관산성 전투 때 살려준 이복형 뇌주를 보고 착잡한 기분이었다. 사신단 맨 앞에 뇌주와 나란히 서 있던 월화공주가 한 발짝 나가 신라왕에게 공손하게 절을 하였다.

그녀의 예의 바르고 절도 있는 모습에 왕은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두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사이였다. 월화공주의 모후 양화왕비와 보도왕태후가 자매 사이이니 삼맥종 왕에게 월화공주는 이모뻘이 되었다. 혈기왕성한 왕은 월화공주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오, 과연, 과연 경국지색이로다. 미실궁주나 보명궁주 그리고 옥리궁주 보다 훨씬 오달져 보이는구나. 상아를 깎아 조각한 듯 뽀얗고 깔밋한 얼굴, 늘씬한 신체, 옹골차고 풍만한 뒤태, 눈가에 감도는 요기(妖氣)로 보아 그 일에 뛰어난 재주를 지닌 듯 하다. 과인이 여복(女福)은 있는가 보다. 앞으로 월화공주와 요지경(瑤池鏡)을 자주 다니게 되었구나.’

젊은 왕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앉아서 월화공주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신라왕은 첫눈에 그만 이모뻘 되는 월화공주에게 빨려들고 말았다.

‘말로만 듣던 젊은 신라왕을 보니 과연 호걸다운 면모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색(好色)과 호주(豪酒)의 기질도 다분하다. 나의 몸짓 하나에 조국의 운명이 달려있다. 아니 가야연맹의 생사가 걸려있다. 그러나 두 태후를 보면 앞날이 아뜩하다.

보도왕태후와 어머니가 자매 사이이니 내가 살 길은 오로지 왕태후에게 잘 보이는 수밖에 없다. 왕태후의 총애를 받으면 지소태후와 *심맥부(深麥夫) 왕도 나를 어여삐 여길 것이다. 내가 앞으로 미실궁주나 왕비의 질투와 시기를 뒤로하고 대왕과 어떤 역사를 써나가야 할지 기대가 된다.’

월화공주 역시 삼맥종 왕의 야생마 같은 당찬 모습에 빨려들고 있었다. 잠시 두 사람이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백관들은 멍청한 모습으로 월화공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왕을 보며 헛기침을 하거나 킁킁거리기만 했다.

월광은 왕이 첫눈에 동생에게 빠져 있는 태도에 흥미도 일었지만, 잠자리에서 사내를 후리는데 서라벌에 소문이 자자한 미실궁주나 보명궁주와 어찌 경쟁할지 걱정이 앞섰다. 사신단이 도착한 다음 날 신라궁에서는 화려한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성대하게 혼례식을 마친 왕은 전국에 사면령을 내려 강상(綱常)의 죄를 지은 자를 제외한 모든 죄인을 방면토록 하고, 백성들에게 각종 조세(租稅)를 감면해 주었다. 월광과 뇌주가 월성의 한 전각에서 단둘이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할 말이 많았다.

 * 심맥부 – 신라왕 삼맥종(三麥宗)의 또 다른 이름

“왕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소. 나는 당장 그대의 목을 베어 비명에 간 태자비와 내 아들의 영전에 바치고 싶소. 그러나 경사스러운 일에 흠이 일까 참고 있는 중이오. 나는 신라의 장군이면서 반파국의 태자가 분명하오. 부왕이 아직 나를 태자의 위(位)에서 폐하지 않았으니, 내가 언젠가 반파국으로 돌아오리라 믿고 계신 게 틀림없소. 어젯밤에 월화가 나를 찾아와서 그대를 효자라고 칭찬합디다.

만약 그 애가 아랑과 태손이 비명에 간 배경을 알면 그대를 어찌 생각할 것 같소? 언젠가 그 애가 그대의 만행을 알게 될 것이오. 나는 그대를 형제라고 생각하지 않소이다. 반파국으로 돌아가면 부왕과 왕비께 신라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고하고 나의 사정도 잘 말씀드리시오. 나는 그대를 용서한 게 아니오. 그대와 다시는 대면하고 싶지 않소. 잘 돌아가시오.”

월광의 말에 뇌주는 굳게 입을 다물고 응대가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천근 바위 같은 침묵이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뇌주가 서너 번 한숨을 토해내고 나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관산성에서 베푼 태자의 관용에 고마워하고 있소. 내가 자객을 보내 아랑과 조카를 죽인 일은 지나친 처사였소. 하지만 그대와 양화왕비로 인하여 가비(伽妃)와 내가 나락으로 떨어져 오랜 세월 눈물과 탄식 속에 살아온 것을 알기나 하오? 나 역시 그대에게 용서를 빌 생각은 없소이다. 누구라도 나의 처지가 되었다면 그리했을 것이오. 나는 반파국으로 돌아가 부왕과 두 분 어머님을 모시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오. 태자 따위에는 관심이 없소이다.”

형제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이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 아버지를 두고 있는 배다른 형제간의 비애를 두 사람만 처절하게 감수해야 했다. 두 사람이 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도 몰래 안의 동태를 살피는 인사가 있었다.

‘장군님은 도량도 넓으시지, 저 원수를 왜 살려두시는 거야? 당장 목을 쳐서 원통하게 돌아가신 태자비님과 태손님 그리고 백조와 청조의 한을 풀어드리지 않고. 장군이 안 한다면 내가 저놈의 목을 베어서 비명에 간 분들의 원한을 풀어 줄 것이야. 곧 사신들이 떠난다고 했으니까 서라벌을 벗어나면 저놈의 목을 취할 것이다. 뇌주, 기다려라. 가야로 돌아가는 날이 네놈 제삿날이 될 것이다.’

신라왕의 후비가 된 월화공주는 월화궁주(月華宮主)로 불리게 되었다. 그녀 주변에는 두 명의 왕태후와 일곱 명의 왕비를 포함한 후궁들이 있었으며, 까탈스럽기로 소문난 왕의 여동생 만호부인(萬呼夫人)도 있었다. 만호부인은 오라비인 삼맥종 왕의 큰아들 동륜과 혼인한 사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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