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가야 사신단의 충격

신라왕은 가야연맹의 사신단에게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그들은 약 열흘간의 일정으로 서라벌에 기거하면서 신라의 선진문물을 구경하고 나날이 신장되어가는 신라의 국력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사신들이 특히 관심이 있는 분야는 신라 왕실에서 인도에서 전래한 신앙을 신라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대가람을 짓고 승려를 우대하는 정책이었다. 삼맥종 왕이 월성 남쪽에 새롭게 궁궐을 건축하려고 터를 파게 했는데, 그곳에서 거대한 황룡이 승천하였다.

왕은 그 장소에 왕궁을 짓지 말고 가람을 지으라 하고, 황룡사(皇龍寺)라 명명하였다. 가야 사신들이 서라벌에 오기 이전부터 대역사(大役事)가 진행되고 있었다. 신라 관리들은 그들을 황룡사가 신축되고 있는 현장으로 데리고 갔다. 사신단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사를 보고 기가 질렸다.

그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건물을 짓는 현장을 보지 못했다. 관리의 설명을 듣던 사신들은 부러운 듯 주춧돌과 기둥을 만져보며 탄성을 질러댔다.

“이 가람의 면적은 대략 이만오천 평 정도 되며, 중심을 이루는 건물은 총 구층탑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황룡사를 건립하는 목적은 신라가 이 절을 세우면 이웃 나라가 항복하고 구한(九韓)이 와서 조공하며 왕업의 길이 태평할 것이요, 탑을 세운 뒤에 부처님을 위한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죄인을 구하면 외적이 해치지 못할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가람 한가운데 과거불이었던 가섭불(迦葉佛)의 연좌석(宴坐石)을 안치할 예정인데, 이는 우리 신라가 불국토(佛國土)가 되기를 희망하고 모든 백성에게 불성(佛性)이 깃들기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신라에 그분이 언제 오십니까? 그리고 불성이 무엇입니까?”

가야사신 중 한 명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 폭소가 터졌다.

“부처님은 이미 신라에 나투셨습니다. 여러분들 가슴 속에도 이미 불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야 만백성에게도 조만간에 불성(佛性)이 자리할 것으로 믿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청정하고 번뇌는 객진(客塵)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성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으며 부처의 씨앗, 부처가 될 가능성을 말합니다. 육도(六道)의 틀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로 향할 가능성을 곧 불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라 관리의 말에 사신단은 할 말을 잃었다. 사신단은 황룡사 구경을 마치고 나서 풀이 죽었다. 그들은 말로만 듣던 신라의 힘을 느꼈고, 신라가 머지않아 남삼한을 일통할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되었다. 사신들은 이번에는 월성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시원하게 뻗어있는 주작대로(朱雀大路)를 구경하였다.

대로 좌우로 기와를 덮은 건물들이 즐비한데, 주로 고관대작이나 왕실 인사들의 저택이었다. 저택들 사이사이에 관청으로 보이는 건물의 처마는 하늘로 날아가려고 용트림하는 비룡의 모습이었다. 기둥은 모두 붉은 칠이 되어 있었고, 지붕을 덮은 기와는 청색이나 황금색이었다.

주작대로를 달리는 사륜마차는 황금과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마차 안에는 귀부인이나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타고 있었다. 또한, 대로를 오고 가는 신라의 보통 사람들은 모두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여인들은 오색의 화사한 비단옷과 황금 비녀로 머리를 치장하였는데, 하나같이 천상의 사람들 같았다.

그녀들은 천격스러워 보이는 가야 사신들과 마주치면 미소로 대하며, 길을 비켜주었다. 사신들의 문화적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들은 가야국의 모습과 신라의 외모를 비교해보고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자조 섞인 탄식을 뱉어내기도 했다.

“왕자님, 우리 사신단이 곧 가야로 돌아가야 하는데, 신라와 가야연맹이 혼인동맹에 합의했다는 문서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라가야의 장자가 뇌주에게 물었다.

“외교를 담당하는 신라 관리들이 문서를 넘겨주지 않습니다. 나도 그 문제를 두고 머리가 아프답니다. 신라왕은 겉으로는 우리 사신단을 반기는 척하면서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뇌주의 얼굴에 근심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왕자님, 신라왕과 중신들은 가야연맹 왕들이 직접 서라벌에 와서 신라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충성을 맹세하기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저와 친분이 있는 신라 관리가 넌지시 말해줬습니다.”

소가야 출신 장자가 뇌주에게 귓속말로 속살거렸다.

‘아, 그렇다면 우리가 큰 결례를 범했구나. 어쩐지 신라왕의 낯빛이 퍽 호의적이지 않았다. 월화만 빼앗기고 우리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신라왕을 만나 혼인동맹을 승인하는 문서를 달라고 악다구니를 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 소득도 없이 돌아가면 아버님의 진노가 하늘을 찌를 텐데,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기가 막히는구나. 반파국의 미인만 바치고 그냥 가게 생겼으니…….’

뇌주는 일그러진 이뇌왕의 얼굴을 떠올리며, 진저리쳤다. 신라왕은 비록 나이는 많지 않지만, 매사가 빈틈없는 인물이었다. 모후인 지소태후 슬하에서 배우며 자랐기에 그 역시 지소태후의 깐깐하고 치밀한 성정을 많이 닮아 있었다. 이제야 신라왕의 속내를 파악한 뇌주는 가슴을 쳤다.

이번 일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모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며, 가야연맹 왕들과 장자들에게 비난을 받을 게 뻔했다. 뇌주는 자신의 허술하고 무능한 외교술에 자책하며, 괴로워하였다. 서라벌의 시간이 지루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틀 후 날이 밝기도 전에 가야 사신들은 짐을 챙기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러나 뇌주는 근심 어린 얼굴로 앉아만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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