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빈손으로 돌아가는 가야 사신단

 “대왕님, 그동안 우리 가야연맹 사신단에게 베풀어주신 하해와 같은 은혜에 돈수백배(頓首百拜)하옵니다. 지난 열흘 동안 잘 지냈습니다. 서라벌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선진문물을 견학하였습니다.”

뇌주가 가야연맹 사신단을 대표하여 신라왕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잘 지냈다니 다행입니다. 부디, 잘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월화공주는 과인과 잘 어울리는 성품을 지녔습니다. 과인과 해로동혈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이뇌왕과 양화왕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시오.”

뇌주와 가야 사신들은 신라 조정으로부터 혼인동맹을 맺었다는 징표도 없이 신라왕이 하사하는 선물만 가지고 돌아가야 했다.

“뇌주 오라버니, 저는 왕의 총애를 입고 있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에게 제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주셔요. 제가 신라 왕실 사람이 된 이상 신라에서 반파국을 포함한 가야연맹을 함부로 다루지 못할 겁니다. 요즘은 왕께서 밤마다 제 처소로 오셔서 밤을 보내고 있는데, 그때마다 아버님, 어머니 뜻을 전하면서 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있습니다. 가야연맹에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사신들이 신라왕에게 하직 인사를 마치고 나오자 월화공주가 뇌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반파국에 있는 부왕과 모후에게 전할 말을 뇌주에게 하려고 했다.

”이제는 내 동생이 아니라 신라왕의 지어미가 되셨으니, 왕을 잘 모시고 부디, 가야연맹이 환난에 들지 않도록 힘쓰셔야 합니다. 나와 사신들은 왕후만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월화공주가 이제는 동생이 아니라 신라 국왕의 후비(后妃) 신분이었다. 뇌주는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그녀를 대했다.

”형제자매 사이에 이미 생겨난 은원(恩怨)은 지은 자가 결자해지해야 합니다. 해지하지 못하면 천년만년 역사에 남고 후대에 악명이 남게 되겠지요. 나는 뇌주 오라버니가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 기대합니다. 앞으로는 효도하신다고 하셨으니, 부왕과 두 분 어머님께서도 기대가 무척 크리라 봅니다. 언젠가 좋은 때가 오면 반파국에 갈 것입니다. 그때도 뇌주 오라버니가 나와 편한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도설지가 월화에게 모든 사실을 말했는가 보다.’

뇌주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월화공주가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뇌주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왕후, 사람 사이에 특히, 우리처럼 조상의 뿌리가 다른 형제자매 사이에 생겨난 은원(隱元)은 부모 대에서 맺어지거나 어쩔 수 없는 정치적 관계에서 생겨나기도 합니다. 결자해지,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나는 돌아가서 부왕과 두 모후에게 이번 결과를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왕자를 생산하여 왕후가 신라 왕실에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세우고 두 나라의 우호 관계가 지속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사신단은 삼맥종 왕이 월화공주와 해로하겠다는 말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가야 사신들은 서라벌을 떠나 동남쪽으로 향했다. 신라의 관리들 서너 명이 사신단을 서라벌 외곽지역까지 따라와 전송할 뿐이었다. 사신들은 뇌주의 눈치를 보며, 외교적 성과나 혼인동맹에 관한 이야기를 피하고 엉뚱한 말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가 나흘 전에 주작대로 변에 있는 고급 기루에 갔다가 실팍한 계집을 한 명 후렸는데, 거기가 야들야들하고 말랑말랑한 것이 가야의 계집들과는 전혀 달랐네.”

“가야 년들과 무엇이 다른데?”

“기녀의 앙가슴이며, 살거리가 투실하고 실팍한 둔부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네. 내 온몸이 기녀의 혀에 녹아 흐물거리는데, 그 쾌감이 어찌나 강하고 짜릿하던지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네. 계집이 거꾸로 올라타 양물을 물고 하얀 뒤태를 흔들어 댈 때 나는 그만 정신 줄을 놓고 까무러치고 말았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서 기녀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서 여기가 지옥인지 극락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네. 질척한 삼사미를 볼 때마다 나는 불끈 솟는 양물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지. 아마도 죽기 전까지 그런 지극한 쾌락을 다시는 맛보지 못할 거네.”

입심 세기로 소문난 소가야 출신 한 장자가 사내들에게 솔깃한 말을 꺼냈다. 사신단 모두가 짐을 지고 있어서 조그만 걸어도 힘이 들었다. 사신 백여 명이 가야까지 가려면 고도의 체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말이 사신단이지 행색은 마치 먼 지역을 오고 가는 장사치들과 진배없었다.

그들은 서라벌에 올 때 각종 진상품을 가져오느라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돌아가는 길은 무척 가벼웠다. 신라왕이 하사한 선물은 고가의 물건으로 부피가 작았다. 그들은 쉬었다 걷기를 반복하며 가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길은 험난하여 산 도적이나 맹수를 만날 수도 있었다.

“나는 말이야, 서라벌 도착하고 다음 날 밤에 좀 비싼 유곽(遊廓)을 다녀왔네. 그곳에 있는 여인들이 하나같이 천상의 선녀 같았어. 나는 한 여인과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나서 어두컴컴한 밀실로 같이 들었지. 여인의 몸매가 기가 막히더군.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나를 껴안고 내 혼을 쏙 빼놓았어. 여인이 손과 입으로 나를 반쯤 죽여 놓고 나서 펄펄 끓는 음문을 들이대는데, 어찌나 요분질을 잘하는지 나는 마치 극락에 들은 느낌이었다니까.

평생 마누라한테 쓸 정력을 하룻밤에 모두 탕진했네. 새벽에 일어나니 여인은 간데없고 내 몸은 반쯤 오그라들어 있더군. 지금도 아랫도리가 그때의 충격으로 얼얼하다네. 집에 가면 마누라한테 그 여인이 나한테 구사한 기술을 똑같이 해달라고 할 셈이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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