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항우의 기습

사신들은 낄낄거리며 진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서라벌에 열흘간 있으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하느라 힘든 줄도 모르고 가야국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쉬었다 가기를 수십 번, 까마득한 준령 하나만 넘으면 반파국과 심적으로 가까워지기 때문에 사신들은 용기를 냈다. 숲속으로 들어서자 고목과 거목이 울창하여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신단이 천근 발걸음을 떼면서 준령(峻嶺)을 거의 다 넘어왔을 때였다.

“저놈들 다리를 향해 쏴라.”

고갯마루 양쪽에서 화살이 비 오듯 날아왔다.

“복병이다.”

“신라군이 매복해 있는 거 같다.”

사신단 중의 한 명이 소리쳤다. 사신들에게는 활이 없었다. 대신 그들은 호신용으로 어른 한쪽 팔 길이 정도의 칼을 봇짐 속에 숨겨두고 있었다. 사신 중 반이 다리에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나머지 사신들은 어느새 칼을 빼 들고 길가 양옆으로 흩어져 몸을 숨겼다.

“우리는 신라를 방문했다 돌아가는 가야연맹 사신들이다. 너희는 누구냐?”

뇌주가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빚을 지고 못 사는 사람들이다. 뇌주에게 갚을 빚이 있다. 잔말 말고 어서 뇌주 놈을 내놓아라. 그놈만 내어 주면 너희들은 이 고개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참수당할 것이다.”

사내의 큰 목소리가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뭐라. 저놈들이 나만 원한다고? 도대체 저놈들이 누군데 나를 원한다는 것이냐? 혹시 도설지가 보낸 자들인가? 도설지는 나하고 서라벌에서 단둘이 만났을 때 ’반파국으로 돌아가면 부왕과 왕비께 신라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말씀 올리고 그의 사정도 잘 전해드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가 나에게 그리 말해놓고 비열하게 사람을 보냈단 말인가? 아니야. 그는 비열한 성격이 아니야. 그렇다면, 그렇다면 항우라는 놈이 틀림없겠구나. 저놈이 살아있는 한 내가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저놈을 반드시 죽여야 내가 편하다.’

뇌주는 항우가 외팔이라는 점을 기억해 내고 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가 일어서더니 고개를 향해 소리쳤다.

“이놈, 네놈은 항우라는 놈이렷다. 외팔이 놈이 용케도 살아있었구나. 네놈이 애타게 찾는 뇌주가 바로 여기 있다. 비열하게 숨어서 화살을 날리지 말고 사내답게 나와서 일대일로 붙어보자.”

“좋다. 네놈이 나를 기억하니 고맙구나. 네 소원대로 해주마.”

뇌주는 중도(中刀)를 들고, 항우는 철퇴를 쥐고 나타났다. 뇌주가 고개로 올라가자 사신들도 그를 따라 슬금슬금 고갯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고갯마루 양쪽으로 수십 명의 무장한 사내들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서라벌에서 말썽을 부리거나 기루나 상점 주인들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는 파락호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신라 군인들도 섞여 있었다. 항우는 월광에게 뇌주를 죽일 것이란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한 계획을 알리면 월광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불같은 성정의 항우는 앞뒤 가리지 않고 뇌주를 죽이기 위하여 가야사신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매복해 있었다. 두 사람이 맞붙자 사신단들은 뇌주 뒤로 모여들었고, 고갯마루에 몸을 숨겼던 자들도 칼을 들고 항우 뒤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수가 대충 칠십여 명은 되어 보였다. 뇌주는 그들이 사신단보다 적다는 것을 눈치 채고 속으로 안도하였다.

사신들도 호신용 칼과 비수를 소지하고 있고 항우 측보다 삼십여 명이 더 많았다. 양쪽 편이 백병전을 벌여도 사신단은 꿀릴 게 없을 듯 했다. 그러나 항우 측 사람들의 무예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과 그들 가운데 신라군사들이 섞여 있는 것이 뇌주를 불안하게 했다.

“네놈이 보낸 자객에게 아랑 태자비와 태손이 참수되고 도설지 태자님의 두 호위무사도 죽었다. 나도 네놈이 보다시피 이렇게 외팔이가 되었다. 오늘 네놈의 목을 베어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원한을 갚겠다.”

항우가 철퇴를 들어 허공에 대고 휘두르며 대성일갈하였다. 뇌주는 항우를 보고 실실 웃었다.

“종놈이 감히 반파국의 태자가 될 분에게 무례하다. 얼른 무기를 버리고 왕자님께 사죄하지 못할까?”

사신으로 파견된 반파국 장자 한 명이 나서서 항우에게 호통을 쳤다. 순간 항우는 그 장자에게 달려들어 철퇴를 휘둘렀다. 장자의 머리가 깨지면서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항우의 괴력과 무시무시한 살육 광경에 가야연맹 사신들은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났다. 뇌주가 항우에게 달려들었다. 항우가 비록 외팔이기는 하지만 철퇴를 다루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칼과 철퇴가 부딪칠 때마다 파란 불꽃이 튕겼다. 양쪽 편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두 사람의 접전을 지켜봤다.

만약 항우가 두 팔이 성한 상태였다면 뇌주는 벌써 철퇴를 맞고 머리가 박살났을 것이었다. 뇌주가 아무리 칼을 잘 다룬다고 하여도 항우를 상대로 싸우기에는 무리였다. 뇌주가 항우의 철퇴 공격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뇌주가 철퇴를 피하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항우의 철퇴가 뇌주의 머리통을 노리고 사정없이 가격할 찰나였다. 사신단 중 한 명이 항우를 향해 비수를 던졌다. 비수가 항우의 허벅지에 꽂혔다.

“가야 놈들을 모두 박살내라. 뇌주 놈만 죽이려고 했는데, 모두 죽여라.”

항우의 명령에 칠십여 명의 서라벌 사내들이 칼을 들고 가야 사신단을 향해 돌진했다. 사신단의 반수가 다리에 화살을 맞은 상태라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들은 사력을 다해 서라벌 사내들을 응수했다. 여기저기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항우의 철퇴가 춤을 추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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