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공주의 첫날밤

사신 중 상당수가 검술에 능했다. 칼에 찔리거나 철퇴를 맞은 자들이 피를 토하며 길가로 널브러졌다. 한 시진 가량 죽고 죽이는 처절한 싸움이 이어졌다. 양측 모두 겨우 삼십여 명이 살아남아서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항우도 팔과 다리에 자상(刺傷)을 입고 휘청거렸다. 뇌주 역시 싸우는 와중에 화살을 두 대나 맞고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항우야, 그만 싸우자. 너나 나나 반파국을 조국으로 두고 있다. 우리가 다 죽으면 반파국과 신라국 사이에 어렵게 맺은 혼인동맹이 수포가 되고 전쟁으로 이어진다. 너의 주인 도설지와 월화왕비를 생각하라. 너의 부모형제도 반파국에 있지 않느냐? 싸움은 이쯤에서 멈추고 나중에 전장에서 만나 당당하게 싸우자. 오늘 일은 양국의 관계를 생각해서 불문에 부치겠다.”

‘저놈 말이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너무 아쉽다. 잘못하면 월광장군과 월화궁주에게 화가 미칠 수 있겠어. 나도 상처를 입었으니 어찌할 수가 없구나. 이러다 양측 모두 다 죽겠구나.’

“좋다. 다음에 전장에서 다시 겨루자.”

항우는 뇌주를 죽이는 데 실패하였지만, 나중에 기회가 있으니 싸움을 중지하고 서라벌로 돌아갔다. 항우 측은 스무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십여 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가야연맹 사신단은 역시 스무 명 정도가 목숨을 잃고 상당수가 상처를 입었다. 항우가 가야연맹 사신단을 습격한 일이 양국에는 일단 대외적으로는 비밀에 부쳐졌다. 이뇌왕은 뇌주가 돌아와 좋게 말한 덕분에 흡족해 했다. 특히, 월화공주가 신라왕뿐만 아니라 두 태후에게도 총애를 받는다는 말에 입이 양 귀에 걸렸다.

“두 분 태후와 신라왕 심맥부가 월화를 총애한다니 다행이구나. 네가 이번에 애를 많이 썼구나. 그러나 오다가 산 도적을 만나 사신 스무 명이 죽은 일은 애석하게 되었구나. 이제 나는 신라왕의 장인(丈人)이 되었다. 왕비는 장모가 되었고요. 뇌주야, 너의 수고로움을 내가 두고두고 깊이 생각할 것이야.”

“부왕의 명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이뇌왕은 양국 사이에 체결한 혼인동맹의 약정서를 가져오지 않았는데도 뇌주에게 역정을 내지 않았다. 이뇌왕은 월화공주가 신라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 어린아이처럼 흥분하여 마구발방으로 떠들어 댔다. 가야연맹의 왕들은 서라벌에 갔던 사신 중 스무 명이 돌아오다 산 도적을 만나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하였고 애써 문제 삼지 않으려 했다.

“대왕, 이제 주무셔야 할 시각이옵니다. 벌써, 약주를 두 병이나 드셨습니다. 소첩도 약간 취한 듯하고요.”

“월화궁주를 보면 볼수록 탐이 나오. 반파국에서도 우리 신라처럼 색공(色供)을 받드는 계층이 있는가 봅니다? 공주가 이불 속에서 벌이는 방사가 뛰어납니다.”

“아이, 대왕께서는 못하시는 말씀이 없으셔요. 가야에는 색공제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소첩의 모후가 바로 신라 왕실 출신 아닙니까? 소첩은 모후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답니다.”

“오오, 어쩐지 그대의 몸짓이나 상합하는 방식이 미실궁주나 숙명궁주 보다 한 수 위가 분명합니다. 나는 그대의 마술 같은 합기(合氣)에 크게 감동하였어요. 당분간 과인은 그대와 천지신명이 우리 두 사람에게 내린 지극한 복락을 나누고자 합니다.”

“대왕, 이 은혜는 각골난망입니다.”

“이리 가까이 와요.”

왕은 거의 매일 밤 월화궁주의 처소를 찾았다. 사도왕비, 숙명궁주, 지도부인, 금진궁주는 겉으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월화궁주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월화궁주는 어머니 양화왕비에게 전수받은 규방술을 왕과 실전(實戰)을 치르면서 점차 완성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왕은 미실을 비롯한 신라 출신과 백제 출신 후궁 부여소비에게 맛보지 못한 새로운 쾌락을 월화궁주에게 얻고 활기를 되찾았다.

색(色)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태산 같은 자에게 세상을 풍미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 학문이나 음악 또는 잡기(雜技)에만 능한 자는 천지신명이 부여한 다른 능력을 고의로 방기하는 것과 같다. 야생마 같은 사내에게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제하게 함은 생명을 단축하거나 혹은 엉뚱한 방향으로의 기행(奇行)을 유발할 수도 있다.

삼맥종 왕은 선천적으로 근골이 단단하고 하해와 같은 정복욕을 지닌 사내 중의 사내였다. 그가 만약 서라벌이나 지방의 어느 여염(閭閻)에서 태어났더라면 신라의 큰 골칫덩이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영웅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상천하와 주변의 인적 여건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남삼한의 열방(列邦) 중에는 삼맥종 같은 인물이 여럿 있었다. 백제의 근초고왕과 성왕, 고구려의 호태왕과 장수왕, 신라의 내물왕과 법흥왕, 가야의 이뇌왕 등이 그 부류에 속한다. 다른 왕들이 한쪽에만 지나치게 열정을 쏟는 성정이라면 삼맥종 왕은 내외(內外)를 온전히 아우르는 뛰어난 사내였다.

일찍이 요순(堯舜)시대에 세상을 풍미했던 *팽조(彭祖)라 불리는 전갱(錢鏗)은 평생에 마흔아홉 명의 아내를 두었고 쉰 네 명의 자식을 보았다. 그가 천제(天帝)로부터 팔백 년의 수명을 보장받은 데에는 섭생(攝生)에 비결이 있었다.

방사(房事)와 불로장수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무욕(無慾)도 좋지 않고, 남욕(濫慾) 또한 백해무익하다. 하늘과 땅의 현묘한 기운을 적절한 때에 육신을 통해 감응될 때 인간의 쾌락은 수십 또는 수백 배 배가되어 지극한 경지에 오르기도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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