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남매의 화려한 귀향

 남매가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월화궁주는 오라비가 서라벌에 없는 관계로 늘 동기간의 정을 나눌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월광 역시 궁주와 같은 심정이었다.

“나도 왕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반파국으로 가는 것보다 반파국에 뇌주를 거부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소요사태를 야기해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또 다른 사건을 발생시켜 신라군이 개입할 명분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오라버니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구나.’

월화궁주는 월광이 태자비 아랑과 태손이 자객에게 피살된 후로 별로 말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월광이 이미 반파국의 왕위로 복귀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녀는 무척 고무(鼓舞)되었다. 반파국에 홀로 남은 어머니 양화왕비의 안위가 늘 남매에게 걱정거리였다.

“오라버니, 저와 함께 반파국으로 가셔서 아버님 장례에 참석하시죠? 이대로 부음만 듣고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잖아요.”

월화궁주는 오라비 월광에게 따뜻한 온기가 배어나는 차를 건넸다. 월광은 될 수 있으면 술을 입에 대지 않으려고 했다. 술은 한순간의 쾌락과 마음의 위로를 줄 수 있겠지만, 빈번한 음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상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그리하시지요. 사신에게 부왕의 승하 소식을 듣고 반파국에 갈 생각을 하였습니다. 뇌주와 친 백제계 인사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명실상부한 반파국의 태자이며, 신라의 장군이고, 공주는 이제 당당한 신라국 왕후의 신분입니다. 누가 감히 우리 남매의 앞길을 방해하겠습니까?”

월광은 월화궁주와 상의한 뒤에 곧바로 매부(妹夫)인 신라왕 삼맥종을 배견하였다. 처남 매부지간은 여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왕은 오랜만에 보는 월광의 손을 잡아주며,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월광은 왕의 살가운 행동에 그만 가슴이 뭉클했다.

“장인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한참 더 사실 분인데, 사위로서 참말로 안타깝습니다. 월화궁주가 많이 슬퍼하고 있을 겁니다. 처남께서 궁주를 위로해 주세요.”

삼맥종 왕은 온화한 얼굴로 월광을 대했다. 조정 중신들과 국정을 논할 때 근엄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왕의 성은이 하해와 같습니다.”

월광이 신라왕과 독대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이미 신라 왕실의 인척으로 상당한 권위를 지닌 것이나 다름없었다. 왕이 일개 변방의 장수인 월광과 독대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금방 중신(重臣)들 귀에 들어갔다.

“과인이 국정을 책임지는 위치가 아니라면 직접 반파국으로 가서 조문하고 싶습니다만,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일국의 왕이 움직이는 일은 양국에 많은 수고가 뒤따르게 됩니다. 처남께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남을 보니 과인이 그동안 생각했던 바를 전하겠습니다.”

순간 월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삼맥종 왕이 비록 손아래 매부이기는 하나 그는 신라의 지존이고, 그의 말은 곧 법이나 마찬가지였다. 왕은 가야연맹의 합병에 대한 문제를 두고 모후인 지소태후, 군부 실력자들과 여러 차례 토의를 거친 바가 있었다.

“소신, 대왕의 명을 받잡겠습니다.”

월광은 마른 침을 삼켰다.

“장군, 가야연맹 및 주변국 백성들이 언제까지 신라와 백제 틈바구니에서 두 나라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합니까? 이제는 가야 백성들이 마음 편히 살 때가 되었습니다. 선대왕 때 신라에 귀순한 금관가야의 경우를 잘 알고 계시지요? 구형왕과 그의 자식들은 신라의 최상류층으로 흡수되어 잘살고 있어요. 옛날 금관가야 백성들은 신라 백성으로 편입되어 예전보다 더 잘살고 있습니다. 처남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 대왕, 어찌 그 같은 말씀을?”

월광은 왕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얼굴이 붉어지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고 가리산지리산 하였다. 그러나 상대가 아무리 손아래 매부이며, 신라의 왕이라 하더라도 물러설 수 없었다. 월광은 자신의 응대에 따라 가야연맹의 운명이 갈릴 것 같았다.

“아, 당장 신라가 가야연맹을 어찌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가야연맹 수장들이나 처남이 이제는 실질적으로 신라에 공헌할 때도 되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소, 소신 물러가 깊이 성찰해 보겠습니다. 대왕, 그리고 소신이 반파국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이왕 가는 길에 대왕께서 허락하신다면 월화궁주도 함께 다녀왔으면 합니다.”

“오, 그리하세요. 오누이가 효성이 지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월화궁주가 과인에게 시집온 뒤로 한 번도 친정에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천주 전군(殿君)과 덕명 공주도 함께 데리고 가세요.”

“대왕의 성은이 태산과 같사옵니다.”

신라왕의 승낙 아래 신라 장군 월광은 월화궁주와 두 조카를 대동하고 반파국으로 향했다. 왕은 월화궁주와 어린 남매를 위하여 어가(御駕)를 내주었고 호위 군사 오백여 명을 붙였다. 또한, 장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수백 필의 비단과 곡물 수천 석을 실려 보냈다. 신라 왕후가 탄 황금마차와 호종하는 군사 행렬 그리고 뒤따르는 인마(人馬)가 십여 리에 걸쳐 이어졌다. 월광은 항우를 호종 군사에서 제외시켰다. 그가 반파국에 갈 경우 뇌주와 부딪힐 게 분명했다.

 * 전군 - 왕의 후궁에서 출생한 아들이나, 왕비가 왕이 아닌 남자와 사통하여 낳은 아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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