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신라 군부의 공작

 “너희들은 이뇌왕의 장례식 이틀 전쯤 왜국(倭國)과 가야의 군선으로 가장하여 율포(栗浦) 해변에 내려 시위를 하고 신라 백성을 약탈하라. 그리고 다시 바다로 나가라. 절대로 인명을 살상하면 안 된다. 너희들은 백제와 가야 병사로 위장하여 아라가야의 *아시촌(阿尸村)에서 대규모 시위를 열라.

그리고 너희들은 반파국의 도읍지로 잠입하여 이뇌왕의 *인산(因山) 날에 대규모로 반 신라 정책을 비판하는 소요를 일으켜라. 소요를 일으킬 때 가야의 숫백성들을 동원해야 한다.”

월광과 월화궁주 일행이 반파국으로 떠나자마자 이사부와 거칠부는 병부령 소속 군관들에게 비밀 지령을 지렸다. 그의 지령은 태후의 언질을 받아 계획된 것으로 삼맥종 왕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거칠부 혼자 작전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군부의 상당수 장군이 이 작전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였다. 일종의 가야연맹을 합병하기 위한 명분 쌓기 작전이었다. 지소태후가 왕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가야연맹의 합병을 강조하였지만, 왕이 차일피일 미루자 태후와 일부 군 수뇌부가 먼저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 아시촌 – 지금의 경북 의성군 안계면 일대
* 인 산 – 왕과 왕비 또는 태자와 태자비의 장례.

“모후를 뵙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적적하시고 외로우셨습니까?”
“어머니, 월화와 외손들이 인사 올립니다.”

월광과 월화궁주 일행은 반파국에 도착하자마자 부왕의 빈소보다 먼저 생모인 양화왕비 처소를 찾았다. 수년 만에 만나보는 어머니와 자식 간의 자리였다. 양화왕비는 신라 장군 ‘월광’이 된 아들 도설지의 손을 잡고 오열하였다. 그녀는 아직 태자비 아랑이 뇌주가 보낸 자객의 손에 비명에 간 사실을 몰랐다.

도설지는 며느리와 손자 소식을 묻는 양화왕비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적당한 구실을 붙여 함께 오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 상태에서 사실대로 말하면 부왕의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한바탕 피바람이 불 것 같았다.

뇌주는 이뇌왕의 빈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수백 명의 신라 호위 군사를 대동하고 찾아온 도설지와 월화궁주의 위세에 눌려 음지에서 나오지 않았다. 또한, 도설지가 자신의 악행을 양화왕비에게 말할 경우를 대비하여 멀리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이 흘러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자, 뇌주는 빈소에 나타나 월광과 월화궁주와 함께 나란히 서서 가야연맹과 주변국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하였다.

“가야연맹은 친 신라 정책을 폐하고 백제를 상국으로 모셔야 한다.”
“색골(色骨)인 신라왕 심맥부는 월화궁주를 반파국으로 돌려보내라.”
“가야연맹은 신라를 원하지 않는다. 반파국 왕실은 즉시, 친 신라 정책을 폐기하고 백제로 전향하라.”
“백제와 왜국과 협력하여 신라에 합병된 금관가야를 되찾자.”
“신라는 곧 가야연맹을 정벌할 것이다. 신라왕에게 속지 말라.”

이뇌왕이 붕어한 지 한 달째 되는 날, 왕의 운구 행렬이 막 도성을 빠져나갈 때였다. 수백 명의 백성이 신라를 비난하는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월광과 월화궁주 그리고 양화왕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군사들이 동원되어 막으려 했지만 이미 수많은 남녀노소가 가세한 상태라 쉽게 소요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소요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뇌주를 비롯한 반파국의 신료들은 그들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뇌주 왕자는 어서 저들을 해산시키지 않고 뭘 하느냐?”

양화왕비가 뇌주에게 소리쳤다. 그제야 뇌주는 마지못해 군사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했다. 반파국 군사들이 나타나자 시위를 주도했던 젊은 사람들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돈 몇 푼에 동원된 순진한 반파국 백성들만 남게 되었다.

그들도 뇌주의 명령을 받고 나타난 반파국 군사들을 보자 기겁하고 달아났다. 도읍을 빠져나온 시위 주도 세력들은 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서 대규모로 반 신라 시위를 벌이며 관군과 숨바꼭질을 이어갔다.

‘하필 부왕의 인산 날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다니, 신라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면 문제 삼을 것이 분명하다. 큰일이구나.’

월광과 월화궁주는 시위사태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다. 이뇌왕이 영면하자, 반파국은 중신들과 장자들의 합의 아래 임시로 뇌주와 양화왕비가 국정을 나눠서 다스렸다. 나라의 내부 일은 양화왕비가 담당하고, 외치(外治)는 뇌주가 맡았다.

신라로 돌아온 월광과 월화궁주는 양화왕비를 반파국에 혼자 남겨 두고 온 일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양화왕비를 모시고 서라벌로 돌아오고 싶었으나 여건상 허락되지 않았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냐?”
“장군, 어제 병부령이 한 말이라 합니다.”
항우가 반파국에서 돌아온 월광에게 그간의 사정을 알려주었다.
“이거 큰일이구나.”

“아라가야 아시촌에서 반 신라를 주장하는 백성들의 대규모 시위가 수십 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관군들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백여 명에 달하는 숫백성들과 장사치들이 죽거나 크게 상했다고 합니다. 죽은 자 중에는 신라에서 온 장사치도 상당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는 왜국의 야마토 군사들이 탄 군선 두 척과 가야 군선 두 척이 율포 앞바다에서 시위하고 그곳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해 갔다고 합니다. 신라군이 출동하자 그들은 배를 타고 남쪽으로 사라졌답니다.”

항우는 마치 직접 목격이라도 한 것처럼 어둔한 표정으로 팔다리를 흔들어가며 떠벌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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