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고개드는 가야 정벌론

 신라왕은 가야연맹의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지소태후 및 조정 중신 그리고 군부 인사들의 반응과 주장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는 당장 대군을 이끌고 가야연맹을 침공하는 대신에 반파국에 인접한 비사벌(比斯伐)에 하주(下州)를 설치했다.

그가 하주를 설치한 이유는 최근 들어 백제왕이 신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정보가 있었고, 이미 친 신라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한 가야연맹을 백제와 분리시키기 위한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다.

또한, 가야연맹이 신라를 배신하고 또다시 친 백제 정책으로 선회할 경우를 대비하려는 조치이기도 했다. 가야연맹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연이어 발발하였음에도 삼맥종 왕은 선뜻 무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신라군이 가야연맹을 공격하다가 자칫 백제나 왜(倭) 또는 고구려를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에게 수모를 당한 백제가 고구려와 손잡고 신라를 칠 가능성이 컸다.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백제의 성왕에 이어 그의 아들 부여창이 백제왕에 올랐다.

그는 신라와의 전투에서 패한 이후에 한동안 자숙의 시간을 가지고 내실을 다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패전의 충격에서 벗어난 뒤에 대외관계의 강화를 통해 왕권 강화를 모색하였고 예전의 권위도 되찾았다. 그는 부왕의 복수를 위해 신라 침공을 계획했다.

동생 부여계(扶餘季)를 왜의 야마토 조정에 파견하여 군사원조를 요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친 신라 정책으로 전향한 가야연맹에 수시로 사신을 보내 친 백제로의 전향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가야연맹 수장들은 신라의 눈치를 보느라 쉽사리 백제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

가야연맹이 흔들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신라왕은 *잡간(迊干) 김무력과 *사척간(沙尺干) ‘도설지(道設智)’를 비롯한 홀리지(忽利智), 벌부지(伐夫智), 소술지(所述智), 도하지(刀下智), 감력지(甘力智), 칠총지(七聰智), 죽부지(竹夫智), 숙흔지(宿欣智), 취순지(就舜智), 마질지(麻叱智) 등 사방군주(四方軍主)를 거느리고 가야의 접경지대인 비사벌로 진출하여 무력시위를 벌였다.

신라왕의 그 같은 남방순행은 가야연맹에 대한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라 조정은 왕의 남방 순행 내용을 *척경비(拓境碑)에 새겨 놓았다. 비에는 왕을 호종한 인물들의 속부(屬部)와 이름, 직관, 직위를 표기하였다.

* 잡간 – 신라 17관등 중 세 번째에 해당.
* 사척간 – 신라 17관등 중 여덟 번째에 해당.
* 척경비 – 순수비(巡狩碑)라고도 한다. 본 작품에서는 경상남도 창녕순수비를 가리킨다.

 “뭐라, 백제가 왜국에 병력 파견을 요청하고 가야연맹을 압박하여 친 백제 정책의 전환과 병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남방지역 순행을 마치고 돌아온 신라왕은 수시로 날아드는 첩보를 접하고 고심(苦心)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에 지소태후와 군부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가야연맹의 정벌을 주장하고 나섰다. 왕은 중신들과 군 수뇌부 그리고 중급 관등의 군부 인사들도 참석하는 대책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번 회의에도 어김없이 지소태후가 참석하여 무게를 잡고 있었다. 월광은 이번 회의에서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 그리고 그 결론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추측해보았다.

‘태후나 이사부, 거칠부 등 가야연맹의 정벌을 주장하는 강경론자들의 발언이 세어질 것이다. 나 혼자 대세를 막는다고 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해 가야연맹에 대한 강경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중에라도 내가 반파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동안 신라 장수로 있으면서 내가 보였던 주장과 행동이 동포들에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강경론자들에게 가야정벌을 하지 말라고 애면글면할 필요는 없다. 이미 대세는 기야연맹 정벌로 기울어진 상태다.’

“가야연맹이 우리 신라에 조공하고 친 신라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삿된 백제왕이 왜국과 협력하여 가야연맹을 겁박하여 친 백제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과인은 경들에게 묘책을 듣고 싶습니다.”

왕이 지소태후와 좌중을 둘러보았다. 군부의 장군들은 서로 눈짓을 해가며 왕에게 의견을 제시할 것을 제의하였다. 군부의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중신들도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듯 보였다.

“소신, 이사부 대왕께 아룁니다. 신라가 아량을 베푸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태후께서도 여러 차례 말씀하신 바와 같이 조속히 가야연맹과 주변 소국들을 정리하셔야 합니다. 저들을 방치하면 여러 곳에서 관산성 전투가 재현될 여지가 있습니다.

뒤에 신실하지 못한 세력을 버려두고 앞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가야연맹 및 주변 소국들에 대한 더 이상의 측은지심은 신라에 해가 될 뿐입니다. 통촉하소서.”

이사부의 말에 지소태후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소신은 아직 때가 이르다고 사려 하나이다. 좀 더 추이를 보고 결정을 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전쟁을 한다는 것은 한 나라의 운명을 거는 일인 바, 백제왕은 아직 왕권을 완전히 회복한 상태가 아니라고 사료되옵니다. 가야연맹을 도모하다가 자칫 고구려와 백제의 연맹을 유도할 수도 있사옵니다.”

월광은 관등이 승차(陞差)되어 병부령에 배속되어 있었다. 월광의 의견에 온화했던 지소태후는 얼굴이 일순간에 일그러졌다. 동시에 거칠부는 뇌꼴스러운 표정으로 월광을 노려보면서 금방이라도 달려와 멱살이라도 잡을 태세였다.

“신, 거칠부 아뢰옵니다. 월광 장군은 오랫동안 지방에 나가 있던 관계로 우리 신라의 갈급한 상태를 모르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이사부 장군께서 주장한 바와 같이 가야연맹 및 주변 소국들에 대한 관용은 금물입니다. 서둘러 가야연맹의 정벌을 명하소서.”

“신, 김무력 아뢰옵니다.” “오, 잡간 어서 말해보오.” *계속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