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 아라가야의 멸망

 “오라버니, 그럼, 반파국은 어찌 되는 겁니까? 어머니는 또 어찌 되는 것이고요?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어머니를 서라벌로 모셔와야 하겠어요. 이 소식을 뇌주가 들으면 우리 남매를 의심할 겁니다.”

“우리를 의심하다니요?”

“오라버니, 뇌주는 악인입니다. 그는 자세한 사정도 모르면서 저와 오라버니가 신라왕을 꼬드겨 가야연맹을 치도록 사주했다고 떠들어 댈 것입니다. 그리되면 어머니는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왕후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조만간 반파국으로 가서 어머니의 안전을 보살펴야 하겠습니다.”

월광은 반거들충이 같은 뇌주를 떠올리고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댔다. 월화궁주 말처럼 뇌주는 신라왕이 가야정벌을 추진하는 과정에 자신과 월화궁주가 개입했다고 충분히 떠들고 다닐 사람이었다. 월광은 항우를 조용히 불러 은밀하게 반파국으로 가서 양화왕비를 만나 보라고 했다.

“아라가야 왕실 놈들은 예전부터 우리 신라 사람들을 벌레 보듯 했다. 반항하는 놈들에게는 절대로 인정사정 보지 말라. 순순히 항복하는 자는 살려둬라.”

“아라가야를 짓밟아라.”

신라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신라군은 질풍노도처럼 황산강(黃山江)을 건너 아라가야로 쳐들어갔다. 수만 명의 신라군이 갑자기 밀려들자 아라가야는 단 사흘 만에 나라 대부분이 점령되고 말았다. 아라가야의 왕과 지도층들은 손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나라를 고스란히 내줘야 했다. 신라군은 반항하는 자들은 모두 참수하였고 아라가야 왕실 인사들과 중신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 서라벌로 압송하였다.

“아, 우리 아라가야가 이리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아라가야 왕과 중신들은 서라벌로 끌려가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쳐댔다. 아라가야는 김수로왕과 함께 구지봉에서 태어난 6명의 동자(童子) 중 한 명인 김아로(金阿露)가 건국하였다. 신라는 백제와 왜(倭)의 반격에 대비하여 아라가야 도읍지를 아시촌소경(阿尸村小京)으로 지정하였고, 주요 군사 요충지인 파사산(波斯山)에 대규모 산성을 축조한 뒤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신라의 전격적인 아라가야의 정벌은 주변 여러 나라에 큰 충격을 주었다.

신라를 침공하려던 백제왕의 계획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으며, 백제는 왜의 야마토 왕 긴메이(欽明)에게 급보를 알리고 군사 지원을 촉구하였다.

고구려 역시 신라의 전광석화 같은 아라가야 정벌에 놀라워하면서도 예전처럼 신라나 가야에 군사를 파견하지 못했다. 고구려는 외치(外治)보다 귀족들의 권력다툼으로 내치에 더 신경을 써야 할 처지였다.

“신라를 믿어야 합니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백제에 붙어야 합니까?”

아라가야가 신라에 합병되는 것을 지켜본 가야연맹 중 가장 시급한 나라는 소가야였다. 소가야는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의 6형제 중 막내인 김말로(金末露)가 나라를 세운 후 9대 이형왕(而衡王) 때 금관가야가 신라 법흥왕에게 복속될 때 신라에 부속(付屬)되어 겨우 명맥만 유지 하는 상태였다. 소가야는 일명 고사포국(古史浦國) 혹은 고자국(古自國)으로 또는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성산가야 역시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성산가야는 김수로왕과 함께 구지봉에서 태어난 6명의 동자 중 한 명인 김벽로(金碧露)가 건국하였다. 일명 벽진국(碧珍國)이라는 독립 소국으로 있었다가 4세기 말 이후 신라 영향권에 편입되었고, 지금은 이름만 내걸고 있는 형식적인 나라였다.

“우리 고령가야는 신라와 많은 교역을 하고 있으니 신라왕이 선처해주실 것이다. 너무 겁먹지 말라.”

고령가야 왕은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간과하고 있었다. 고령가야 역시 허울뿐인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고령가야는 김수로왕과 함께 구지봉에서 태어난 6명의 동자 중 한 명인 김고로(金古露)에 의해 건국되었다.

“다음은 이름뿐인 고사포국을 정복하라. 그리고 여세를 몰아 역시 허울뿐인 벽진국과 고령가야를 합병하라.”

신라왕은 군부 장군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신라 군부는 삼맥종 왕에게 불평불만 한마디 없었다. 가야연맹의 정벌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라 조정이 꿈꿔 온 과제였다.

“소가야는 삼십 년 전에 이미 우리 신라에 복속되다시피 한 소국이다. 살려두었더니 속을 썩이는구나. 군사 일천 명 정도면 쉽게 정복할 수 있다. 군사들은 즉시 소가야를 접수하라. 반항하는 자들은 목을 치거나 교수형으로 즉결 처분하라. 순순히 항복하는 자들은 살려줘라.”

신라군들은 소가야를 식은 죽 먹듯 점령했다. 왕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은 모두 체포되어 서라벌로 압송되었다. 소가야는 남쪽 바다에 인접한 소국이어서 예전부터 신라와 교류가 빈번했다. 신라군대를 보자 소가야 사람들은 대부분 항복하였고, 군사들도 병장기를 내려놓고 모두 투항하고 말았다. 성산가야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나 고령가야 왕족들과 장자들은 국제정세에 둔한 탓에 신라군에게 끝까지 저항하다가 모두 참수당하고 말았다. 그와 반대로 백성들은 순순히 신라군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신라 백성으로 귀순하였다.

“왕비님, 소신 항우입니다.”

깊은 밤 항우가 반파국 궁궐에 잠입하여 양화왕비 처소로 들었다. 다행히 시녀 이외에는 그를 본 사람이 없었다.

“네가 이 밤에 웬일이냐? 정말 오랜만이구나.”

항우는 양화왕비에게 신라의 가야연맹 정벌과 도설지에 대한 최근의 사정을 자세히 알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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