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백제왕의 연횡책

 “왕비님의 안위가 걱정되어 도설지 태자님이 저를 보냈습니다.”

“사태가 매우 급하게 되었구나. 항우는 잠시 궁성 밖에서 나의 명을 기다리고 있거라. 요즘 반파국 사정도 좋지 않단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구나. 내가 부르면 즉시 와야 한다.”

“알겠습니다. 왕비님, 혹시 아랑 태자비님 소식을 들으셨는지요?”

항우는 양화왕비가 아랑 태자비의 소식을 알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먼젓번 대왕이 갑자기 붕어하셨을 때도 손자들이 아파서 올 수 없었다고 하여 태자와 월화궁주만 다녀갔단다. 그런데, 태자비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

“왕비님, 놀라지 마십시오.”

항우는 뇌주가 보낸 자객에 의해 아랑 태자비와 태손이 참수된 일을 알렸다. 태자비와 태손의 참수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양화왕비는 충격을 받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그게 사실이냐? 네가 지금, 농담하는 거지?”

“왕비님, 제가 그날 밤에 뇌주 왕자가 보낸 자객에 의해 외팔이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태자비님과 태손 아기님을 지켜드려야 했는데…….”

‘아, 내가 그동안 악마를 가까이 두고 살았구나. 그렇다면 내 목숨도 언제 뇌주에게 빼앗길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자.’

항우는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왕비를 안전한 곳으로 모시고자 하였으나 그녀는 아직 반파국에는 신라군대가 침범하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과 딸이 신라 왕실의 실세가 된 사실을 흐뭇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들딸 덕분에 반파국이 신라의 침입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양화왕비는 항우를 궁성 밖에 사는 심복의 집에 당분간 머물도록 하였다. 지금 상태에서 자신이 신라나 다른 장소로 몸을 숨기면 뇌주나 친 백제계 인사들의 의심을 받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뇌주의 만행을 알고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대왕, 신라의 만행을 앉아서 바라만 볼 수는 없습니다. 곧 왜국의 군대가 온다고 하니 반파국만이라도 지켜야 합니다. 반파국 대가야는 막강한 철갑부대가 있습니다. 우리 백제와 왜가 협력하여 반파국을 도우면 신라가 쉽게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관산성에서 당한 원한을 갚아야 합니다.”

병관좌평이 백제왕 부여창(扶餘昌)에게 고했다. 백제왕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쉽게 응답하지 않았다.

“반파국은 친 신라 정책으로 전향하여 신라왕에게 충성하기로 맹세한 나라 아닙니까? 우리가 수차례 사신을 보내 설득했지만, 우리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반파국 왕비는 지아비 이뇌왕이 죽자 뇌주 왕자와 국정을 나눠 처결한다고 합니다. 예전에 반파국의 태자였던 그의 아들 도설지는 현재 신라의 군부에 몸담은 장군 신분입니다.

또한, 그의 누이동생 월화공주는 신라왕 심맥부의 후궁이 된 상태입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신라왕도 반파국만 남겨 두고 다른 가야연맹국과 주변 소국들을 모두 정복했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반파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반파국의 뇌주 왕자에게 특사를 보내 그가 반파국의 왕으로 등극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하고 양화왕비를 죽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내치라고 하세요. 그리되면 우리가 반파국에 군대를 파견하여 왜국 야마토와 합동으로 삼국 연합군을 편성해서 신라왕의 야욕을 꺾을 수 있습니다.”

“대왕, 과연 기가 막힌 연횡책(連橫策)입니다. 즉시 반파국으로 특사를 파견하겠습니다. 야마토 긴메이 왕도 대왕의 방책을 알면 박수를 칠겁니다. 이번에는 대왕의 방략이 맞아떨어질 겁니다.”

야마토 조정은 백제왕의 파병 요구에 대장군에 키노워마로스쿠녜(紀男麻呂宿禰), 부장군에 카하베노오미니헤(河邊臣瓊罐)와 그의 부인을, 장수에 츠키노키시이키나(調吉士伊企儺)를 임명하고 지난번 관산성 전투 때 파병했던 숫자와 비슷한 왜군을 보냈다.

카하베노오미니헤의 처는 여인으로 무사 집안 출신이었다. 그녀는 일당백의 검술을 지니고 있었다. 왜군들은 일단 백제에 주둔해 있다가 연합군에 가담하기로 했다. 왜군들은 백제왕의 파병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오긴 했지만, 그들에게는 칠 년 전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군에게 전멸당한 악몽이 있었다. 그때 관산성 전투에 참여했던 유지신(有至臣)과 물부막기무련 등은 겨우 살아서 돌아갔다.

“양화왕비를 죽이든지 아니면 내치라고요?”

“그렇게 하는 게 뇌주 왕자가 살길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백제왕이 보낸 특사 비리막고(鼻利莫古)를 만난 뇌주는 난감했다. 그러나 특사의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반파국을 포함한 가야연맹이 관산성 전투 이후 신라의 보복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친 신라 정책으로 방향을 바꾸기는 했지만, 뇌주는 신라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반파국의 공식적인 태자 도설지가 월광이라는 이름으로 신라의 장군으로 활약하고 그의 여동생 월화공주가 신라왕의 후비(后妃)가 된 마당에 그가 신라를 마뜩해 할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지금 왕비의 아들과 딸이 신라국에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어서 왕비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왕비를 당장 내치겠습니다.”

“뇌주 왕자. 잘 생각하셨습니다. 반파국은 왕자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비리막고는 환하게 웃으며, 뇌주를 추켜세웠다. 뇌주는 즉각 명령을 내려 양화왕비를 당장 왕궁에서 내치도록 했다. 한순간에 날벼락을 맞은 양화왕비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뇌주를 사주한 자가 백제에서 온 특사 비리막고라는 것을 알고 그녀는 반파국의 자세한 사정을 알리는 서신을 서라벌에 있는 아들에게 보냈다. 비리막고는 가야 통으로 백제 성왕 시절부터 가야연맹과 백제를 오가며 외교적인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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