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이사부 정군의 출병

‘반파국과 인연이 이쯤에서 끝날 모양이다. 지아비도 죽고, 내 몸에서 나온 두 자식이 신라에 있으니 내가 손해 볼 것은 없다. 나도 친정인 신라로 돌아가야겠다. 내 조국 신라로 말이다. 여기 있으면 뇌주나 친 백제계 인사들 손에 죽게 될지도 모른다. 태자비를 죽이고 태손을 죽인 놈이 나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왕비는 즉시 짐을 꾸려 시비 두 명을 대동하고 궁성을 떠났다. 궁성 밖에는 왕비의 전갈을 받은 항우가 말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궁성을 떠나기 전에 뇌주에게 사정해보려고 했으나, 입만 아플 것 같았다. 이미 태자비와 태손까지 죽인 그를 믿을 수 없었다. 왕비가 떠난 사실을 반파국 장자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이사부 장군은 지금 즉시 군대를 지휘하여 반파국과 주변 소국들을 평정하시오. 신라 전군(全軍)에 대한 *선참후계(先斬後啓) 권한을 장군에게 일임하겠소이다.”

“존명, 대왕의 명을 받잡겠습니다.”

“전광석화처럼 움직여 반파국과 주변 소국들을 정벌해야 합니다.”

신라왕은 양화왕비가 월광에게 보낸 서신을 보고 반파국의 상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또한, 백제국에 나가 있는 세작(細作)들에게서 왜의 야마토 군대가 백제에 파견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사부는 휘하의 장수들과 군관들을 소집하고 작전명령을 내렸다.
* 선참후계 – 규율을 어기거나 상관에게 복종하지 않는 군사를 즉결처분하고 나중에 임금에게 보고하는 방식.

 “대왕께서 드디어 대가야 반파국과 주변 소국들의 정벌을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정벌한 소가야, 아라가야, 성산가야, 고령가야와 대가야 반파국은 다릅니다. 반파국에는 철갑(鐵甲)으로 무장한 기병대가 있습니다. 또한, 왜의 야마토 군이 이미 백제에 나와 있습니다.

이번 전투는 어쩌면 관산성 전투보다 더 치열하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즉,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죽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자는 산다’는 정신으로 전투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칠부 장군과 절부지(折夫智) 장군은 수군을 둘로 나누어 황산강 쪽과 소가야의 남해 쪽으로 진출하여 왜군을 막아야 합니다.

김무력 장군은 기마병을 이끌고 백제와 야마토군을 상대하세요. 그들을 만만하게 보면 큰코다칠 수 있습니다. 부장들과 별도로 작전을 짜서 그들을 단번에 제압해야 합니다. 월광 장군은 별동대를 이끌고 곧장 반파국의 궁성을 급습하세요.

나는 화랑 *사다함이 이끄는 본대를 지휘하여 금산재를 넘어 *주산성(主山城)을 공략하겠습니다. 작전 개시는 내일 해가 뜨는 즉시 발동됩니다. 각 군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령을 본대로 보내서 그날그날 전과를 보고하십시오. 이상으로 작전명령을 마칩니다.”
 * 사다함 - 진골 출신. 내물왕 7세손으로 급찬 구리지(仇梨知)의 아들이다. 서라벌 최고 미남 으로 화랑에 추대되었다.
* 주산성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주산리에 있는 성(城)

 신라왕의 명령이 하달되었지만, 서라벌은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이사부 장군의 작전 개시 명령에 따라 거칠부와 절부지는 밤을 이용해 전선으로 떠났다. 거칠부는 남해안으로 이동하여 왜의 군선 뒤를 쫓았다. 절부지는 황산강을 중심으로 진출하여 반파국으로 이동하는 모든 군선과 상선 등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김무력 장군은 기마대를 이끌고 밤을 새워 백제에서 반파국 궁성으로 들어오는 지점으로 향했고, 월광은 별동대를 이끌고 반파국 궁성으로 달려갔다. 신라 정벌군 총사령관인 이사부 장군도 청년 장수 사다함과 호흡을 맞춰 금산재로 향했다.

금산재 아래는 바로 반파국 궁성이 있는 주산성이 있었다. 금산재에서 말을 달리면 주산성까지 반 식경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이사부와 사다함이 지휘하는 본대는 모두 기마부대로 병력이 칠천 명이 넘었다. 본대는 밤공기를 가르면 서남쪽으로 말을 달렸다.

모든 부대가 실질적인 작전에 돌입하려면 내일 오후나 돼야 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부대는 절부지의 수군이었다. 갑자기 황산강이 통제되자 신라와 반파국을 오가는 상선들이 발이 묶였다. 뱃사람과 대상(大商)들은 심상치 않은 신라 수군의 움직임에 숨을 죽이고 추이를 지켜보았다.

신라 수군의 움직임이 곧 백제의 세작들에 의해 포착되어 백제군에게 전달되었다. 신라 수군이 먼저 행동을 개시하자 백제와 왜의 야마토 수군은 다급해 졌다. 야마토의 수군은 이미 반파국 도읍지에서 가까운 황산강에 포진하고 백제왕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의 수군은 황산강이 낯설었다. 그들은 늘 바다를 누비며 전투를 하거나 신라와 고구려를 대상으로 노략질을 일삼았다.

“화공을 준비하라. 반파국 왕궁 근처 황산강 가에 왜의 군선 오십여 척이 정박하고 있다. 마침 바람이 북서쪽으로 불고 있다. 화공으로 적선을 불태우기 좋은 때다.”

바람이 멈추자 황산강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왜군은 신라의 수군이 차마 내륙인 황산강에 군선을 띄울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신라 수군이 바다에만 포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신라의 군선이 조금 더 북서쪽으로 접근하자 안개 속에서 왜의 군선이 나타났다.

백제군으로부터 신라의 수군이 황산강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왜군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남쪽 바닷가로 진출했던 거칠부가 야마토의 수군을 격파하고 황산강으로 이동하여 절부지장군이 이끄는 신라 수군과 합류하였다.*계속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