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 중천태왕 신라 태후를 유혹하다

 “오, 과연, 과연 두 사람 모두 듣던 대로 경국지색입니다. 서천에서 강림하신 *서왕모(西王母)와 그의 딸 요희(瑤姬)가 틀림없습니다. 어서, 어서 이리 가까이 오세요. 짐은 두 분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밤잠도 잊은 채 뜬눈으로 지새워 속이 은결들 정도랍니다. 짐의 이 목 좀 보세요. 학(鶴)의 목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명한 태왕이 모녀를 보더니 갑자기 어둔한 몸짓으로 허둥거렸다. 태왕은 중신들의 입을 통해 그미와 석정 공주의 면면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미와 공주를 직접 가까이 보니 태왕은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마구발방으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할 지경이었다.

신선의 세계를 동경하는 태왕은 자신도 모르게 그미를 여자 신선 중의 최고의 존재로 추앙받고 있는 서왕모라 하였고, 석정 공주를 서왕모의 딸이며 *요지(瑤池)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진 요희라고 불렀다.

* 서왕모 - 도교 신화에 나오는 불사의 여선(女仙)으로 모든 신선을 관리 감독하는 일을 한다.
* 요지 – 곤륜산(崑崙山)에 있는 곳으로 서왕모가 살고 있는데, 3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반도(蟠桃-
복숭아) 나무와 십장생(十長生), 기화요초들 사철 만발해 있다.

 “소신, 폐하를 알현하오니, *주목왕(周穆王)이나 *유철(劉徹)은 감히 비견될 수도 없으며, *동왕공(東王公)이 강림하신 줄 알았사옵니다. 참으로 선풍도골이오며, 대제국의 주인이십니다. 소신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폐하 같은 헌헌장부는 처음 뵙습니다.”

그미의 찬사에 태왕은 지리산 가리산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짐을 그리 높게 평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멀리 계림국에서 서왕모가 오셨으니 *반도연회(蟠桃宴會)를 열어야겠습니다.”

“폐하, 그렇다면 소신이 고래의 눈, 곰 발바닥, 기린 입술, 용의 간으로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고, 삼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반도(蟠桃)도 푸짐하게 준비하여 잔치를 흥겹게 만들어 보겠나이다.”

“오호라! 염화미소로다. 이심전심이로다. 옥모 태후, 아니 서왕모께서 손수 준비를 하신다니 짐은 복이 많은 사내가 분명합니다.”

태왕의 이상한 태도에 중신들도 어리벙벙해졌다. 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도 모녀의 화려한 미모와 태도에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태왕과 그미는 도가(道家)에 관하여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중신들은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의 뜻을 몰라 우두망찰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 주목왕 – 주나라 제5대 왕으로 요지에서 서왕모를 만나 연회를 즐겼다고 함.
* 유철 – 한나라 제7대 황제인 한무제로 서왕모를 초빙하여 연회를 즐겼다는 전설이 있음.
* 동왕공 – 서왕모와 혼인한 사이로 부상대제동왕공(扶桑大帝東王公)이라고도 불림.
* 반도연회 – 서왕모의 생일이나 큰 회의가 있을 때 요지에서 행해지는 연회로 산해진미와 3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복숭아가 제공된다고 함.

 ‘태왕께서 좀 이상하다? 태왕과 혼인할 사람은 난데 모후만 바라보니, 혹시 태왕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멀리서 온 신붓감을 몰라보다니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나? 어머니가 태왕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태왕은 연상의 여인을 좋아하는 취향을 지녔나 보다. 계림국에서 보낸 사신이 고구려와 계림국 간의 국혼(國婚)에 관하여 자초지종을 전했을 터인데…….’

석정 공주는 혼잣말로 중절거리다 용기를 냈다. 가만히 있으면 어머니 때문에

자신은 태왕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것만 같았다.

“폐하, 소녀는 계림국 세신갈문왕(世神葛文王) 석골정과 김옥모 태후의 둘째 딸로 폐하께 의탁하고자 불원천리하고 고구려를 찾아왔사옵니다. 부디, 소녀를 어여삐 여기시고 거두어주시기를 간청하나이다.”

“오, 그대가 옥모 태후의 딸이며 첨해이사금의 친동생 석정 공주라 했겠다? 과연 그 어미에 그 딸이로다. 어쩌면 그리도 어미를 빼닮아 절세가인일꼬? 잘 왔구나. 짐이 장차 그대를 어여삐 여길 것이니라.”

‘장차 어여삐 여긴다?’

“폐하, 소녀는, 소녀는 두 나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고 폐하의 옥체를 더욱 강하게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폐첩(嬖妾)이 되고자 하나이다. 어머니는 곧 계림국으로 돌아가실 겁니다.”

석정 공주가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미가 돌아간다는 말을 하자 태왕은 펄쩍 뛰었다. 그미는 철딱서니 없는 딸의 허리를 쿡쿡 찔렀다. 그미의 반응에 석정 공주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 폐첩 – 귀여움을 받는 첩

 “아, 안 된다. 짐의 윤허가 있기 전에는 태후는 고구려를 떠날 수 없구나.”

“폐하, 소신은 고구려와 계림국의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고 싶어 딸과 수천 리 국내성(國內城)까지 왔나이다. 양국의 관계가 사이좋은 형제처럼 될 때까지 고구려에 머물 것이니 염려하지 마소서. 또한, 폐하께서 소신을 서왕모라 칭하시니 어찌 지아비인 동왕공을 두고 떠날 수 있겠나이까?

곤륜산 위에는 크고 높은 기둥이 있는데 하늘에 닿는다고 했습니다. 이 천주(天柱)는 길이가 삼천리이고 기둥주위에는 신선들이 모여 사는 선인구부(仙人九府)가 있습니다. 그곳에 큰 새 한 마리가 사는데 희유(希有)라고 합니다. 그 새의 척추 부분이 일만 구천리라 하는데, 울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며, 늘 남쪽을 향해 서서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동왕공은 이 새의 좌측 날개 밑에 살고, 서왕모는 우측 날개 아래 살면서 희유의 날개 위로 올라가 회포를 푼다고 했습니다. 동왕공이신 폐하께서도 저희 모녀를 희유 오른쪽 날개 아래 사는 서왕모와 요희로 여기시고 어여삐 여기시면 각골난망이겠습니다.”

태왕은 그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본인과 통하는 부분에서는 ‘그렇지’, ‘그럼’ 하며 맞장구를 쳤다.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짐이 오랜만에 태후와 더불어 도가의 전설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석정 공주는 짐의 다의(茶儀) 역할을 맡길 것이니, 그리 알고 정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에 택일하여 혼례식을 거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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