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의 죽음
마경덕

노점상 여자가 와르르 얼음포대를 쏟는다
갈치 고등어 상자에 수북한 얼음의 각이 날카롭다
아가미가 싱싱한 얼음들, 하지만 파장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사라지는 얼음의 몸, 한낮의 열기에 조금씩 각이 뭉툭해진다

질척해진 물의 눈동자들
길바닥으로 쏟아지는 땡볕에 고등어 눈동자도 함께 풀린다

 얼음은 얼음끼리 뭉쳐야 사는 법
얼음공장에서 냉기로 꽁꽁 다진 물의 결심이 풀리는 시간,
한 몸으로 들러붙자는 약속마저 몽롱하다

서서히 조직이 와해되고 체념이 늘어난다
핏물처럼 고이는 물의 사체들
달려드는 파리 떼에
모기향이 향불처럼 타오르고 노점상은 파리채를 휘두른다

 떨이로 남은 고등어, 갈치 곁에 누워버린
비리고 탁한 물
이곳에서 살아나간 얼음은 아직 없었다  
노점상은 죽은 생선에 자꾸 죽은 물을 끼얹는다 

 

 여름철에는 상점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얼음을 이렇고 좋은 시로 탄생시킨 시인께 찬사를 보낸다. 생각해보니 얼음은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보다 먼저 존재하였던 신이 만든 것인데, 다만 발달된 인간들이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엉뚱한 생각도 한다.

‘꽁꽁 다진 물의 결심’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젊어서는 꿈도 많았을 것이고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을 것이다. 한 살씩 나이가 들수록 얼음이 서서히 녹듯이 만사가 귀찮고 꿈과 희망도 사라진다.

이시를 읽다가 죽음을 떠올리며 꽁꽁 언 얼음의 결심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본다. 그러고 보면 이시는 얼음을 통하여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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