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에 4년치 수십만원 강요, "미납자 공개" 협박
불투명한 관리..학생간 살인극까지 빚어져 

지난 12일 인천시 남구의 한 오피스텔 4층에서 한 대학생이 학회비(학과별 학생회비) 문제로 다투다 같은 과 학생을 살해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천 A대학 정보통신과 주간부 학생회장 이모(25)씨가 학회비 유용 문제를 따지러 온 같은 학과 야간부 학생회장 윤모(25)씨의 머리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학회비가 들어 있는 예금통장을 관리하면서 일부를 꺼내 개인 용도로 쓴 것을 의심받자 윤씨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학교는 학과별로 학생 임원들이 신입생들로부터 4년치 학회비 20만~25만원씩을 거둬 체육대회나 축제 등의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의 회식비 등으로 써왔다.

학교 측은 사건 직후 올해 신학기부터 학회비 징수를 금지하기로 하고 19일 신입생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이런 내용을 알렸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이 과별로 많게는 수천만원의 학회비를 관리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앞으로는 학회비를 거두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학생회비를 왜 이중으로?..학생.학부모 '갸웃'
인천에서 빚어진 참극은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학년 초마다 대학 신입생과 학부모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이 바로 이 학회비다.

등록금 고지서에 붙어 나오는 1만원 안팎의 학생회비 외에 학과별로 학생회 임원들이 거두는 학회비는 학교나 학과에 따라 20만원 선에서 많게는 30만원 이상에 이른다.

학회비가 고액인 것도 그렇거니와 어째서 이중으로 거두는지 신입생이나 학부모들은 더더욱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대학에서 징수와 납부를 학생들의 자율에 맡기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도록 강요한다.

충남의 한 국립대 모 학과는 지난해 신입생들에게 단과대 학생회비 5만원과 학과 학생회비 18만원을 합해 23만원을 내도록 했다.

이 학과 2학년 서모(22)씨는 "작년 1학기 내내 행사 때마다 학생회비 납부를 독촉받았고 학생회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요한 학과 행사에서 배제되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이 학과는 웹사이트에 개설된 학과 홈페이지와 학과방 칠판에 미납자 명단을 게시하고 사물함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압박하기도 한다고 서씨는 전했다.

한 포털사이트의 토론방에는 최근 '지방 D대학 신입생'이라고 밝힌 네티즌이 학과 학생회로부터 우편으로 받은 학생회비 18만원 납부 안내문이 공개됐다.

이 안내문에는 '미납자는 4년간 완납할 때까지 행사 참여비를 따로 내야 하며 매년 나오는 비품(다이어리, 개인사물함 등)은 일체 받지 못하게 됩니다. (중략) 다른 학우들과 똑같은 혜택을 받으며 대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네티즌은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마련했다"면서 "대출금을 갚기도 벅찬 마당에 18만원을 학회비로 내야 한다니 한숨부터 나온다"고 했다.

그가 올린 글 밑에는 학과에서 거두는 학생회비의 부당성과 불투명한 사용처 등을 지적하는 글이 1천건 이상 달렸다.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관리에 의문
신입생들이 학과 선배들이 거두는 학생회비를 선뜻 내려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용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한 지방대 학생은 대학생 인터넷 토론방에 올린 글을 통해 학생회비 운영과 관리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우리 과의 학생회비는 20만원으로 50명이 모두 내면 1천만원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졸업 때까지 학생회가 주관하는 오리엔테이션, MT, 체육대회, 축제 때마다 1만~2만원씩을 따로 내야 한다. (중략) 과 학생회장이 학회비를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학년별로 돈을 거두면 과대표가 잘라먹는 경우도 있다. 과 임원들 일주일에 사흘은 어울려서 술을 마시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의문이다.'
올해 수도권의 한 대학에 입학한 권모(25)씨는 "입학 전 학과 학생회에서 집으로 전화해 과 티셔츠를 맞춘다고 40만원을 입금하라고 했다"면서 "셔츠 한 장을 사고 남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학생회 임원들이 학회비를 포함해 학생들에게서 거둔 돈을 유흥비로 쓴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수도권의 다른 대학에 다니는 안모(22.여)씨는 "신입생 때 4년치 학생회비 20만원을 냈지만, 그동안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설명 들은 적이 전혀 없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인천 A대학에서 빚어진 살인극도 학생들이 스스로 거두어 관리하는 학생회비의 운영 방식과 사용처가 투명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학회비 '악습' 폐지 등 새 바람 일어
대학가 전반에 흐르는 이런 분위기 속에 학과별로 4년치 학회비를 한꺼번에 거두는 '악습'을 폐지하거나 학생회비를 봉사활동 등 학과 구성원들이 공감하는 일에 사용하는 학교도 생겨나고 있다.

경북 경일대(총장 이남교)는 학과 학생회비 일시 납부를 대학가의 오래된 악습으로 보고 올해 신학기부터 전국 대학 최초로 학과 학생회비 징수를 금지했다.

이 대학은 신입생 가정으로 통신문을 보내 입학금과 등록금을 제외한 어떤 비용도 청구하지 않음을 알리는 한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입학식과 통합해 오리엔테이션 참가비도 없앴다.

입학 후에도 학과별 MT나 체육대회 등의 행사 때 참가 학생 외에 회비를 거두지 못하도록 하고 대신 대학이 학과 행사에 교비를 지원하고 정산서를 받는 방식으로 행사 진행의 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

정진규 총학생회장은 "지금까지 신학기가 되면 4년치 학생회비를 한꺼번에 내는 관행에 신입생들의 불만이 컸다"며 "(이번 조치로) 학생들이 주관하는 행사에서 자금 집행의 투명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충남 백석문화대(총장 고영민) 사회복지학부 학생들은 지난해 10월부터 학과 학생회비로 연탄을 구입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배달하는 등 봉사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 학부 학생들은 지난해 10월 신종 인플루엔자로 말미암아 학교 행사가 전면 중단되자 학생회비의 효율적 운영을 논의했고, 지역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하기로 뜻을 모아 '사랑의 연탄 나르기'를 시작했다.

사회복지학부 교수들과 학생 등 50여명이 참여하는 연탄 배달은 11월까지 계속돼 천안시내 3개 지역을 돌며 5천여장을 들여놓았다.

지난해 11월 7일에는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 프로그램에 참여해 장갑 100켤레를 노숙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이화정 학부장은 "학생회비로 보람된 일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 대견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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