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 모험을 찾아 떠나다

삽시루가 보위에 오르면서 국상으로 있던 상루(尙婁)가 사망하자 대사자(大使者) 신분의 창조리(倉助利)가 국상을 맡게 되었다. 6등급에서 1등급으로 급상승한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만큼 창조리의 역량은 뛰어났다.

창조리는 추모왕(鄒牟王) 주몽이나, 대무신왕(大武神王), 태조왕(太祖王)처럼 주변국들을 모두 정복하여 고구려를 대륙의 최강자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들이 정복한 주변국들은 옛 고조선의 잃어버린 땅에 있었던 나라들과 한나라의 괴뢰 정권인 유명무실해진 군현(郡縣)들이었다.

창조리는 고구려 제5대 모본왕과 제7대 차대왕의 선례를 많이 연구한 지략가이면서 웅숭깊고 명철한 정치가였다. 모본왕 해우(解憂)가 정사를 살피지 않고 방탕을 일삼자 신하 두로(杜魯)는 왕을 살해하였다. 또한 차대왕(次大王) 역시 신하인 명림답부(明臨答夫)에게 제거되었다.

중도 하차한 왕들은 하나같이 현실에 안주하며, 방탕과 안락을 추구하려 들었다. 두 명의 왕이 비명횡사한 뒤로 고구려는 새롭게 국력이 신장되는 계기를 맞기도 했다. 추모왕 이후부터 태왕들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숙제가 있었다.

그것은 주변국들에게 빼앗긴 고조선의 실지 회복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구려 태왕들은 고조선의 실지 회복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

밤마다 개구리들과 싸우느라 지친 추돌은 머슴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매일 밤잠을 설쳐가며 개구리들과 밤을 새울 수는 없었다. 추돌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내고 무릎을 쳤다.

“그래, 그거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재생아, 너 내일부터 나를 따라나서라. 하루면 충분하다.”

“태자님, 아니 추돌아, 무슨 일인데?”

재생은 추돌이 무슨 엉뚱한 일을 할까 봐 걱정되었다. 추돌이 생각해 낸 것은 다름 아닌 뱀을 잡아다 논에 풀어 놓는 거였다. 다음날 새벽부터 추돌은 재생과 머슴 두 명을 더 꼬여서 뱀을 잡으러 다녔다. 마을에서 시오리쯤 떨어진 곳에 뱀골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뱀들이 우글거렸다.

장정 네 명이 온종일 수고한 덕분에 뱀 수백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추돌은 밤에 뱀 한 가마니를 집 근처 논에다 풀어 놓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날 밤에 집 근처 논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뚝 그치고 말았다. 그다음 날 을불은 나머지 뱀들을 모두 풀어 놓았다.

재생은 상쇠가 혼자 쓰고 있는 방에도 뱀 두 마리를 몰래 집어넣었다. 추돌 일행이 잡아 온 뱀은 무재주, 꽃뱀, 물뱀 등 독이 없는 것들이었다. 한동안 마을에는 개구리 우는 소리가 뚝 그쳤고 마을 사람 여러 명이 뱀에 물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여름이 지나 추수철이 되었다.

“재생아, 우리 이렇게 있다가 아무 재미도 못 보겠다. 그리고 여기 너무 오래 있다가 관리들에게 잡힐지도 몰라. 우리 다른 일을 찾아보자.”

그렇지 않아도 재생 역시 추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태자님, 무슨 일을 하시게요.”

“너 입조심 안 할래? 태자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네가 입을 잘못 놀리면 우리 두 사람 관아에 잡혀가서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야?”

“태자, 아니지. 추돌님, 추돌아, 미안해.”

“추돌아. 하고 불러. 그리고 요즘 소금 장사를 하면 재미가 좋다는 소문을 들었다. 추수 끝나면 이 마을을 뜨자.”

추돌과 재생은 가을걷이가 끝나면 밀린 새경을 받아서 멀리 압록수 주변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추돌은 최근에 압록수 하류에 새로이 염전(鹽廛)이 확장되어 소금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풍문을 들은 바가 있었다.

“너희들이 알다시피 올해는 농사가 시원찮아서 새경 줄 돈이 없다. 내년에 주마. 그때까지 더 머물든지 아니면 내년 이맘때 와라.”

“아저씨,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쌀가마니는 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직 방아를 찧지 않은 쭉정이들이야.”

“저희를 바보로 아십니까?”

음모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중에 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추돌은 집주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추돌과 재생은 새경을 안 주면 관아에 신고하겠다고 집주인을 협박하여 겨우 밀린 새경의 반 정도를 받아 낼 수 있었다. 음모는 새경을 주면서 그동안 약값이며, 옷값 등을 떼고 주었다.

‘이 정도 돈이면 소금 장사를 하는데 겨우 밑천은 되겠구나. 빌어먹을 놈 같으니, 집주인 놈은 벼룩의 간을 빼먹을 놈이로다.’

추돌은 새경을 받자 수실 마을을 나섰다.

“추돌아, 가다가 할 일이 없으면 다시 돌아와. 네가 떠나면 나는 쓸쓸하고 허전해서 무슨 낙으로 살아가야 하니.”

“아가씨, 미안합니다. 오래 있고 싶었는데…….”

“아버지에게 말씀드려서 상쇠를 내쫓으라고 할 테니. 가지 마.”

음모의 딸은 추돌이 떠난다니까 너무 아쉬워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추돌의 마음도 역시 무겁고 답답하였다. 추돌은 상쇠가 괴롭히기보다는 수실 마을에서 반년 이상 살았으니 떠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한 마을에 너무 오래 있다 보면 신분이 노출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돌은 울고 있는 주인집 딸을 다독거리며,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것이라고 하였다. 추돌과 재생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뱀에 물려 여름 내내 고생을 하던 상쇠는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바보, 추돌이는 바보야.”

추돌과 재생은 주먹밥을 건네며 울고 있는 주인집 딸을 뒤로하고 무작정 압록수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뒤돌아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둘은 온종일 걷고 또 걸었다. 천 길이나 되는 높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어느 나루터에 이르니 어느새 땅거미가 기어 다녔다.

“댁들은 어디를 그리 급히 가슈.”

“압록수 가에 염전이 있다고 해서 가는 길이오. 댁은 어디 가오?” 추돌과 재생이 배에서 내려 주막을 찾고 있는데 웬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자의 행색이나 풍신을 보니 나이도 비슷하고 일감을 찾아다니는 사람 같아 추돌과 재생은 내심 반가웠다. 둘은 온종일 걷느라 말 한마디도 못 해 입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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