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 위기를 맞다

“백성들이 살기 어렵게 된 것은 모두 삽시루 왕 때문이다. 정사는 내팽개치고 황음(荒淫)에 빠져 방종(放縱)한 결과다. 더 늦기 전에 왕을 갈아치워야 한다.”

“나라의 영웅 안국군을 무참히 죽이고 돌고 장군을 죽인 패도(悖道)한 삽시루 왕을 몰아내야 고구려가 살 수 있다. 삽시루를 몰아내자.”

“삽시루 왕이 보위에 오래 앉아 있을수록 백성들만 죽어 나간다. 빨리 삽시루를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삽시루를 왕위에서 끌어 내리고 을불 태자를 왕으로 받들자.”

“우리가 살길은 오로지 을불 태자를 왕으로 추대하는 것밖에 없다.”

나라 안팎이 아우성이었다. 백성들이 모이는 저잣거리나 빨래터 장터 등에서는 백성들의 원성이 날로 더해가기만 하였다. 백성들의 불평불만이 크다는 것을 조정 중신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삽시루 왕에게 고하는 자가 없었다. 고했다가 기분이 상한 왕에게 어떠한 처벌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중신들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만 갔다.

‘삽시루가 실덕과 실정으로 백성들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새로운 국상 창조리는 상당한 역량을 지닌 자라 들었는데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어리석은 임금을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인가.’

추돌 역시 날이 갈수록 고민이 많아졌다.

“재생아, 나는 한 달간 재모 부대장과 산골로 돌아다니며, 소금과 방물을 팔러 다녀와야겠다. 산속은 장사치들 통행이 뜸해서 물건이 잘 팔릴 것이야. 나와 재모 부대장이 없는 동안 집안 단속 부탁한다.”

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추돌은 재모와 내륙 지역을 돌며 민심을 점검하고 싶었다. 이참에 재모에게 자신이 을불 태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자기 뜻을 말해줄 참이었다. 또한, 내륙에 사는 백성들이 삽시루 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추돌과 재모는 조랑말 두 필을 준비하여 물건을 잔뜩 싣고 내륙 지방으로 향했다. 뱃길이 닿는 지역은 소금과 생필품을 쉽게 살 수 있었지만 내륙 지역은 상인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못했다.

두 사람은 압록수에서 남쪽으로 하루 반나절을 걸어 낙랑국과 가까운 국경 지역 마을에 도착하였다. 창동이라는 지역으로 마을 규모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재모가 요령을 흔들어 소금을 팔러 왔다고 알리자 금방 마을 아낙들이 몰려들었다. 두 사람은 마을 한가운데 소금과 물건들을 내려놓고 장사를 시작하였다. 추돌은 물건을 팔면서도 마을의 규모와 마을 사람들의 행색을 유심히 살폈다.

“소금 한 됫박에 한 냥이오.”

“이보시오. 어디서 가져온 소금인데 그렇게 값이 싸오? 다른 상인은 한 됫박에 두 냥을 받던데.”

“우리 대장께서 창동 마을 분들은 마음씨 곱고 착하니 소금값을 싸게 드리라고 하였소이다.”

재모는 마을 주민들이 반색하자 신이 났다.

“대장님이 참으로 인심이 좋게 생겼소이다. 세상에 내 육십 평생에 물건값을 깎아주는 장사치는 처음 봅니다. 삽시루 왕이 대장님처럼 인덕도 많고 정치도 잘하면 얼마나 좋을꼬.”

나이든 여인이 싼값으로 소금을 사면서 중얼거렸다.

“이보시오. 삽시루 왕이 그리도 정치를 못 하오?”

추돌이 여인에게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숙부와 동생을 죽이고 죄 없는 조카 을불 태자까지 죽이려 드는 자가 왕이 되었으니, 매년 흉년이 들고 역병이 창궐하지요. 어서 빨리 우리 을불 태자님이 고구려를 다스려야 하는데, 도대체 태자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시기에 나타나지를 않으시나.”

추돌은 귀를 의심하였다. 분명히 여인의 입에서 을불 태자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여인은 아무 거리낌 없이 무서운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고 있었다. 추돌은 오랜만에 을불이라는 이름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깊은 산골 촌부가 나의 이름을 입에 올리다니…….’

추돌은 마을 사람들에게 싼값에 물건을 팔고 다른 마을로 이동하였다. 계동, 엄우촌 등지를 돌고 마지막으로 사수촌(思收村)에 들렀다. 그런데 그만 해가 떨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주막은 아니지만 돈을 받고 잠을 재워주는 어떤 노파의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추돌은 하룻밤 묵는 값으로 한 사람당 소금 반말을 주기로 하였다. 추돌은 인심을 써서 두 됫박을 더 얹어 주었다. 그러자 노파가 추돌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두 됫박만 더 달라고 떼를 썼다.

“소금이 많이 남은 것 같은데 두 됫박만 더 주시구랴. 밖에 있는 조랑말도 내가 풀과 물을 주고 밤새 돌봐 줄 테니까 조금만 더 생각 좀 해줘 봐.”

“할머니, 저희도 장사해야지요. 두 됫박 더 드렸잖아요.”

“조금만 더 인심을 써. 마음씨도 곱고 착해 보이는 사람들 같은데.”

“할머니, 안 됩니다.”

재모가 억지를 부리는 노파를 제지하자 노파의 안색이 금방 변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젊은 사람들이 부모도 없나. 늙은이가 불쌍하지도 않아.”

노파는 움푹 들어간 눈알을 부라리면서 두 사람을 한참 동안 쏘아보고는 사라졌다. 그 눈빛이 얼마나 사납고 음습해 보였던지 재모는 몸서리를 쳐댔다. 피곤에 지친 두 사람은 금방 코를 골았다. 팔고 남은 소금이 네 말 정도였다. 소금을 다 팔면 가까운 박작상단이 운영하는 중간 거래소에 들러 소금을 받아 오면 되었다.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두 사람이 길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고 막 집을 떠날 때였다. 노파가 갑자기 추돌의 허리춤을 잡고 소리를 질러댔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동네 사람들, 도둑이 들었어요.”

“할머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누가 도둑이란 말입니까.”

노파가 입에 거품까지 물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이웃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도둑이 들었다는 노파의 소리에 놀란 사람들은 지게작대기, 낫, 도끼, 몽둥이를 들고 나왔다.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