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5
최서림

시는 진물이다

진물을 빨아먹고 피어난 모란꽃이다

모란이 피는 순간만큼의 해방이고 자유다

잠깐 숨 돌리려 올라온 해녀다

시는 여기저기 숨구멍이

뚫렸다 막혔다 하는 말의 감옥이다

자신보다 무거운 짐에 눌려

절뚝거리며 헐떡거리며

말의 고삐에 끌려 다니는 노새다

길이 보이지 않는 시대

길을 찾아 더듬는 소경 같은 시는

가물거리는 촛불이다

레테의 강만큼이나 깊고 어두은 심연이

시의 몸속에 들어있다

과연 시에도 노도 닻도 없는

조각배만큼의 안식이 있는가

‘시는 시인이 지어 짜낸 내면의 상처와 같은 진물이며 거기서 화려하게 핀 꽃’이다. 어떤 평론가는 최서림씨의 시는 부처의 설법을 듣는 것 같다.라고 표현한 분도 있었는데 아마도 이 시처럼 구구절절 공감이 되는 내용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예술가들은 창작을 하면서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갖고 있을 것이다. 보다 좋은 표현을 찾아 홀로 진땀을 흘리고 밤을 새우는 일들을 작가들은 허다하게 경험하였을 것이다.

완성된 작품이라고 치워놓았다가도 다시 보면 어딘가 고칠 곳이 많고 그래서 어떤 시인의 시는 퇴고시보다 처음 발표한 작품이 훨씬 더 좋은 경우도 많이 본다. 그것은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자기 작품에 대한 불만과 더 좋은 작품을 쓰고 싶은 욕망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뿐인가 자기반성과 회의도 많다. 작품은 아름답게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면서 정작 사람냄새는 수정을 못하여 속이 좁고 볼품없다는 생각과 실망으로 예술가들을 멀리 하기도 하고 창작을 접기도 한다.

그러나 영영 작품을 접는 작가는 아직 못 보았다. 몇 해가 지난 후에 다시 창작을 붙잡고 행복한 삶을 산다. 어떤 종류이든 작가에게 창작과 작품은 행복과 고통을 동시에 주는 가장 매력적인 애인이며 평생 모시고 사는 대상일 것이다.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