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부 – 무술대회에 참가하다

“주모, 여기 국밥하고 탁주 좀 내오게. 고기 안주도 내오고. 그리고 봉놋방 하나 준비해 주게. 오늘 밤 묵을 걸세.”

재모가 주모에게 미리 은자 두 개를 선불로 건네자 주모는 허리가 꺾어질 듯 인사를 하였다.

“재모, 내일 무술시합에 나가보지 그래. 자네 쌍검술은 우리 박작상단에서 최고 아닌가.”

“대장님은 명궁 아닙니까?”

“좋아. 내일은 몸 좀 풀어보자고.”

두 사람은 내일 졸본성에서 개최될 무술시합에 출전하기로 뜻을 모으고 술잔을 부딪쳤다. 늦은 밤까지 주막에는 손님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손님보다 들어오는 손님이 더 많았다. 추돌과 재모는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술에 취한 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데 대개가 삽시루 왕을 욕하는 이야기였다.

“삽시루인가 삽자루인가 하는 자가 나라를 다 말아먹고 있어. 그자는 병에도 안 걸리나, 빨리 왕을 갈아치워야 해.”

“을불 태자님은 하늘로 올라가셨나, 아니면 땅속으로 들어가셨나. 벌써 몇 년째 감감무소식이야. 지금 고구려를 구할 분은 을불 태자님밖에 없어. 지금 삽시루가 계속 왕을 하면 고구려는 곧 망할 거야. 매년 외적들이 쳐들어와 선대왕들이 넓혀 놓은 거룩한 왕토를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고구려가 손바닥만 해 질 거라고.”

“삽시루가 선왕의 후궁은 물론이고 중신들 처와 딸들을 모두 건드리고 있다는데. 천하에 몹쓸 호색한이로고.”

“그자가 정말로 선대왕 아들이 맞나, 가짜 아들 아냐?”

“그런데 말이야. 똑똑하다고 소문난 창조리 국상은 어째서 그런 왕을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옛날에는 왕이 정사를 잘못하면 국상이나 조정 중신들이 왕을 갈아 치우기도 했다는데.”

‘백성들 마음이 삽시루에게서 완전히 떠났구나.’

추돌은 잔을 기울이면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졸본 지역 백성들도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대장님, 들으셨지요? 이곳 백성들도 대장님을 원하고 있습니다.”

“세력을 모아야 하네. 나 혼자 무엇을 어찌하겠는가? 덕망 있고 힘 있는 지방 세력을 끌어모아 든든한 지지 기반을 만들어야 하네. 지원할 기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졸본성의 밤은 금방 어두워지면서 밤공기가 찼다. 가을 초입인데도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었다. 추돌이 돌아다니는 곳마다 백성들은 삽시루 왕을 욕하는 소리를 뱉어냈다. 추돌이 처음부터 대의(大義)를 품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백성들의 틈에 끼어 생활하다 보니 저절로 삽시루 왕을 원망하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삽시루 왕이 숙부인 안국공 달가를 죽이자 모용외가 군사를 몰아 고구려를 침범하였고, 달가가 다스리던 숙신족과 양맥(梁貊)의 부족들이 자주 소요를 일으켜 백성들이 불안해하였다.

또한, 지방 관리들의 가렴주구가 날로 더해가면서 백성들의 고통은 늘어만 갔다. 달가와 돌고를 따르던 지방의 장군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소리가 날로 높아만 갔다. 그러나 삽시루 왕은 중신들에게 정사를 맡긴 채 사치와 황음(荒淫)에만 정신이 팔린 상태였었다.

“다음은 수실촌 출신 추돌이 순서다. 나와서 활을 잡아라. 화살 스무 발을 쏴서 과녁을 명중하는 개수로 등수를 정한다.”

추돌은 다음 날 무술시합에 출전하였다. 검술, 창술, 마술, 궁술, 격구 등이 있는데 추돌은 궁술대회에 참가하였다. 왕실은 예로부터 왕자가 태어나면 무예를 가르쳤는데, 특히 궁도는 주몽의 특기이기도 하여 왕실 남자들은 궁술에 노력을 기울였다. 고구려 왕자라면 궁술은 기본이었다.

아버지 돌고 역시 명궁(名弓)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고, 안국공 달가는 백발백중을 자랑하는 신궁(神弓)이었다. 약로왕은 을불 태자에게 어려서부터 다양한 무예를 연마하도록 하였다. 그중에서도 을불 태자에게 마술과 궁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추돌, 합격이다. 일차 시합에서 스무 발 쏴서 스무 발 모두 과녁을 명중시켰고, 이차 시합에서도 똑같이 스무 발 모두 명중 시켰다. 또한, 달리는 말 위에서도 스무 발 모두 명중 시켰다. 오랜만에 나타난 명궁이다. 장원을 축하한다.”

재모도 검술대회에 나가 장원하였다. 재모의 집안도 고구려 무관의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조의로 있었는데 성격이 후덕하고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뇌물을 좋아하는 상관의 음모에 걸려 죽고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재모 역시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직접 검술을 배우고 익힌 덕분에 달인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무술대회가 끝나고 장원과 준장원에 든 사람을 성주가 따로 합격 증서를 수여하고 주연을 베풀었다.

“오늘은 내 생일을 기념하면서 무술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런데 전년보다 올해는 눈부신 결과가 있어 나는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장원과 준장원에 든 분들은 장차 고구려의 사직을 떠받칠 대들보가 될 것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많이 들고 그간의 노고를 푸시기 바랍니다.”

‘성주는 매우 진실한 사람이다. 이마와 관중 그리고 눈썹과 코를 보면 두 마음을 가진 자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는데, 성주는 고지식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협잡(挾雜)을 일삼는 자는 아니로다.’

졸본성의 성주 을지연(乙支淵)은 젊고 유능하다고 조정에서도 칭찬하는 인사였다. 그는 야망이 크고 장차 조정에 들어가 큰 뜻을 펴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삽시루 왕의 정치행태에 크게 실망하여 지방성에서 실력을 키우고 장래에 혹시 있을지 모를 일에 대비하고 있었다. 을지연은 장원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술잔을 건네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추돌은 을지연과 초면이었지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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