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부 – 을불, 동명당의 주인이 되다

고구려의 영웅 안국공 달가와 돌고 왕자가 삽시루 왕으로부터 모함을 받아 모살 되거나, 사약을 받고 나서 일단의 성주들이 자신들을 지켜줄 자구책으로 비밀결사가 필요했다. 그들은 오골성주를 중심으로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젊고 패기만만한 성주들이 그동안 받들어 모셨던 정신적 지주였던 두 사람이 동시에 사라지자 그들은 한 동안 방황하다가 비밀결사를 조직하게 된 것이다. 돌고가 죽고 을불 태자마저도 사라지자 그들은 을불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당사자인 을불 태자가 추돌이라는 가명으로 스스로 나타나자 을지연은 감격하였다.

“성주의 뜻이 몇 개입니까?”

“두 개입니다. 하나는 무술대회를 열어 태자님을 찾는 거였고, 또 하나는, 또 하나는…….”

“괜찮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나머지 하나는 잃어버린 고조선의 땅을 찾는 일입니다. 삽시루 왕은 실지 회복에 뜻이 없습니다. 태왕의 위에 오르자마자 안국군 달가님을 죽였고, 그것도 모자라 아우인 돌고 장군을 죽였습니다. 이제 저희 동명당과 고구려 모든 백성의 희망은 오직 태자님 한 분 뿐입니다.”

을지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를 동명당의 회원으로 받아 주시겠습니까?”

추돌이 을지연에게 물었다.

“태자님은 이미 동명당의 주인이십니다. 소신을 비롯한 동명당원들은 태자님을 벌써 주군(主君)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동명당의 규모와 지지 기반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추돌이 을지연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을지연은 두 손으로 잔을 들어 술을 받으면서도 손을 바르르 떨었다. 그는 오매불망 찾아 헤매던 을불 태자가 어느 날 자신의 눈앞에 우뚝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같은 일이 실제로 펼쳐지자 을지연은 두 눈을 뜨고도 현실을 믿지 못하는 듯 했다. 그는 앞에 있는 사람이 을불 태자가 틀림없음을 확인하고 태자가 졸본성에 나타난 것은 하늘의 뜻이라 여겼다.

고구려의 각 성에서 소속된 군사는 성의 규모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보통 한 성에 2만 명 정도며, 그중 기마대는 5천 명 정도였다. 동명당은 6개의 성주가 일치단결되어 결성된 조직이었기 때문에 6명 이외에는 아무도 동명당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6명의 성주는 자신들의 생일이나 명절 또는 경조사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만남을 극도로 피하며, 보안 유지에 철저를 기하였다. 지금 현재 각 성에 반년 치 군량미와 창검, 기타 무기들이 비축되어 있어 언제라도 출병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유사시에 9만 명의 보병(步兵)과 3만 명의 기병(騎兵) 동원이 가능하다. 현재 국내성을 지키는 병력은 약 이만 명이고 가까운 곳에 주둔하고 있는 근접 지원 병력이 약 삼만 명쯤 된다. 다행히도 도성을 방어하는 병력 중에는 기병이 변변치 않다.’

추돌은 빠른 속셈을 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성(城)은 대성(大城), 성(城), 소성(小城)의 3단계로 나누고 중앙에서 관리를 보내어 다스렸는데, 이 가운데 대성의 장관을 욕살(褥薩)이라고 하였다. 동명당의 성주 중 오골성의 성주가 바로 욕살이었고 나머지는 처려근지(處閭近支) 혹은 도사(道使)였다.

동명당의 회원으로 오골성주 해사갈(解師葛), 박작성주 사중해(思中海), 요동성주 고해사(高海斯), 개모성주 명림모달(明林冒達), 남소성주 대중걸(大仲杰), 졸본성주 을지연(乙支淵)이었다. 그중 가장 관등이 높은 해사갈이 중심이고 나머지 다섯 명의 성주는 조정의 명령보다 그의 지시를 더 중히 여기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이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반역의 뜻을 품고 군사를 움직여 국내성으로 들이닥친다면 고구려의 운명은 끝장이었다.

“태자님, 마침 닷새 후면 오골성주 해사갈의 생일날입니다. 저희 동명당의 성주들이 모두 모입니다. 소신이 태자님을 직접 모시고 가서 다른 성주들에게 소개할까 합니다.”

“잘된 일입니다.”

추돌은 졸본성에서 머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까이에 지난 선대왕 때까지도 제사를 모시던 추모왕 주몽의 사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돌은 사당에 들렀다. 미리 준비해온 술과 음식을 진설(陳設)하고 참배하였다. 옆에 을지연과 재생이 서 있고 사당 밖에는 중무장한 병사들이 이중 삼중으로 경계를 섰다.

“할아버님을 뵙습니다. 할아버님께서 기틀을 마련하시어 세운 고구려가 어두운 세상을 만나 백성과 산천초목이 모두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혈손이 할아버님의 진취적인 기상을 되살려 주변 오랑캐들을 제압하고자 합니다. 소손이 단지 보위가 탐이 나서가 아닙니다.

고구려는 끊임없이 주변을 정복하여 잃어버린 단군의 땅을 모두 수복할 때까지 단 한순간도 멈춰서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소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삽시루가 왕위를 찬탈하였어도 할아버님처럼 고구려의 기상을 드높여 진나라와 그들의 괴뢰들 그리고 부여를 비롯한 주변국들을 무릎 꿇게 하는 군주라면 소손은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자에게 조국의 내일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소손이 왕위를 찬탈한 삽시루를 내치고 새롭게 고구려의 기상을 다시 살려 보고자 합니다. 할아버님께서 소손에게 힘과 용기를 주소서.”

추돌이 절을 하고 나서 을지연과 재모 그리고 함께 온 군관들이 차례로 추모왕 위패 앞에서 향불을 피우고 절을 하였다. 을지연은 미리 오골성주에게 전령을 보내 그간의 사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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