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부 – 반정을 준비하다

“도대체, 그놈이 하늘로 올라간 것이야, 아니면 땅속으로 기어들어 간 것이야. 벌써 칠 년이 다 되도록 그놈 흔적도 못 찾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고. 아니면 그대들이 그놈을 감싸고도는 거 아닌가. 과인이 언제까지 그자가 잡히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삽시루 왕은 중신 회의가 있을 때마다 신하들을 달달 볶아댔다.

“폐하, 을불은 고구려에 없는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전 국토를 이 잡듯 뒤져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폐하, 그자는 이미 죽어서 뼈와 살이 문드러져 흔적조차 없을 것입니다. 너무 심려하지 마소서.”

중신들은 삽시루 면전에서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그놈을 잡는 자에게는 포상을 내리겠노라. 만약 관리들이 잡으면 두 계급 특진과 함께 황금 만 냥을 하사하고, 백성들이 잡아 오면 관리로 특별 채용하면서 황금 만 냥을 내리겠다.”

삽시루 왕은 요즘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들려오는 소문에는 을불이 곧 대군을 거느리고 국내성으로 쳐들어올 거라 하였다. 백성들 사이에서도 그 같은 소문이 이미 파다하였다. 삼인성호라 하였다. 근거 없는 소문이 사실처럼 떠돌았다.

일부 관리들은 벌써 을불이 곧 왕이 될 것이라는 소문에 현혹되어 조정에서 지시하는 사안에 대하여 업무를 게을리하거나 건성으로 하기 일쑤였다.

“궁전은 한 나라의 위용을 나타내는데 모용외가 쳐들어와서 신궁을 불태웠다. 이 궁전은 선왕께서 지내시던 궁이었다. 또한, 지금의 대궐 전각으로는 나의 후궁들이 거쳐 할 장소가 몹시 협소하고 누추하다. 세금을 더 거둬들이고 백성들을 동원하여 대궐의 전각을 더욱 화려하고 크게 짓도록 하라.”

아무리 태왕의 지위에 있다 하여도 백성들의 처지를 무시한 처분은 중신들과 백성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게 마련이었다.

“폐하, 최근 몇 년간 가뭄과 역병으로 백성들의 사정이 아주 곤란한 지경입니다. 많은 백성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유리걸식하는 가하면 고향을 버리고 도적 떼가 되어 날로 민심이 흉흉해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백성들의 고혈을 짜고 굶주린 백성들을 동원하여 궁궐을 증축하는 일은 곤란하옵니다. 재고하여 주소서.”

국상 창조리가 삽시루 왕에게 고하였다. 나머지 중신들도 왕의 부당한 명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왕은 고성을 질러댔다.

“이 나라의 하늘과 땅과 산천은 오로지 왕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때문에 왕이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집에 살고 있으면 주변국들도 나를 우습게 본다. 그러니 경들은 과인의 명에 토를 달지 말라.”

‘삽시루가 이제는 미욱해지고 제정신이 아니구나. 정사는 나 몰라라 하고 매일 주지와 육림에 묻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창조리는 장탄식하며 물러났다. 아무리 중신들이 공사를 중단하고 세금 거둬들이는 조치를 중지하라고 거듭 주청하여도 삽시루는 듣지 않고 도리어 신하들이 자신의 명을 거역한다며, 처벌하겠노라고 협박까지 하였다.

중신들은 될 수 있으면 중요한 국정 사안이라 하여도 왕에게 보고하기를 꺼리고 대충 마무리하였다. 창조리는 몇몇 중신들을 집안으로 초대하여 조촐한 술상을 차렸다.

추달과 을지연은 날짜에 맞춰 오골성에 도착하였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시각이었다. 이미 도착한 네 명의 성주들은 추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돌 일행이 오골성에 도착하자 나발이 울리면서 군사들이 일렬도 도열하여 추돌 일행을 맞이하였다. 성안에 들어서자마자 오골성주를 비롯한 다섯 명의 성주들이 달려와 추돌을 맞이하였다.

“소신 오골성주 욕살 해사갈(解師葛)이라 하옵니다. 주군을 뵙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박작성주 도사 사중해(思中海) 주군을 뵙습니다.”

“요동성주 처려근지(處閭近支) 고해사(高海斯) 주군을 뵙습니다.”

“개모성주 도사 명림모달(明林冒達) 주군께 인사 올립니다.”

“남소성주 도사 대중걸(大仲杰) 주군을 뵙습니다.”

오골성은 요동에서 국내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전략상 아주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에 역대 고구려왕들은 오골성의 가치를 알아보고 욕살을 파견하여 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을불은 여러 성주 앞에 당당하게 섰다. 추돌과 성주들은 내실로 들었다.

“반갑습니다. 을불입니다.”

을불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성주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냈다. 한낱 도망자에 불과한 이 몸을 이리 환대해 주시니 여러 성주님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졸본 성주에게 동명당의 전모에 관해 이야기 들었습니다. 특히 오골 성주 욕살 해사갈님을 중심으로 하여 똘똘 뭉쳐 구국의 일념으로 오로지 나라의 안녕을 생각하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요동성, 개모성, 남소성은 사마씨의 진나라와 모용부 같은 오랑캐들의 침입을 막아내는 방패와 같은 곳입니다. 또한, 박작성과 오골성은 바닷길과 연결되어 해로를 타고 고구려를 침입하려는 외적을 막아내는 가장 중요한 성이기도 합니다.

물론 졸본성은 규모는 작아졌지만, 고구려가 태동한 신성한 지역입니다. 동명당이란 이름 아래 고구려의 웅비를 꿈꾸던 여러 성주님의 꿈을 펼칠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이 을불이 여러 성주님의 꿈을 실현시켜 드리겠습니다.

나라는 항상 발전 동력원이 돌아가야 활기를 띠게 됩니다. 무사안일을 고집하거나 추구하는 자 또는 집단은 곧 사멸하게 됩니다. 이 을불은 삽시루처럼 황음에 빠져 주색잡기를 하느라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는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임금은 빨리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모왕이나 대무신왕, 태조왕 등 여러 태왕께서 밤잠을 못 주무시고 말 잔등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시며, 동벌서정하시어 지금과 같은 대제국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삽시루는 동네의 파락호 같은 모용외의 침입을 두 번씩이나 받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모용외가 서천태왕의 능을 파헤치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는 패악을 일삼았지만 삽시루는 보고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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