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부 – 창조리의 결단

내가 만약에 고구려를 책임지는 위치에 선다면 하늘을 이불 삼고 대륙을 침상으로 삼아 동서로 십만 리 남북으로 오만 리의 잃어버린 단군조선의 고토를 반드시 회복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군왕이 될 것을 이 자리에서 확약합니다.

지금 고구려는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천년 제국을 꿈꾼다면 여러분은 이 사람을 믿고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고구려의 기상을 만방에 알려 사해가 우리 고구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조공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몸을 믿고 따라주십시오.

“주군을 따르겠습니다.”

“주군께서 목숨을 달라 하시면 당장 내드리겠습니다.”

“불 속에 들어가라 하시면 들어가겠습니다.”

을불의 열변을 듣고 여섯 명의 성주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모두 그 자리에서 엎드렸다. 그들이 지금껏 듣고 싶어 했던 소리였다.

“여러분, 일어나십시오. 오늘은 우리 동명당이 새롭게 태어나는 날입니다. 또한, 해사갈 성주의 생일입니다. 마음껏 드시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해사갈 성주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 모두가 학수고대하던 을불 태자님이십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우리의 목숨은 태자님에게 드렸습니다. 태자님의 대의와 만수무강을 비는 뜻에서 다 함께 만세를 부르겠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소리가 오골성을 넘어 멀리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추달은 오골성에 도착한 뒤로부터 추달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정식으로 을불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호칭은 동명당원 사이에서만 제한하여 사용하였다.

해사갈 성주는 조정의 중신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정의 정국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동명당을 이끄는 당주답게 사람이 조용하면서 눈빛이 매서우면서도 치밀하였다. 을불은 성주들에게 첫인사를 받으면서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주었다.

비단 모자를 쓰고 녹색 비단옷을 입은 을불은 고구려 태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그가 열 발짝만 움직여도 검술에 능한 호위무사 네 명과 재모가 그림자처럼 따라 움직였다. 첫날은 모두가 옥주와 가효(佳肴)를 들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고 다음 날 오후에 중요한 회의를 하기로 하였다. 을불은 성주들로부터 밀려드는 술잔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녁 만찬은 밤이 깊어서 파했다.

“어서 오세요. 누추한 집에 여러 대인을 오시라 했습니다.”

창조리는 삽시루에게 총애를 받는 간신들을 빼고 여러 중신을 한자리에 불렀다. 그들도 국상의 초대를 받고 대충은 국상이 초대한 까닭을 눈치채고 있었다. 국상의 집에 초대된 사람은 우탁(于卓), 을로(乙盧), 오맥남(烏陌南), 방부(方夫), 조불(祖弗), 소우(蕭友), 을보(乙寶), 창멱(倉覓), 우풍(于豊) 등이었다.

창조리는 손님들에게 술잔을 돌렸다. 초대를 받고 올 사람과 오지 않을 사람을 알고 있었다. 초대에 응한 사람들은 평소에도 창조리의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인사들이었다. 창조리는 자주는 아니지만, 자신의 저택이나 저잣거리의 잘 나가는 기루에서 중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조정의 중신들이 창조리의 집에 모였다고 하여 의혹의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국상, 오늘은 술상이 어느 때보다 푸짐해 보입니다.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오늘은 포식 좀 해야겠습니다.”

을불의 외조부 을보가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그는 풍신이 크고 평소에도 농담하기를 좋아하였다. 조정에 출사하고 있지만 늘 외손자인 을불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또한, 조정에서 창조리와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인사이기도 했다.

“오늘 자리는 요즘 태왕의 정치에 대한 각자의 허심탄회한 생각을 나눠보자는 뜻에서 마련하였습니다.”

창조리의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각자의 소회(素懷)를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태왕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이대로는 곤란합니다. 초후, 연후, 태후, 기타 후궁들의 새로운 거처를 위하여 궁궐을 증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유리걸식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을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을로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삽시루가 보위에 오르고 거의 매년 역병이 창궐하고, 심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가뭄이 심한 지역 백성들은 산적이 되거나 유랑민이 되어 고향을 떠나고 있습니다. 삽시루는 백성들의 고통은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궁궐 증축은 나중으로 미뤄져야 합니다.”

조불이 맞장구를 치며, 거들었다.

“삽시루가 왕이 되고 나서 우리 고구려가 약소국으로 전락하였습니다. 무슨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오맥남이 눈치를 보고 있다가 한마디 하였다.

“고구려는 움직여야 합니다. 한겨울 곰처럼 굴속에 들어가 잠만 잔다면 고구려는 주변의 이리 떼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삽시루 왕은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특단의 방안이 있어야 합니다.”

우풍은 을불이 태자 시절 스승이기도 했다.

“삽시루는 이미 백성들의 마음에서 떠났습니다. 그가 무얼 하든 백성들은 냉소로 일관하고 있어요.”

소우가 잔을 비우고 나서 묵직한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창조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가 말없이 술잔만 비우자 중신들도 창조리의 눈치만 살폈다. 술자리가 무거운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국상, 한마디 하시지요.”

을보가 정적을 깼다.

“그럼, 한마디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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