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령 전설 <1> 박달 한양에 가다

스물 초반의 훤칠하고 단단해 보이는 체구의 한 사내가 이마에 난 땀을 훔치며 숨을 헐떡였다. 도포 자락은 땀과 먼지, 흙탕물로 얼룩이 져서 집을 떠난 지 꽤 오래된 듯했다. 어깨에 멘 큼지막한 괴나리봇짐이 사내를 더욱 힘들게 하였다.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길은 가파르며 험준했다. 늦은 오후 봉양의 한 주막에 들려 국밥 한 그릇 들고 걸음을 재촉하였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지루한 산길만 이어질 뿐이었다.

“아, 큰일이다. 벌써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데 이 일을 어찌한다. 이럴 줄 알았다면 주막에서 하룻밤 묵는 건데. 에이, 초행길인데 괜히 고집을 부려 이 고생을 하다니. 빨리 가야지 잘못하면 산속에서 밤새 헤매게 생겼어."

어쩌다 이등령을 넘어오는 사람에게 고갯마루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물으면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일관 된 답변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 산길을 가는 사내에게 측은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였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과 산새들만이 사내의 고된 여정을 알아줄 뿐 산속을 조용하다 못해 너무 적막해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어쩌다 먼 데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에 어깨가 움찔할 때도 있었지만 사내는 두려움을 잊기 위하여 속으로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생전 처음 집을 떠나 한양으로 향하는 발길이 가볍기는 했지만, 차차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발걸음은 무거웠고 등줄기는 땀으로 후줄근해졌다. 사내는 다리도 아프고 등에 멘 괴나리봇짐이 어깨를 짓눌러 너럭바위에 앉아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산봉우리와 중턱에 푸르스름한 운무(雲霧)가 내려앉아 더욱 스산해 보였다. 산세가 험하고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약간 보일 뿐이었다.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갈까? 이대로 계속 걸어도 주막이나 마을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찌한다? 도중에 산 도적이나 호랑이라도 만나면 어쩌지?’ 사내는 중얼거리면서도 시장기를 느꼈던지 괴나리봇짐에서 주먹밥 한 개를 꺼내 먹으려고 하였지만, 입안이 깔깔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무심히 흘러가는 운무를 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골몰했다. 다리도 아프고 몸에 신열도 있는 것 같았다. 사내는 이왕 오른 산길이니 계속 가기로 마음먹었다.

'사나이가 이까짓 산길쯤이야. 그래, 산 도적이 나오던 호랑이를 만나던 이왕 가려고 마음먹은 길이니 계속 가보는 거야. 사나이 청운의 꿈을 여기서 멈출 수 없는 거야. 몇 년을 두고 불철주야 공부를 했는데…….’

그러나 산속은 평지와 달리 해만 넘어가면 사방이 금방 컴컴해지므로 여러 명이 함께 밤길을 걷지 않으면 매우 위험했다. 충청도 제천 땅 시랑산과 구학산 사이에 있는 이등령은 조정(朝廷)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아 자주 산 도적이 나타나 길가는 사람들을 위협해 재물을 빼앗거나 목숨을 해치기도 한다는 흉흉한 소문을 익히 듣던 터라 사내의 가슴은 점점 작아지기만 하였다.

자신에게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사내는 다시 산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해가 산으로 막 넘어가고 있었다. 숲이 울창한 산속은 금방 어두워졌다. 한참 앞만 보고 산길을 걷던 사내는 그만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내는 아무 길이나 나오면 걷고 다시 산속을 헤매다 오솔길 같은 것이 나타나면 걷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컹 -, 커컹 -

“아! 큰일이다. 이러다가 정말로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큰일인데…….”

멀리서 늑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가 울자 사방에서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산 저산에서 늑대들이 합창하는 것 같았다.

“이러다 늑대들 밥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주모의 말대로 봉양에서 하룻밤 자야 했는데. 민가나 사찰이라도 나타나면 좋으련만…….”

사내는 겁이 덜컥 나자 죽어라 하고 아무 방향이나 상관하지 않고 달렸지만 바람과는 반대로 자꾸만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헉헉대며 바위를 오르고 산등성이를 오르내리기를 수십 번도 더 했지만 민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내의 옷은 나뭇가지에 찢겨 너덜거리고 짚신은 다해져 발에 물집이 맺혔다. 젖 먹던 힘을 내어 사내는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만약 아무런 대비도 없이 산중에 있으면 사람 냄새를 맡고 산 짐승들이 몰려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내는 다리가 너무 아파 잠시 쉬어 가기로 하였다.

“여기서 산 짐승에게 잡아먹힐 수 없지. 너무 깊이 들어와 민가나 절이 없는 것일까? 빨리 산골 마을이라도 나타나야 할 텐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일어나 다시 걸어보자. 죽기 살기로 걷다 보면 무엇이라도 나타나겠지.”

이제는 두려움을 잊기 위하여 흥얼거리던 노랫가락도 잊고 사내는 뛰다시피 하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어느 정도 가다 보니 사람이 다닌 흔적이 나 있는 산길이 나타났다. 사내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안도하였다. 서너 식경 걸었지만 민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바람이 약간 불어도 나무들이 흔들리고 나뭇잎들이 소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앞에 산짐승들이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자 사내는 오금이 저렸다. 발바닥이 부르트고 통증이 전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발길을 재촉하였다. 그렇게 서너 식경 걸었을 때 멀리 불빛이 보였다.

‘아아, 살았다. 저기가 주막 아니면 사람 사는 집이겠지? 아냐, 혹시 도깨비불은 아닐까? 깊은 산속에는 도깨비불이 살아 움직인다고 하던데? 컴컴한 산속에 불빛이 보인 것은 분명 사람이 있다는 증거일 거야. 그래 저 불빛을 향해 달려보자. *계속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