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교사 예찬
 

헨리 반 다이크(1852~1933)

나는 무명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전투를 이기는 것은 위대한 장군이로되
전쟁에 승리를 가져 오는 것은 무명의 병사로다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은 이름 높은 교육자로되
젊은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명의 교사로다.
그가 사는 곳은 어두운 그늘
가난을 당하되 달게 받도다
그를 위하여 부는 나팔 없고
그를 태우고자 기다리는 황금마차 없으며
금빛 찬란한 훈장이 그 가슴을 장식하지 않도다
묵묵히 어둠의 전선을 지키는
그 무지와 우매의 참호를 향하는 돌진하는 그 어머니
날마다 날마다 쉴 줄도 모르고
청년의 원수인 악의 세력을 정복하고자 싸우며
잠자고 있는 정기를 일깨우도다
게으른 자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하고자 하는 자를 고무하며
방황하는 자에게 안정을 주도다.
학문의 즐거움을 가르침에서 옮겨주며
정신적 보물을 젊은이들과 더불어 나누도다.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노니
이것이야말로 그가 받는 보상이로다
지식은 서책에서 배울 수 있으되
지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오직 따뜻한 인간적 접촉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로다
공화국을 두루 살피되
무명의 교사보다 찬사를 받아 마땅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민주사회의 귀족적 반열에 오를 자
그 밖에 누구일 것인고
자신의 임금이요, 인류의 종복이로다

(시감상) 헨리 반 다이크(Henry van dyke1852~1933)는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 시인, 수필가로서 20세기 초기에 널리 인기를 누렸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하고 1877년에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다. 초기작 “The Story of the Other Wise Man”(1896), “The First Christmas Tree”(1897) 등을 신도들 앞에서 설교 삼아 낭독했던 것이 금방 인정받아 유명해졌다. 대표적인 작품집들로는 The Ruling Passion (1901), The Blue Flower (1902), The Unknown Quantity (1912), The Valley of Vision (1919), The Golden Key (1926) 등이 있다. 반다이크는 시집 Poems(1920)을 통해서도 인기를 얻었다.

창밖을 보니 아카시나무 꽃이 시들었다. 녹색 바탕에 흰 물감을 칠해 놓은 듯 흰무늬가 가득했었고, 방안을 가득 채우고 코를 후비듯 쏟아내던 향기가 사라졌다. 시를 읽어보니 옛 생각이 떠올랐다.

“학문의 즐거움을 가르침에서 옮겨주며/ 정신적 보물을 젊은이들과 더불어 나누도다./ 그가 켜놓은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노니”의 시구절처럼 아무 보상도 금빛 찬란한 훈장도 바라지 않고 나는 초등학교에서 근무했었다.

교육대학교 다닐 때 학보사 편집장을 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첫 번째 학교에 이어서 두 번째 부임학교에서도 학교 신문을 냈다. 70년 대 초기라 철판에 원지를 대고 철필로 글씨를 쓰면 글씨 쓴 부문만 긁히게 된다. 원지를 등사판에 붙이고 롤러에 잉크를 묻혀 손잡이를 잡고 굴리면 쓴대로 글씨가 나타난다.

섬마을 학교 숙직실에서 석유등을 켜고 작업을 했다. 컬러 잉크를 사용해 천연색 신문을 만들었다. 등사판으로 컬러 신문을 낼 수 있다는 신화를 창조했다. 총 8면을 냈는데 한 면이 8절지 크기였다. 끈기와 집중력이 요구되었다. 인천교육대학교주최 경기도전체 학교 및 학급신문 콘테스트(품평회)에서 제2회 대상을 차지했다. 옵셋 인쇄 신문을 내던 도시의 큰 학교를 제치고 당당히 최고상을 받게 되었다.

도시의 큰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의 특사로 학교를 찾아와 제작 방법 기술을 묻기도 했다. 나의 햇병아리 교사 때에는 오로지 학생들에게 표현의 기회를 넓혀주고,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협동과 창조의 기쁨을 맛보게 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 후 경기도 대표 새마을최우수 교사로 뽑혀 문교부에서 발행하는 책자에 소개되었다.

 요즘 교실과 학교가 무섭다. 선생님을 존경하기커녕 나무라면 대들고, 학부형은 교사를 폭행한다. 수학여행 갔다가 빨리 학교로 돌아와야 하는데 한 학생이 어디서 놀다가 늦게 왔나보다. 화가 난 여선생은 그 학생을 때렸다. 애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학부형은 그 여선생을 고소했다. 유사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