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지고지순한 사랑

“우리가 그런 이야기 말고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면 되잖아요.”

“사랑 이야기?”

박달은 금봉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시선을 맞추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자신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처지를 잠시 잊은 듯 금봉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도, 도령님. 왜 그러셔요? 제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아, 아니오. 그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래요. 내 영원히 그대를 잊지 않을 거요. 그대와 기이한 인연을 맺게 해주신 천지신명님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도령님, 그 말씀 소녀 가슴 깊이 새겨도 되는 거죠?”

“그, 그럼. 되고말고. 그대뿐만 아니라 이 산의 산신령님께서도 오늘 나와 그대가 나눈 모든 이야기를 다 아시고 계실 거요. 뿐만 아니라 하늘도 알고 저 하늘을 나는 산새들도 다 들어 알고 있을 거요.”

박달은 손가락으로 하늘과 시랑산 꼭대기를 가리키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 놓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령님, 소녀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요. 믿기지가 않아요. 이 순간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곧 그리 될 거요. 내 한양 가서 과거에 합격하면 그대에게 달려오면 그 순간부터 정말로 꿈같은 일이 펼쳐질 거요. 나를 믿지요?”

“걱정 말아요. 꼭 그리될 거요. 내가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 테니 들어봐요.”

“옛날이야기요?”

“그대도 이미 알고 있을 거요. 견우와 직녀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는 들을수록 재미가 있어요. 한번 들어봐요.”

“아이, 좋아라. 도령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라면 정말로 재미있을 거예요.” 금봉낭자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옛날, 옛날 아주 옛날에 하늘나라에 임금님에게 예쁜 딸이 있었습니다. 공주는 마음씨가 비단결 같을 뿐 아니라 얼굴도 아주 예쁘게 생겼습니다. 공주가 베를 얼마나 잘 짰던지 공주의 베 짜는 솜씨는 따를 사람이 없었습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날마다 열심히 베를 짰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너무 베를 잘 싸서 하늘나라 사람들은 공주를 직녀(織女)라고 불렀습니다.

공주는 베만 잘 짜는 것이 아니라, 음식 솜씨 또한 뛰어나 하늘나라 궁궐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직녀 공주의 손을 거쳐야 했습니다. 하늘나라 임금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직녀 공주를 애지중지하며 떠받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베를 짜던 직녀 공주는 향기로운 봄빛 향내에 취하여 베틀에서 일어섰습니다.

“오늘은 정말로 화창한 날 이구나. 이런 날 나들이해야 하지 않겠느냐?”

공주가 시녀에게 말하였습니다.

“예, 공주님.”

직녀는 선녀들과 궁궐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디선가 봄빛 향기가 코를 찌르고 새들은 아름답게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공주가 시녀와 넓은 들판에 이르렀을 때, 소를 몰고 나온 한 청년과 마주쳤습니다. 몸집이 당당하고, 아주 잘 생긴 젊은 남자였습니다.

‘아아, 하늘나라에 저토록 멋진 남자가 다 있다니. 도대체 어디 사는 누구일까? 정말로 잘생겼어.’

공주는 속으로 감탄하며 가던 길을 멈추고 젊은 사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젊은이는 바로 견우(牽牛)라는 사내였습니다. 견우란 이름은 소를 모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견우도 또한 직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이 하늘나라에 저렇게 아름다운 처녀가 다 있다니 놀라운걸? 그런데 내 가슴이 왜 이리 뛰지?”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반해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남몰래 만나서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드디어 결혼까지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하늘나라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자, 임금님은 펄쩍 뛰며 버럭 화를 냈습니다.

“뭐라고? 하늘나라 공주인 네가 하찮은 소몰이 청년과 혼인을 하겠다고? 절대로 안 된다. 많고 많은 사내 중에 왜 하필이면 그런 천한 사내와 그런 약속을 하다니. 절대로 안 된다. 너는 나중에 이 아비가 정해주는 사내와 혼인을 해야 하느니라.”

하늘나라 임금은 노발대발 하였습니다. 공주는 아버지 앞에 앉아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바마마, 소녀는 견우 말고 다른 사내와 혼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뭐라고, 너는 이 나라의 귀한 공주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끝내 이 아비의 명을 거역하려면 차라리 이 궁궐을 떠나거라. 꼴도 보기 싫다.” 하늘나라 임금님은 공주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하늘나라 임금님은 공주를 불러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공주의 가슴에는 견우 생각으로 꽉 차게 되었습니다. 베 짜는 일도 그만두고 하루 종일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늘 나라 궁궐 안은 먹구름이 낀 듯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늘나라 임금은 신하들에게 명을 내려 견우를 잡아오도록 하였습니다. 견우는 임금님 앞에 꿇어 앉혔습니다.

“너처럼 천한 몸이 어떻게 공주를 사랑하느냐? 마음을 바꾸도록 하여라!”

“…….”

임금님은 매우 노한 목소리로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견우는 뜨거운 눈물만

흘릴 뿐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놈, 무슨 말이라도 해보아라.”

“…….”

“에잇! 고얀 지고. 여봐라, 견우와 직녀를 멀리 귀양을 보내어라. 견우는 동쪽으로 구만리, 공주는 서쪽으로 구만리 떨어진 곳으로 각각 귀양을 보내도록 하라.”

임금님은 두 사람이 영원히 만날 수 없게 할 속셈이었습니다. 공주가 아무리 임금에게 사정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왕비도 공주의 편을 들었지만 임금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견우와 공주는 매일 남몰래 만나 눈물을 흘리는 일 말고 할 일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두 사람이 이별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견우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공주의 손을 잡고 맹세했습니다.

“직녀! 우리가 다시 못 만나게 되어도 직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오. 저 하늘에 떠 있는 별들에게 맹세하오. 잘대로 나는 그대를 한시도 잊지 않을 거요. 그대도 나를 잊지 않을거지요?”

“견우님, 물론이지요. 절대로, 절대로 견우님을 잊지 않을거에요.”

직녀는 견우를 끌어안고 오열하였고, 견우도 복받치는 설움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별의 시간을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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