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견우와 직녀

견우는 소를 몰고 서쪽을 향해 구만 리 길을 떠났고 직녀도 정든 하늘나라 궁궐을 떠나 외로운 발걸음을 떼어 놓았습니다.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가슴은 찢어질 둣이 아팠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은하수라는 깊고 깊은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견우는 매일 은하수에 나와 사랑하는 직녀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고 불렀습니다.

“직녀…….”

견우의 애타는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은하수 건너 직녀의 귀에까지 가늘게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은하수 강가로 달려왔습니다.

“아! 견우님이시다. 내 사랑하는 견우님 목소리다. 견우님-.”

그러나 은하수가 너무 멀어서 견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견우가 직녀를 부르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견우니임-.”

직녀도 목이 터져라 견우를 부르다 그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날이 음력 7월7일, 그러니까 칠월칠석날 밤이었습니다. 날이 새면 또 각기 동쪽과 서쪽으로 헤어져야 하는 슬픈 운명이었습니다. 해마다, 이때 흘린 견우와 직녀

의 눈물은 엄청나게 많아 땅 나라에서는 홍수가 났습니다. 그러면 집과 곡식들이 떠내려가고 동물들도 먹이가 없어서 굶어 죽어 갔습니다. 하루는 온 동물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해마다 음력 칠월칠일이면 홍수를 겪으니 괴로워서 못살겠소. 무슨 대책을 세웁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 죽을 것이오.”

몸집이 큼 까마귀가 외쳤습니다.

“견우님과 직녀님을 만나도록 해 줍시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오.”

까치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우리 까치와 까마귀가 날갯짓을 하며 줄지어 다리를 놓아 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견우님과 직녀님이 우리들 머리 위를 걸어가게 해서 만나게 합시다."

늙은 까마귀가 외쳤습니다.

“훌륭한 생각이오.”

모든 동물들은 대찬성을 하였습니다. 이윽고 칠석날이 다가왔습니다. 땅 나라의 까치와 까마귀들이 은하수 강가로 날아들었습니다. 서로 날개를 맞대어 길고 튼튼한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일 년 동안 애타게 그리워하던 견우와 직녀는 까치와 까마귀가 만들어 놓은 다리를 건너 얼싸안았습니다.

“직녀.”

“견우님.”

두 사람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맺혀 반짝였습니다. 그 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먼동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

람은 곧 헤어져야 했습니다.

“직녀, 일 년이 지나야 또 만날 수 있겠구려. 이대로 함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까치와 까마귀들의 도움으로 해마다 한 번씩 만나는 것도 다행한 일이오.”

견우와 직녀는 까치와 까마귀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하였습니다.

“직녀, 부디 몸조심하시오.”

“견우님도 건강하시어요. 그럼, 안녕히 가셔요.”

견우와 직녀는 아쉬운 듯 이별을 하였습니다. 서로 등을 돌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두 사람은 자꾸 뒤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칠석날에는 홍수가 나지 않고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칠석날이 지나면 까치와 까마귀들의 머리털이 빠지곤 합니다.

 

이것은 견우와 직녀가 머리를 밟고 지나갔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답니다.

“도령님,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다시 들으니 새삼스러워요. 이왕이면 두 사람이 이별하지 않는 이야기였으면 좋았을걸 그랬어요.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너무 슬퍼요.”

“슬프면서도 재미있잖아.”

“도령님, 왜 하필이면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거에요?”

“이제 내가 한양으로 떠나면 그대는 나를 그리워 할 거 같아서 그러오. 그러나 견우와 직녀도 일 년에 한번은 만나니 우리는 그럴 필요없을 것이오. 내가 과거에 떡하니 합격하면 되니까.”

"그렇지요? 당연히 도령님은 과거에 합격하실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이곳 벌말을 찾아 주실 거죠?"

"그게 무슨 말이오? 당연히 찾아와야지요?"

"도령님, 고마워요."

"고맙다니? 당연한 것을……."

박달은 금봉낭자의 섬섬옥수(纖纖玉手) 들어 뺨에 대고 비볐다. 이등령 정상에 간간히 바람이 불었다. 그때 마다 주변의 나무들이 흔들리면서 형형색색 물든 나뭇잎들이 바람을 타고 소풍을 나기도 하고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다가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기도 하였다.

“도령님, 우리 산에 올라가요.”

“산에?”

“네에. 산에 가서 도토리랑, 밤을 따서 맛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그래? 그럴까 그럼.”

금봉과 박달은 좁은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박달이 금봉의 손을 잡아주며 앞장서서 산에 올랐다. 시원한 바람이 고개에 있을 때보다 더욱 세게 불었다. 두 사람의 이마에 송알송알 맺혀있던 땀방울이 금방 식으면서 시원하게 해주었다.

“도령님, 저기 좀 보세요. 저기 밤나무에 밤이 탐스럽네요.”

“이곳에 있는 밤은 누가 따가지 않나봐?”

“나무꾼들이 가끔 와서 따가기는 하는데 마을 주변에 널리게 밤나무라서 다람쥐들이나 겨울 식량으로 따갈거에요. 이 산에 있는 도토리와 밤은 다람쥐나 청설모가 주인일 거예요. 오늘은 소녀와 도령님이 따가고요.”

“그럼, 우리도 다람쥐네.”

박달이 밤나무에 올라 긴장대로 벌어진 밤송이를 툭툭 치자 밤이 후드득 땅에 떨어졌다. 서너 그루의 밤나무에 올라 밤을 따자 금방 밤이 금봉의 치맛자락에 한가득 담겼다.

“도령님, 이제 그만하세요. 이 밤을 가지고 내려가서 까서 맛봐요.”

“나도 고향에 있을 때 동네 친구들과 산에 올라 밤을 까서 맛보곤 했었지. 그때가 벌써 십년도 더 되었을 거야. 그 친구들은 요즘도 산에 올라 더덕이랑 도토리 채취하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박달은 남녘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고향 생각에 잠겼다. 박달이 하얀 들국화 한 송이를 금봉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정말로 예쁘다.”

“정말로요?”

“그럼, 정말이고말고.”

“도령님이 괜히 소녀를 놀리시는 거 아니지요?”

다시 이등령으로 내려 온 두 사람은 밤 껍질을 까면서 서로의 입에 넣어 주기도 했다.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