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송병호

낙하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쓸쓸하다

 

수백 번은 아니라도

수십 번 서성거렸던 골목 간이주점 그리고

중앙도서관, 갈피 잡지 못할 때

한 뼘씩 커가는 해그림자에

나는 낯선 이방인이었다

 

황무지에 싹을 틔운 30여 년

사랑하는 이들 노동을 완수한 위로랍시고

감사의 표시랍시고

카드 한 장

단아한 분홍카네이션의 초청, 나만 아는

 

감사했습니다

먼지에도 알갱이가 있는 것처럼

선언적 외길, 볕과 그늘

 

소유했던 무엇도 다 내려놓은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

바람 든 무 구멍 숭숭한데

쓸쓸함과 고독에 대한 비유적 만남일까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이 시를 읽으니 멋진 중년의 지성인 남자주인공이 가을바람에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면서 얼굴은 삶에 대한 고민을 가득 담고 골목을 걷고 있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세상과 나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나와 나 자신에게서도 늘 살짝 비틀어지고 엇갈리기에 낯설다.

내 손길이 황당하도록 황무지에 30여 년을 싹을 틔운 느낌이다. 그대가 못 알아들었을까 더 확실한 설명이 필요했던 괄호처럼 나를 알리고 싶기에 다음을 예약하고 싶기에 나는 무수한 괄호를 쓰고 싶다. 먼지에도 알갱이가 있는 것처럼 존재를 인식시키고 싶다.

괄호는 나와 너의 불통을 해소하는 소통의 작은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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