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1901~1943)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낸 맘에는 내 혼자 온 곳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라를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李相和 1901.4.5~1943.4.25)의 호는 상화(尙火)다. 대구(大邱)에서 출생했다. 1919년 서울 중앙고보를 3년 수료하고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시위운동을 지휘하였다.

1922년 문예지 <백조(白潮)>동인, 일본의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문학을 공부하고 1924년 귀국했다. 1935년부터 2년간 중국을 방랑하고 1937년 조선일보사 경북총국을 맡아 경영하기도 했다.

이시는 땅과 들을 빼앗김으로써 봄마저 빼앗기겠다는 의구심을 주제 의식으로 표출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로 순환되는 봄의 환희보다는 생존의 기반을 빼앗긴 역사적 현실 상황에 대한 비극적 절망과 좌절하는 현실을 드러냈다.

“지금은 남의 땅”은 ‘일제에 빼앗긴 국토’를 말하고, “봄”은 ‘조국 광복’을 상징한다. “가르마 같은 논 길”은 ‘한국적 전원’,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는 ‘망국의 설움’을 안고 간다.

“입술을 다문”은 ‘기막힌 조국 현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말라 옷자락을 흔들고”는 ‘자유는 좌절하지 말고 이상을 향해 달려야 한다고 충동을 함’. 1920년대의 암울한 시대를 재인식하고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국토에 대한 한없는 애착을 노래하고 있다.

왜 침략을 받는가? 모든 국민이 나뉘어 분열을 일삼고 단결하지 않아서다. 작은 이스라엘은 주위의 큰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전쟁을 할 때마다 승리를 했다. 독일은 한반도 보다 조금 크지만 자기나라의 2배인 프랑스를 점령했고, 유럽전체를 괴멸시킨 적이 있었다.

일본도 한반도보다 조금 큰 섬나라이지만 한국은 물론 중국 일부, 동남아시아 일부, 미국과 정면으로 싸웠다. 고구려 때처럼 중국과 일대일로 싸울 수 없을까? 상대방의 힘을 알고, 자국의 국방력을 알며 온 국민이 단결하면 결코 점령당하지 않는다. 분열만 일삼고 도망칠 생각만 하니 점령을 당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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