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繡)의 비밀


한용운(1879~1944)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 놓았습니다. 심의도 짓고,
도포도 짓고, 자리옷도 지었습니다.
짓지 아니한 것은 작은 주머니에 수 놓는 것뿐입니다.

그 주머니는 나의 손때가 많이 묻었습니다.
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한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바느질 솜씨가 없는 줄로 알지마는
그러한 비밀은 나 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프고 쓰린 때에 주머니에 수를 놓으라면
나의 마음은 수놓는 금실을 따라서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는 그 주머니에 넣을 만한 무슨 보물이 없습니다.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는 것입니다.


한용운(1879.8.29~1944.6.29)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유천(裕天). 자는 정옥(貞玉). 법명은 용운. 호는 만해이다. 18세 때 동학에 가담했다가 그 운동이 실패하여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불문에 귀의하게 되었다.

화자는 ‘수의 비밀’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 수를 미완성의 상태로 남겨 두는 것으로 시를 마무리 짓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두 가지 들고 있다. 첫째, 그 주머니에 넣을 만한 보물이 이 세상에는 아직 없다, 둘째는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는 것’이다.

왜냐면 수를 놓으면서 님을 기다리는 것이 화자의 삶의 양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수놓기를 완결 짓는다는 것은 죽음, 곧 님을 기다리는 행위의 종결을 뜻하는 것이다. 그가 이 기다림 곧 자신의 삶을 인정하는 한 수 놓기는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게다가 설령 그가 수를 완성했다 하더라도 주머니에 넣을 만한 ‘보물’은 이 세상에는 아직 없는 결핍의 상황이므로 이 시에서도 ‘임의 부재’, ‘임의 상실’을 보여주지만, 임과의 재회가 가능함을 믿으며 기다리는 적극적인 자아적인 자아인식의 상태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의 기다림은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5세 때 내 외투를 짓는 것을 보았다. 피난을 가서 입을 옷이다. 안방에서 어머니, 할머니, 동네에서 가장 옷을 잘 짓는 아주머니가 옷을 만들었다. 당시에 구하기 힘든 모직물에 금빛 나는 단추를 달았다. 전쟁이 끝나서 피난을 가지 않았다. 입지 못하고 장롱 속에 고이 모셔 놓았다. 나는 화려한 옷을 입고 싶어서 피난 갔으면 했다.

요즘은 의상 디자이너가 스케치하고 컴퓨터그래픽으로 영상 옷을 먼저 만들어 보고 옷에 맞는 원단을 골라 실물을 만든다. 그러나 옛날 어머니들은 농사일, 부엌일, 가정대소사를 도맡아하면서 8남매 되는 아이들의 바지·저고리·치마를 눈짐작으로 손수 만들었다. 이 땅의 여인들은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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