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구가  구출범 24년 만에 꼭 두 배인 인구 50만의 '중대 도시'로 발돋움 했다.

▲남동역사의 산 증인 수령 800년의 장수동 은행나무. 기념물 제12호
이는 특별시를 제외한 전국 광역 자치구 중 대구 달서구와 인근 부평구에 이어 세 번째이다. 출범 당시 구는 농ㆍ축ㆍ수산업이 혼재한 산업 구조에 도시기반시설도 부족했다.

전체 면적의 74%가 논과 밭, 산일 정도로 도시라기 보다는 농ㆍ어촌에 가까웠다. 

오늘 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두드러지는 지역적 특성이 없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론 모든 분야에서 성장잠재력과 발전가능성이 풍부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남동뉴스>는 상,하에 걸쳐 숨 가쁘게 달려온  남동의 변천사와  '미래 비전'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인구 50만 돌파 남동.<상>이렇게 '중대 도시' 로 변했다.

▲‘남동’지명 1914년 일제 지방제도 개혁으로 처음 등장

▲지난1988년 개청 당시 임시 구청사 모습.
‘남동’이라는 지명이 역사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1914년 3월 1일 일제의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남촌면과 조동면을 통합하여 부천군 남동면으로 편입하면서부터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남동구 지역은 경기도의 남동출장소 관할이 이었다가 1981년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남구 남동출장소 관할이 됐다.

이후 계속되는 도시 확장과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1988년 1월 1일 인천직할시 남동구가 신설됐다. 그 해 8월 지방자치법 개정에 따라 자치 구로 승격했다.
 

▲24년만에 인구 25만에서 50만으로 증가, 외국인도 급증

구 출범 당시인 88년1월 인구는 6만 3천 가구에 25만명으로 인천시의 약 15.1%를 차지했다. 인구밀도는 ㎢당 4천964명, 가구당 인구는 3.97명이었다.

▲지난1988년 개청 당시 임시 구청사 모습.
그 후 대단위 아파트 건설, 공단 조성 등의 도시화․공업화가 진행되면서 1990년에는 30만을, 8년 후인 1998년에는 40만을 돌파했다.

그러나 2005년~2006년 구월주공 재건축 등에 따라 일시적으로 감소했다가 대단위 택지지구 조성 등에 따라 2008년부터 다시 지속적인 증가추세로 돌아서면서 올 6월 인구 50만을 돌파했다.시 전체 인구의 17.7%를 차지하고 있다 .

현재 구의 인구밀도는 ㎢당 8천797명으로 출범 시의 두 배에 달하지만 가구당 인구는 2.63명으로 가구당 가족 수는 크게 줄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구 인구변동 추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항은 외국인 주민수이다.출범 당시 124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수는 외국인근로자, 결혼이민자 등이 증가하면서 지난 2011년 법무부 통계자료를 기준으로 1만5천427명에 이르렀다.

이는 1988년보다 무려 100배 이상이 증가한 수치로 남동구가 급속히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북한이탈주민을 비롯하여 영주귀국 사할린 동포 등 남동구는 다양한 주민층을 형성하고 있다.
 

▲행정조직 9과 29계 1위민실 13동, 정원 379명으로 출범

▲지난 89년 재건축 이전 구월주공아파트 모습.
구는 출범 당시 9과 29계 1위민실 13동 공무원 정원 379명의 행정조직으로 개청한 후 그 해 6월 기획감사실을 신설, 바로 다음해인 1989년 보건소를 신설했다.

인구가 30만을 돌파한 1990년도에는 총무국과 도시국을 신설해 체계적․전문적 조직운용을 도모했다. 남동국가산업단지 조성이 활발히 추진되는 1992년에는 남동공단출장소를 신설했다.

행정여건 변화에 따라 직제의 신설 및 통․폐합 등 지속적인 기구개편이 이뤄졌으며, 1998년도에는 ‘계’제도가 폐지되고 ‘담당(팀)제’가 도입됐고, 지난 2012년 2월 복지전달체계 개선을 주요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 결과 구의 현 행정기구는 3국 2실 1단 22과 1직속기관 2소 19동 공무원 정원 830명이다.

이에 따른 구의 행정규모도 크게 증가하여 출범 이듬해인 1989년 185억원 규모이던 연간 예산액은 2012년 4천259억원으로 무려 2천200%가 증가했고, 출범당시 166억원에 그쳤던 지방세는 2011년 결산 결과 2,769%가 증가한 4천769억원을 징수했으며, 월간 민원처리는 1만6천292건에서 163%가 증가한 4만2천837건을 처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93년 소래습지공사 모습.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어 그 해 7월 1일 초대민선 구청장으로 김용모 구청장이 취임했고 제2대 이헌복, 제3ㆍ4ㆍ5대 윤태진 구청장에 이어 2010년 7월 1일 제6대 구청장인 배진교 구청장이 취임했다.
 

1991년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그 해 4월 15일 구의원 24명, 3개 상임위원회로 구성된 제1대 남동구의회가 개원하여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졌으며, 더불어 지방의회사무 기구인 의회사무과를 신설했고 1996년도에는 의회사무국으로 직제를 승격했다.

1995년 제2대, 1998년 제3대, 2002년 제4대, 2006년 제5대를 거쳐 2010년 7월 2일 14명의 의원으로 제6대 남동구의회가 구성되어 활동 중이다.
 

▲1차 산업비중 감소, 남동국가산업단지 중심 2차 산업 비중 급증

구의 산업구조는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산업구조 변화와 맥락을 같이 했다. 농가 및 축산 가구 수를 비교해보면 1988년 1,370가구였던 농가가 2010년 741가구로, 한육, 젖소, 고기소, 돼지, 닭 등 가축사육 가구는 1988년 512가구 41만2천227마리에서 2010년 36가구 1만3천148마리로 감소하면서 1차 산업의 비중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소래포구를 중심으로 하는 수산업은 큰 변동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으며, 최근 소래포구축제를 통해 소래포구가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부각되면서 소래포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새우젓, 꽃게 등 수산물의 인기가 높다.

▲ 옛 소래철교 협객열차 운행 모습.
무엇보다 남동경제의 근간이 되는 산업은 남동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 중심의 2차 산업이다. 논현동과 고잔동 일대 폐염전 부지를 활용하여 두 차례의 공사를 거쳐 총 9.57㎢ 규모로 조성된 남동공단은 1990년대와 2000년대 남동경제를 책임져왔다.

2011년도에는 ‘남동인더스파크’라는 새로운 네이밍을 선포하고 산업단지 이미지 제고와 글로벌브랜드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2011년 말 기준 6천387개 업체에서 8만 1천여 명의 근로자가 종사하고 있다.

반면 경제의 서비스화를 반영하는 3차 산업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1993년 최초로 6개의 여행업과 관광숙박업(호텔) 2개소가 등록한데 이어 2010년도에는 여행업 139개, 관광숙박업(호텔) 4개로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주택과 도시기반시설 확충 인천의 중심도시 부상

1988년 남동구의 지목별 토지이용현황을 보면 전답과 임야가 74% 이상을 차지했으나, 2010년 말에는 약 36%로 감소하고 대신 주거지역과 공업지역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농촌과 다름없었던 구의 모습이 탈바꿈하게 된 것은 1차로 1985년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하면서 시청을 중심으로 행정ㆍ문화ㆍ금융ㆍ경제의 주요기관이 밀집하게 되어 도시기반시설의 증가와 함께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또 구 면적의 약 17%를 차지하는 남동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공업지역 비중이 증가했고, 2007년 구월주공재건축, 2010년 소래․논현도시개발사업, 2011년향촌구역주거환경개선사업 등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수도권의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공간 구조를 재편함으로써 1988년 77%에 그쳤던 주택보급률이 2010년 말 기준 125%로 증가했다.

▲지난해 논현지구에 개관한 남동문화예술회관.
공업화와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에 따라 도시 기반 인프라 확충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1988년 136m에 불과했던 포장도로(지방도)는 무려 330%가 증가한 약 45만m를 개설했고, 40개소 4.88㎢로 구 전체 면적의 8.6%에 불과했던 공원․녹지시설은 두 배 이상 증가한 309개소 10.08㎢로 구 전체 면적의 17.7% 수준에 이르렀다.

인천시민의 휴식공간인 인천대공원이 위치해 있으며 특히 갯벌과 폐염전 지역을 생물군락지와 철새도래지로 복원하기 위한 소래습지생태공원 조성사업을 1997년에 착수하여 비록 중도에 관리권이 인천시로 이관되기는 했으나 현재 약 156만 1천㎡ 부지에 조성된 공원에서 습지 내 각종 해양생물을 관찰하고 천일염 생산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시민의 휴식공간이자 자연학습장으로 수도권 지역에서도 인기가 높다.

또한 도보문화 활성화와 전국의 ‘길’조성 붐이 일어나면서 남동구도 2010년부터 2011년 사이 관내 자연경관을 활용하여 인천대공원에서 소래습지생태공원을 연결하는 8km에 이르는 생태누리길을 조성하여 단순한 도보의 수준을 넘어 인천의 문화와 자연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산책로를 탄생시켰다.

출범 당시 1만705대로 인구 24명당 1대 수준이던 자동차는 2011년 말 17만9천931대로 인구 2.8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하게 되며 문명의 이기(利器)를 누리고 있으나, 등록차량 대비 주차장 확보율은 1988년 약 88% 수준이던 것이 2011년에는 약 84%로 감소하면서 심각해지고 있는 주차난 실정을 반영해 주고 있다.

▲교육도시 명성 구축 교육과 복지 서비스도 확충

▲작년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된 남동구.학습도시선정 현판식.
지역의 미래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남동구 교육의 변천과 발전은 교육기관 수의 대비를 통해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구 출범 당시 유치원을 포함 67개교이던 학교 수는 2011년 말 149개교로 2배 이상이 증가했다.

또한 초등학교의 경우 교원 1인당 담당 학생수가 1988년 48명 대비 2011년에는 18.3명으로 감소하여 집중적․개별적 교육을 통해 교육의 질이 향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개입과 제도적 정비를 통해 공교육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매년 총 예산액의 3%범위 내에서 교육경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공립보육시설 확충, 지역아동센터 및 공립도서관 등 각종 평생교육시설과 동 주민자치센터 운영 지원을 통해 남동구는 2006년 평생학습예비도시로, 2011년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됨으로써 교육도시의 명성을 구축해가고 있다.

 출범 당시 총 인구의 1.6%인 3,925명이었던 수급자 수는 현재 2.5배 가량이 늘어난 13,504명으로 총 인구의 2.7% 수준까지 증가했다. 또한 노인정 외에는 전무하던 사회복지시설은 종합사회복지관을 비롯하여 노인․여성․장애인별 시설과 보육시설 등 총 757개소에 이르렀다.

▲ 구월동 인천종합문예회관 주변  도심 모습. 도심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특히 2011년 말 준공된 논현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하여 저소득 주민뿐만 아니라, 사할린 동포, 북한이탈주민,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계층에 대한 복지욕구를 충족시키고, 지역 내 복지자원과의 연계를 통해 종합적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출범 당시 81개소에 불과하던 의료기관은 632개소로 확충되어 구민의 건강을 돌보고 있으며, 특히 남동구보건소는 청사 신축과 다양한 의료장비 및 전문 인력을 확충함으로써 보건의료서비스 수준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노인인구가 많은 간석․만수동 지역주민을 위해 금년 6월에는 간석보건지소를 개소할 예정이다.

▲여성합창단, 구 육상경기부 창단, 소래포구축제 개최

주민의 삶의 질을 판단하는 척도로서 문화와 예술을 빼놓을 수 없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이 1994년 남동구 구월동에 문을 연 후 많은 지역문화예술인들이 남동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남동구도 구민들의 문화예술 향유권 확대를 위해 문화도시를 지향하면서 공공문화기반시설 확충을 비롯한 문화예술사업을 확대해 가고 있다.

▲2001년 창단 당시 합창단 공연 모습.
우선 1995년 7월 구정소식지인 ‘남동마당’을 창간하여 구정에 대한 안내와 홍보 및 생활교양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17년간 구민들과의 소통의 창구로서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또한 2001년에는 40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남동구여성합창단’을 창단하여 2004년과 2006년 전국합창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하는 등 짧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그 명성을 떨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신개념의 주거도시로서의 면모에 걸맞게 남동문화예술회관, 소래․서창도서관, 소래역사관 등의 문화예술기반시설을 확충하면서 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 가고 있다. 구를 전국에 알린 홍보대사이며 일등공신인 소래포구축제를 빼 놓을 수 없다.

수도권유일의 재래어항인 소래포구를 중심으로 매년 10월중 나흘간 펼쳐지는 소래포구축제는 2001년 세 번째 밀레니엄을 맞아 30여 개 프로그램으로 처음 개최되어 약 13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왔다. 매년 해를 거듭할수록 소래포구만의 특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발전한 소래포구축제는 2007년 관람객 50만을 넘어섰다.

 

▲2001년 제1회 소래포구축제 모습.이 축제는 이제 수도권 명실상부한 포구축제로 발전했다.
이후 매년 관람객이 100만을 넘어서면서 전국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축제로 유명세를 타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구는 구민의 여가생활과 건강증진을 위해 체육 진흥에 힘써 왔다. 엘리트 체육인 육성을 위해 1992년 9명의 선수로 구성된 남동구 육상경기부를, 2004년 유소년축구단, 2008년에는 리틀야구단을 창단하여 집중 지원하고 있다.

특히 남동구 육상경기부는 매년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대회신기록과 한국신기록을 경신하며 명실상부 인천육상을 대표하고 있으며 주 종목인 1,600m 계주는 국내 여자육상부의 최강팀임을 자랑하고 있다.

출범 당시 전무했던 공공체육시설은 1992년 개관한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으로 명맥을 이어오다 만수복개천 유휴지에 1996년과 2004년 두 차례 종합체육광장을 조성했고, 2006년도에는 연면적 4천712㎡에 다목적 체육시설인 남동국민체육센터를 개관, 2008년도에는 대한주택공사가 건립한 남동수영장을 기부채납 받아 남동구도시관리공단에 위탁 관리․운영해오고 있다.

2011년 현재 남동구에는 28개소의 공공체육시설이 설치되어 구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다.

<표>남동구의 주요 구정지표 변화
  주요지표    1988(출범당시)       2012년(현재)   증감률    비교
   인구     251,388명        500,000명    98.9%  
   인구밀도      4,964명        8,797명    77.2%    ㎢당
   세대수      63,378 세대       189,607세대    199.2%  
 세대당 인구     3.97명        189,607명   ▼33.8%  
   외국인     124명        15,427명     
   통반   413통 2,048반       612통3,493반    
  행정기구  9과29계1위민실13동

 3국2실1단22과95팀

 1직속기관 2소19동

   
 공무원수     379명        830명   119%  
   예산    185억2천100만원  4천259억1천700만원   2,200%  


* 다음호에는 구민 50만 돌파 남동<하> '남동이 꿈꾸는 미래 비전은' 이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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