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정년차별, 넘어서야 할 벽은 아닐까요?

남녀차별, 끝없는 토론의 불길을 지피는 주제이죠. 직원채용에 있어서부터 급여‧육아휴직 등 근로조건, 승진, 퇴직에 이르기까지 숱한 이슈들이 단순한 남녀의 차이일 뿐인지 혹은 타파해야 할 차별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됩니다. 오늘은 약 2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들여다볼까 합니다.

순희씨는 전화교환원입니다. 회사는 순희씨에게 회사 취업규칙에 교환원 정년이 53세로 규정되어 있는 바에 따라 53세에 이른 순희씨를 정년퇴직 발령 조치하였습니다. 회사에는 일반직, 연구직, 기능직 직원 등 다양한 직렬이 있습니다.

전화교환원은 그 중 일반직 직원에 해당하고 일반직 직원의 정년은 58세인데, 그 중 교환원만을 53세 정년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교환원은 모두 여자직원들입니다. 순희씨는 교환원의 정년만을 짧게 규정한 것은 남녀를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를 신청했습니다. 노동위원회를 거쳐 소송이 시작되고, 이 사건은 대법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정년 및 해고에 관해 여성인 것을 이유로 합리적 이유 없이 남성과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즉, 단순히 성별을 이유로 남녀를 다르게 대우하면 차별이지만, 다른 대우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대법원은 교환원의 정년을 일반직 직원들과 달리 정한 것이 남녀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이 인정한 합리적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술발전으로 교환업무 자동화에 따른 잉여인력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장기간에 걸쳐 신규채용이 중단되어 왔으며, 교환원 거의 대다수는 정년 도달 이전에 조기퇴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이와 같은 정년의 차등은 노사협의를 통하여 결정되었으며, 조사 결과 현재 교환원 대다수는 정년 53세에 찬성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교환원의 정년을 다른 일반직과 같이 58세로 연장하는 경우 교환직 인력의 고령화가 심화될 것이고, 연공서열제로 인한 고용비용이 증가되는 반면 생산성은 저하될 것이라는 경영상 문제점 또한 근거로 들었습니다.

위 판결이 나오고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3년 오늘날, 위와 같은 판단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법원이 든 이유들은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합리적인가요? 우리는 여러 가지 면을 새롭게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20년 전 여성 교환원들이 정년에 이르지 못하고 조기퇴직을 한 것이 과연 업무가 고되어서일까요. 어쩌면 결혼이나 출산, 육아를 일과 병행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과거와 비하여 현재 일터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분명 향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 육아를 일과 병행하기는 여전히 어렵고 먼 길입니다. 출산과 육아를 마치고 사회로 복귀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이르는 ‘경력단절녀’라는 슬픈 신조어까지 등장했지요. 하물며 20년 전, 여성들은 어떤 이유로 정년에 이르지 못하고 일터를 떠나야 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노사협의를 통해 차등정년을 도입하였다는 사실, 다수의 교환원들이 현재 정년에 찬성한다는 사실들이 차별을 합리화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차별은 차별받는 집단의 실제 행동과는 다른 편견에 의하여 그 집단에게 열등성을 부여하는 제도화된 불합리한 관행입니다.

남녀평등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에 비하여 열등하다는 전통적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념과 태도를 일정부분 지배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불합리한 관행을 교정하고자 법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노사협의와 대다수의 찬성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차별을 합리화하였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기업의 경영상 악영향을 이유로 차별의 합리성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대법원이 기업의 경영 효율성을 평등이라는 가치보다 우위에 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느낌도 듭니다.

현재까지도 위 사례는 법원이 남녀차별의 ‘합리적 이유’에 관하여 판단하는 기준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후에 등장한 몇 가지 사건에 있어서도 위 판례의 태도를 이어갔지요. 강산이 두 번쯤 변했을 지금쯤, 우리의 인식과 기준은 어디에 놓여있을까요. 평등, 참 어렵고도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 위 사례는 대법원 1996.8.23. 선고 94누13589 판결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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