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함에 상관없이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되면 근로자입니다.

영철씨는 동네에서 제법 큰 사우나를 운영합니다. 직원도 40명 가까이 되는 어엿한 중소기업이지요. 몇 달 전 새벽 일찍 회사의 이사이자 사우나 관리주임인 주왕씨와 함께 사우나 내 음식점에서 판매할 식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차에 올랐습니다.

전날 밤 과음을 한 탓일까요? 영철씨는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고, 결국 잠시 정차하고 있는 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급히 핸들을 틀었지만 사고를 피할 수는 없었고, 결국 조수석에 타고 있던 주왕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영철씨는 보험회사에 보상금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보험회사는 보험약관상 ‘근로기준법에 의한 재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죽거나 다친 경우’ 보험금 지급책임이 면책된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영철씨는 주왕씨가 등기 기재된 이사라는 점을 들어 주왕씨는 근로자가 아니라 회사의 운영진이라는 점을 거듭 설명했지만 보험회사는 요지부동입니다. 결국 영철씨와 보험회사는 법정에서 주왕씨가 근로자인지 아닌지를 다투게 되었습니다.

법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및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그 실질에 있어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근로자임을 판단하여야 하고, 법인 등기부에 이사로 등기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할 것은 아니므로, 사고 차량의 운행목적 및 운행경위를 종합하여 보면 주왕씨는 회사의 이사로 등기되어 있기는 하나, 사실은 회사가 운영하는 사우나 등의 관리주임으로 근무했던 것이 인정된다고 하여 주왕씨가 이사라는 직함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고용관계에서는 사용자와 근로자 두 가지의 지위가 있습니다. 때로는 누가 사용자이고 누가 근로자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명확하지만,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매우 모호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명의상 대표와 실질적 대표가 서로 다른 경우가 그러할 것이고, 회사의 한 업무파트를 총괄하는 부장이 근로자들에게는 사용자의 위치에 서지만 회사의 임원들에게는 근로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이중적 지위가 때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위 사례처럼 실질은 사장의 지시를 받아 일하지만 서류상으로는 회사의 임원으로 기재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특히 민법상 위임계약 또는 도급계약은 그 외양에 있어 노무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여 근로계약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에 있어서는 이 ‘근로자성’에 관해 사안별로 살펴볼까 합니다.

위 사례는 회사와 주왕씨 사이에 맺은 계약의 실질이 근로계약인지 위임계약인지가 문제되는 경우이죠. 근로자가 회사와 고용계약(근로계약)을 맺는 것과는 달리 임원은 회사와 위임계약을 체결합니다. 고용계약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규율을 받지만, 위임계약은 민법의 규율을 받을 뿐입니다.

고용계약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노무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보수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며, 근로자가 업무를 수행하는데에 있어 사용자의 지휘를 받는 ‘사용종속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한편 위임계약은 위임자가 수임자에게 일정한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는 계약으로, 보수의 지급이 강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수임인의 인격이나 지식 또는 기량등에 대한 위임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립되므로, 위탁된 사무의 처리에 있어 수임인에게 다소나마 재량이 인정됩니다.

결국 어떤 사람이 임원의 지위에 있었으나, 업무 내용이 위임된 사무를 처리한 것인지 혹은 사용자의 지휘를 받아 노무를 제공한 것인지 애매한 경우 그 판단의 기준은 바로 ‘사용종속관계’입니다.

따라서 그가 회사의 이사 또는 감사 등 임원이라고 하더라도 그 지위 또는 명칭이 형식적이거나 명목적인 것이고, 실제로는 매일 출근하여 업무집행권을 갖는 대표이사나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일정한 근로를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관계에 있다거나 또는 회사로부터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는 외에 대표이사 등의 지휘‧감독 아래 일정한 노무를 담당하고 그 대가로 일정한 보수를 지급받아 왔다면 그러한 임원은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형식 보다는 실질에 있어 사용종속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위 사례처럼 위임관계인지 고용관계인지를 다투는 경우 뿐만 아니라 근로자성이 문제되는 다른 경우에도 동일하게 사용되는 판단기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가 되는 고용계약과 도급계약의 구별에 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위 사례는 대법원 1996.8.23. 선고 94누13589 판결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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