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전구일지라도 스스로 빛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민주당 송영길 인천시장 후보가 항상 자신에게 되뇌는 말이라고 한다. 어떤 큰 힘에 연결돼야 빛이 들어오는 전등이 아니라 역사와 민족 앞에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자주적인 인물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실제로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송 후보는 이른바 운동권 출신의 인권변호사였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4년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그는 이듬해 집시법 위반으로 서대문 구치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이후 인천에서 건설현장 배관용접공, 택시기사 등을 하며 7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나이 서른에 사법시험에 도전,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인천에서 인권.노동 변호사로 뛰며 노동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1999년 인천 계양에서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다 고배를 마셨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돼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았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386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하는 가운데 3선에 성공했다.

 ▲인천시 남동구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최근 인천시선관위 주최로 열린 인천시장.교육감후보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실천 협약식에 참가한 송영길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가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2001년 정풍운동, 2005년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출마,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찬성과 대북송금 특검 반대 등 정계 입문 후 이어진 그의 거침없는 소신 행보는 그를 386의 대표선수로 만들었다.

하지만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화살을 겨누며 쓴소리를 하는 그에겐 "건방지다.", "지나친 비판이다."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에 그는 옳다고 믿는 것은 밀고 나가는 `황소'같은 스타일 때문이라고 반론을 편다.

그는 최근엔 `신(新)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공개적으로 대권의 큰 꿈을 얘기했다. 그리고 그 징검다리로 서울시장 출마를 생각했다. 하지만 당의 요청에 인천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후보 수락 연설에서는 "야권의 단합으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바꿨듯 인천을 바꿔 한국의 심장으로 만들겠다."라고 했다.

인천을 변방이 아닌 대한민국의 경제수도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민족경제공동체'라는 큰 그림의 일부이기도 하다.

송 후보는 동북아 지역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로 앞서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일어일문학과에 편입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인으로서 스스로 빛나겠다는 원칙은 생활인 송영길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는 딸과 아들에게 "너희들에게 남겨줄 유산은 없다. 다만 자립할 수 있는 공부는 시켜준다."라고 얘기한다. 스스로도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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