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죽음의 뱃길
온조는 바닷길보다 고구려, 낙랑국, 대방, 마한의 소국들을 경유하여 최종 목적지인 위례로 진출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러 나라를 경유하면서 수많은 강과 하천 그리고 크고 작은 준령(峻嶺)을 넘어 수 천리 위례까지 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 잘 알고 있기에 육로를 적극 추천하지 못했다.

“이 어미 역시 얼마 전부터 우리가 남삼한으로 진출하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만에 가까운 나의 백성들이 남부여대로 고구려, 낙랑국, 대방, 마한의 여러 소국을 경유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 부담이 크다. 고구려는 폐하께 잘 말하면 경유할 수 있겠지만 낙랑국 최씨 왕은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 올 것이 뻔하다.

그럴 경우 우리는 낙랑국과 일전을 불사해야 할 것이야. 싸움은 우리에게 절대 불리하다. 우리는 장정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아녀자 노인 등 많은 유민이 있으니 낙랑국과 전투가 벌어질 경우 이들이 대부분 희생되고 말 것이다. 비류의 말대로 바닷길을 열어 남삼한 중 우체모탁국을 공략해 보는 게 상책(上策)일 것 같구나. 온조는 기마대를 이끌고 조심스럽게 남하하도록 하여라.”

“어머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저번에 온조 아우의 육로 진출 건도 아주 틀린 방법은 아니나 마한 중심부인 우체모탁국까지 남하하는데 무리가 따를 것 같습니다. 어머님의 말씀대로 아우와 상의하여 육로와 바닷길 개척에 묘안을 짜보겠습니다.”

“그래, 네가 나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구나. 온조와 대신들과 의논하여 우리 어하라 백성들이 남삼한으로 이주하는 데 실수가 없도록 하여라.”

소서노어하라는 일만에 가까운 남녀노소가 수 천리 머나먼 남삼한의 중심부 위례까지 진출하는데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이주하는 인원이 소수라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을 뱃길을 이용해 움직인다는 것 역시 많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조가 육로로 배가 남하하는 속도로 해안선을 따라 동시에 남하한다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자들 정성을 쏟아 어하라 백성들이 남삼한에 무사히 안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이 어미는 너희 형제의 능력을 믿는다”

비류와 온조는 배 건조에 박차를 가했다. 수시로 대신들과 남삼한으로의 이주 문제를 두고 토의를 하고 지혜를 모아 대책을 만들었다. 우선 50여 척의 배에 장정들과 잘 훈련된 병사들을 태우고 식량과 병장기(兵仗器)들을 싣기로 하고 나머지 큰 배 50여 척에는 아주 나이가 많은 연령층을 제외한 남녀 백성들을 태우기로 하였다.

백성들과 살림도구를 실으면 배가 무거워 항해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기에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싣도록 하였다.

드디어 기원전 19년 가을 소서노는 두 아들과 대소신료와 병사 그리고 백성 등 일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패수와 대수를 건너 배가 대기하고 있는 작은 항구로 이동하였다. 어하라에 남아있는 백성들은 나중에 다시 배편을 이용해 남삼한으로 이주시킬 예정이었다.

“우리 어하라 백성들은 이제 따뜻한 남삼한의 땅으로 간다. 이곳에서 그곳까지 가는데 보름은 걸릴 것이다. 백성들은 차가운 바닷바람과 파도를 조심해야 한다. 식량도 넉넉하게 준비하였으니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대소신료를 비롯한 지도자와 장군들은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챙겨야 한다. 자, 출항하라. 나발을 불고 북을 울려라.”

소서노어하라의 명이 떨어지자 100여 척의 배들이 길게 대오를 형성하여 남하하기 시작했다.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가 그려진 커다란 깃발을 배 선두에 꽂았다. 삼족오를 뱃머리에 꽂은 이유는 자신들이 고구려의 계통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항해 도중에 해적이나 다른 나라 선박과 마주칠 경우 고구려 계통의 대선단에게 감히 대적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다.

“자, 나의 충성스럽고 용맹한 어하라국의 기마대는 나를 따르라. 우리는 선단의 흐름에 맞춰 육로로 간다. 가는 길에 고구려, 낙랑, 대방, 마한 소국들을 차례로 경유할 것이다. 백 명 단위로 조를 짜서 해안선을 따라 남하한다. 이동은 주로 밤을 이용한다.”

천 명의 날랜 기마대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동쪽으로 사라졌다. 패대 지역을 떠난 100여 척의 대선단은 유유히 황해를 건너고 있었다. 대선단이 육지에서 수백 리 떨어질 즈음 소서노어하라는 선상에서 제를 올릴 준비를 시켰다. 뱃머리에 단 삼족오 깃발이 힘차게 펄럭거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마고(麻姑) 할미여, 칠성신(七星神)이시여. 황해의 용왕님이시여. 모년모월 시월 초삭을 넘은 열사흘, 대어하라국존왕소서노(大於瑕國尊王召西弩)는 창파(蒼波) 위 거선(巨船)에 향전(香奠)을 갖추어 삼가 아뢰옵니다. 생각하옵건대, 구천(九天)은 창창하고 구원(九原)은 망망한데 할미와 칠선신은 어디 계시옵니까.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남들은 님의 인자함을 말하나 그윽한 인자로움을 모르며, 남들은 그 엄함을 알지만 그 도덕의 엄함을 모르옵니다. 인자로움은 족히 뒷 자손을 어루만질 만하고 엄하심은 족히 선열들을 이어 받을 만하시건만, 어찌하여 직접 나투시어 가르침을 주시지 않는지요.

바람은 옛 나무에 슬피 울어 예고, 달빛은 빈 문간에 조상할 때 소녀, 나아가 님을 뵈온들 누가 하늘의 도의(道義)를 가르치며, 천도를 이끌겠나이까. 지난 세월 졸본의 오랜 인연을 끊고 참담한 삶을 산 것을 생각하면 창자가 찢어지며, 님을 찾는 울부짖는 소리에 천지가 따라 울고 피눈물은 바다를 이루옵니다. 온 천하의 슬픔과 온 세상의 비참함이 이에서 더할 것이 있겠습니까.

아아, 슬프옵니다. 소녀는 이리하여 외로운 그림자로 떠돌면서 산하(山河)를 이불삼고 바위를 베개 삼아 님 뵙기를 기다리는 동안 세월은 물 흐르는 듯하여 옛 단순호치는 멀리 가버리고 하나뿐인 거인(巨人)마저 잊어버리니, 하늘에 부르짖어 보았으나 하늘은 높아 대답이 없고, 땅을 두드리니 땅은 두터워 호소할 길 없사옵니다. 두 아들과 백성들의 뜻을 모아 어하라에 안주하였으나 사방의 호전적 무리들이 무시로 노리고 있어 백성을 거두어 배에 올라 남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희 무리가 마한 땅 우체모탁국 미추홀에 무사 안착하도록 도와주시고 환인님과 환웅님 그리고 단군님 혈통을 이은 저희들이 장차 남삼한에서 대제국을 건국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비록 소찬이오나 사양하지 마시고 굽어 살피소서. 여인의 몸으로 불안한 마음에 천번 절하고 백 번 잔을 올리오니 흠향하소서.

하얀 옷을 입은 소서노어하라가 축문을 읽고 나서 북두칠성을 향해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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