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파계

“어머니, 소녀 부왕께 너무나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왕께서 소녀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시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님의 하명을 소녀 기꺼이 받아 드리겠습니다.”

요석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왕 김춘추가 있는 대전을 향해 큰절을 하였다. 그 표정이 방금 전까지 술에 취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공주야, 네가 지금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이냐? 아니면 제 정신이 들어서 하는 말이냐? 이 어미는 공주의 말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나는 네가 죽어도 하가할 수 없다고 말할 줄 알았구나.”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어머님, 이제야 소녀의 소원이 이루어지려나 봅니다. 소녀가 김흠운에게 출가하기 훨씬 전부터 어머니를 따라 황룡사나 분황사에서 부처님에게 불공을 드리면서부터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 소원은 소녀가 비구니가 되거나 아니면 불심이 돈독한 지아비를 만나 해로동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그 꿈이 이루질 모양입니다.”

“동생아, 네가 지금 어머니 앞에서 확실히 제정신이 들어서 하는 말이렷다. 추호도 거짓이 없는 말이렷다. 진정으로 참말이지?”

김개지문은 요석공주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얼굴이 하얗게 변하여 여동생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 믿었던 형제자매에게 배신을 당하는 그 참담한 심정을 개지문은 어찌하지 못하고 크게 흥분하였다. 보희부인은 말문이 막혔는지 멍하니 요석공주를 바라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개지문 오라버니, 원효스님은 생불이십니다. 서라벌에 살아있는 부처님은 오직 원효스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이 여동생이 부처님과 혼인을 하겠다는 데 축하를 해주지는 못할망정 훼방은 놓지마셔요. 소녀는 아버님과 외삼촌의 결정을 흔쾌히 따를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 술에 취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던 공주가 갑자기 돌변하자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공주야, 네가 얼마 전에 그 스님에게 손수 지은 승복(僧服)과 모란꽃을 선물하였다고 들었다. 정녕, 원효스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이나 치기(稚氣)에서 비롯한 행동이더냐?”

“어머니, 소녀가 원효스님에게 승복과 모란을 선물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분은 비록 출가하였지만 진정한 불자(佛子)가 맞습니다. 대부분의 스님들은 머리를 깎고 깊은 산속에 있는 절에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오로지 자신의 득도를 위하여 노력하지만 원효스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딸의 알 수 없는 말에 보희부인은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요석공주야, 좀 우리가 알아듣도록 말해보거라. 승복을 선물한 것은 그렇다 치고 왜 하필이면 모란꽃을 선물한 것이냐?”

김지원은 하필이면 많고 많은 꽃 중에 요석공주가 원효스님에게 모란을 선물한 이유가 몹시 궁금하였다.

“나무관세음보살. 오라버니, 모란(牡丹)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꽃이랍니다. 사람들은 모란에 향기가 없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모란의 방향(芳香)은 너무나 은은하고 향기로워 십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답니다. 스님에게 모란을 선물한 이유는 스님을 파계시키고자 함이었습니다.”

요석공주는 입을 열 때마다 부처의 명호를 외쳤으며,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공주의 입에서 파계라는 단어가 나오자 보희부인과 공주의 두 오라비들은 번개를 맞은 듯 멍하니 요석공주를 바라보고 얼른 말을 잇지 못했다.

“공주야. 파계라니? 누가 누구를 파계시킨다는 것이니?”

보희부인은 제대로 발음도 하지 못하고 파랗게 질려 겨우 물었다.

“나무아미타불. 어머니, 누구긴요? 원효스님을 말하는 거에요.”

“뭐라고? 네가 원효스님을 파계시키겠다고? 공주가 지금 술이 덜 깨서 그런 말을 한거지. 맞지?”

보희부인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냉수를 찾았다.

“동생아, 네가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원효스님이 누군데 네가 어떻게 파계시킨다는 게야? 어림도 없는 소리하지 말거라. 네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그 파장은 나라를 뒤흔들 것이다. 또한 그 스님은 신라 사람 누구나 존경하고 따르고 있다. 네가 아무리 신라 최고의 미색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생불이라고 하는 그 스님을 파계시킬 수 있단 말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거라. 네가 정신이 이상한 여인이라고 소문이 날까 두렵구나.”

김개지문이 비아냥거리는 투로 동생 요석공주에게 타일렀다.

“공주야, 원효스님을 생불이라고 하면서 파계를 시키겠다니 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구나.”

“어머니, 원효스님이 생불이기에 소녀가 하가하여 파계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소녀가 원효스님을 파계시키지 못하면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기 힘이 듭니다. 소녀가 원효 스님이 백성들에게 반전(反戰)을 부추기는 의지를 꺾겠습니다. 아버님의 삼국통일 염원을 해소해 드릴 것입니다. 어머님께서도 부왕과 외삼촌의 듯에 따라 소녀가 원효스님에게 하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요석공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은 보희부인과 지원, 개지문 전군은 말문이 막힌 듯 했다.

“네가 점점 알 수 없는 말로 이 어미를 시험에 들게 하는구나. 생불이니까 파계시킨다는 너의 속내를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공주가 술이 덜 깬듯하니 오늘밤은 이만 이야기 하고 이제 잠자리에 들거라. 공주와 두 전군은 내일 아침 일찍 이 어미와 함께 분황사를 방문하자.”

“어머니, 분황사에는 왜 가시는데요?”

분황사에 함께 가자는 소리에 요석공주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공주야, 이는 아버지의 지엄한 명이다. 분황사에는 원효스님이 잠시 머물며 서라벌 백성들을 만나 법문을 하시고 있다 들었다. 내일 이 어미가 직접 원효스님을 만나 요상한 노래를 퍼트리는 이유와 우리 요석공주를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겠다.”

“스님은 참으로 용하시기도 하셔라. 요석궁에 자루 빠진 도끼가 스님 생각에 전전반측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김지원, 김개지문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미타파. 왕후님, 왕자님, 공주님, 이른 아침에 누추한 곳으로 어려운 걸음 놓으셨습니다. 소승 원효, 문안 인사 올립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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