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공
조우리

자기부인을 위하여 
부드러운 공을 매만진다
십자수처럼 정성들여 밀어내는 공의 몸짓
삶은 함부로 지면에 튀길 수 없으므로 
나는 공을 주고받는 일에 아직 서툴다
안방에서 공을 꺼내 욕실과 베란다를 통과시켜
방문을 닫고 물방울을 주고받는다
이야기를 채집하고 있는 새들이
제 목구멍에 걸린 공을 생각하며 울고 있었다
완전히 깨져버리리라 찬란하게
다이너마이트처럼 바닥을 격렬히 치는 
공의 헐벗음이 나의 뱀처럼 감정이입한다
패배를 인정하며 흰 수건을 던질 때
공은 비참하게 놓인 자신의 모습을
하수구에 마구 쏟아 붓는다
휘발유를 두르고 마치 불의 화신처럼
공중을 위협하며 날뛰고만 한다
그러니까 공은 친밀한 칼과 같았다
안과 밖이 경사진 모래시계
벽걸이 시계처럼 시간의 십자가 위에서
나의 육신이 공을 처형시켰다
공의 부락들, 공의 대, 공의 가치
그 바닥들이 만들어낸 공의 기본기
공은 죽음을 끌어안고 생명을 헐떡인다
누가 이 부풀어 오른 간을 피력했었나
용기는 공을 차분하게 만들고
나는 입을 다문 채 자존심만 채운다
주고받는 것
주문에 억양을 흘리는 것
심장을 꺼내 보라를 놀래키는 것
공은 살아있고 공의 기저에 바다가 깔려있다 
모든 공은 땅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간다
바다표범 한 마리 갯바위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듣듯이 조우리님의 좋은 시를 한편 더 감상해 보았다. 시가 매우 길어서 지루하기도 하지만 행마다 시인의 상상을 따라서 읽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돌 노래가 와 닿지 않지만 들을수록 신선하고 뛰어난 음악실력에 푹 빠지듯이 조우리님의 시가 매우 젊다.

공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를 읽으면서 바다표범의 죽어가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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