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겨울 아침

김기영(1946~ )


겁이 많은 꿩이 사는 마을

두 달 제한 된 생명인 줄 모른 채

어머니가 누워 있는 방

습관처럼 새벽 북쪽 창문을 연다

한기가 슬쩍 찌르고 사라진다

산자락 청송 한 그루 우뚝 선

여름내 관절염을 잊고자 일하시던

하얀 콩밭으로

꿩이 살금살금 내려온다

운동을 하던 사람이 돌을 던졌다

공포에 놀란 꿩은 시린 발로 도망쳤다

허옇게 껍질이 벗겨진 상수리나무 밑

한 알이라도 떨어져 있지 않을까

인정밖에 없는 어머니가 일부러

남겨 놓은 콩꼬투리가 아직 있을까

오그리고 쪼그리고 떨고 있던 꿩은

백설을 파헤치다가

탐욕으로 충혈된 사람이 싫어

소래산이 보이는 찬 겨울 아침

푸드득 시퍼런 하늘을 난다

어머니가 순간 눈꺼풀을 들어올리셨다

마른 샘 속에 잠긴 희미한 흑진주

거기에 내 소망이 묻어 있었다

 인천 영하 15도. 10년만의 추위”라고 방송에서 말했다. 어머니는 담도암(膽道癌)이 다섯 군데로 전이 되어 두 달밖에 못 사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섬망(delirium-착란·치매·환상) 상태에 있다. 의사는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요양하라고 말했다. 고향에 갈 수 없어 장남인 우리 집으로 오셨다. 집에 오니 참 좋다고 하셨다. “시는 절박한 감정의 자연적인 드러남”이라고 워즈워스가 말했던가.

아버지는 어머니를 요양 병원은 보내지 않으시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당신의 병을 모르시고, 어서 집에 가서 메주를 쑤어야 되는데, 파래를 뜯어다 무쳐 먹어야 할 텐데, 고구마가 광에서 다 얼지 않을까? 정신연령이 5살 정도도 안 되시고, 원숭이 같은 행동을 하면서 자식에게 먹일 생각만 한다.

사르트르와 서로의 생애의 반려자로서 살았던 시몬느 보브와르는 『고요한 죽음』에서 자신의 “어머니는 전 생애를 통하여 암에 걸릴까봐 불안해 하셨다.” 그래서 죽는 날 까지 복막염을 수술한 것으로 알고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나는 유난히 여린 감성을 갖고 계신 어머니가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봐 아니 ‘아름다운 이별’이 빨리 올까봐 병명을 숨긴체 ‘많이 좋아지셨어요. 곧 집에 가게 될 거예요.’하고 안심시켜드리는 말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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