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하늘 기둥을 깎다

원효스님을 일컬어 신라 사람들은 ‘원효는 불기(不羈)다’라고 했다. 그는 해방자이며, 동시에 자유인이 분명했다. 불교와 승려라는 형색으로부터 지식과 명예로부터도 그리고 계율로부터 스님은 늘 자유로웠다. 결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스님은 일정한 범위나 틀 속에 안주를 거부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상에는 수많은 경계(境界)가 있다. 여기서 계(界)란 영역이나 범위를 말한다. 너와 나, 이쪽과 저쪽을 막는 장벽이다. 방(方)도 역시 일정한 영역을 의미하고 있다. 아울러 애(礙)는 서로 다른 계를 가로막는 장벽을 말한다. 결국 무애란 장벽들의 완전한 제거를 말함이다.

원효스님이 주장하는 방외(方外)는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일정한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이 ‘유방외’이며, ‘초출방외’라 한다. 무애에서 애(礙)란 방해 또는 정체시키는 것이어서 무애란 경계의 타파를 의미한다.

벽의 제거가 우리를 무애의 세계로 인도한다. 또한 무애는 집착을 제거하지 않고서 가까이 할 수 없다. 불교의 연기법상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 하나로 융합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무애용융(無碍鎔融)이라고 부른다.

원효스님이 요석공주를 만남은 스님이 세간으로 돌아오는 몸짓이기도 하다. 원효스님이 ‘출세법(出世法)은 세간법(世間法)을 치유하는 법이고, 출출세법(出出世法)은 출세법을 치료하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스님은 출가와 재가의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하며, 재가 혹은 도속(道俗)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생각은 세간과 출세간, 세속적인 삶과 종교적인 삶, 성(聖)과 속(俗) 그 어느 쪽에 치우쳐도 안 된다는 뜻이다.

창천을 나는 대붕(大鵬) 기상을 지니고도 나무에 서식하는 새들의 만족을 생각하였다. 스님은 하늘을 찌를 듯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늘을 떠받칠 탄탄한 하늘 기둥으로 자처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원효 스님은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 몸을 굽힐 줄 알았다.

대륙에서 일어난 당(唐)의 팽창 물결은 고구려와 백제로 밀려들었다. 해동의 삼국도 각자의 이득을 위하여 서로 물어뜯어야 했다. 갈수록 삼국간의 싸움은 치열했다. 고구려는 신라와 백제를,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를 공격해야 했다. 신라와 백제가 연합했는가 하면, 고구려와 백제가 손을 잡고 신라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어제의 동맹국도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판단되면 원수가 되었다.

김춘추는 마음이 급했다. 그는 분명히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것을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삼국 통일 후가 걱정되었다. 김춘추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도 모두 신라의 백성으로 흡수하여 정신적 통일을 이루어야 완벽한 통일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서로 강한 적대 의식으로 대립하고 있던 삼국의 백성들은 통일을 계기로 하나의 민족 구성원으로 융합되어 한민족 형성의 토대를 이룩해내야 했다.

신라에서는 오래전부터 화랑들이 명산대천 등 자연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 왔었고, 이와 같은 토착신앙은 고구려나 백제에서도 비슷했다. 김춘추는 통일 이후 그 제사의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시킬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고구려, 백제 유민들에 대한 정신적, 신앙적 융합이라는 점에 김춘추는 무게를 두었다. 비록 지금은 서로 전쟁을 하고 있었지만 삼국 백성들의 공통된 신앙은 불교였다. 불교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백성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김춘추는 통일 전쟁이 끝난 뒤에 고구려, 백제 유민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불교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 김춘추와 신라의 대소신료들 역시 삼국통일이 불교의 공덕에 힘입어 이룩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었다.

법흥왕(法興王) 때 이차돈의 순교에 의한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었고 불력(佛力)으로 삼한이 한 나라가 되고 삼한의 온 백성이 어울려 한 집안이 되기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었다.

“구룡대사(丘龍大師)님, 오늘밤은 정말로 용으로 화하여 저를 신비하고 현묘한 세상으로 이끌어 주시길 기원합니다.”

“소승은 평범한 인간입니다. 둔갑술(遁甲術)을 써서 용이 되거나 호랑이가 되는 도술을 부릴 줄 모르니 이일을 어찌해야 하나요?”

“스님, 어찌하다니요? 이 여리디 여린 여인 하나를 두고 그리 섭섭한 말씀하시면 저의 실망이 너무 큰걸요.”

“나무아미-.”

원효스님은 합장을 하다말고 요석공주가 건넨 잔을 들었다. 잔에서 향긋한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스님은 웬만한 고승대덕보다 훨씬 법력이 세다고 들었습니다. 스님은 ‘만인지적(萬人之敵)’이라하지 않습니까? 전장에서 만 명의 적을 능히 당해 낼 수 있는 위대한 장수가 아니신지요?”

“아미타불-. 소승이 화랑도 시절 백제 군사를 맞아 혈투를 벌인 적이 있었지요. 그때부터 그 같은 호칭을 들었다면 지금 김유신 장군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스님, 저는 한때 김흠운에게 하가한 적이 있는 몸입니다. 지금은 넓고 적적한 요석궁 하나를 꿰차고 세월이 무정하게 흘러가는 것을 한탄하는 별 볼일 없는 연약한 여인이랍니다. 저는 스님이 궁궐에서 불법을 설하실 때나 가람에서 많은 불제자들을 모아놓고 법문하실 때 자주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왔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다 옳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살생을 하지 않고는 아버님께서 삼한을 통일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자주 스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혼자 고민도 많이 하였습니다.”

“아미타파-. 그러셨군요.”

원효스님은 요석공주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스님, 저는 오늘 스님을 파계시키고자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스님, 각오하셔야 해요.”

요석공주는 다리를 꼬고 요염하게 앉아 빨간 입술을 열고 연신 술잔을 입술에 가까이 댔다. 속살이 훤히 비치는 치맛자락 사이로 드러난 요석공주의 미끈한 종아리가 원효스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제가 스님을 파계시키고자 함은 조국을 위한 저만의 헌신이랍니다. 머지않아 부왕께서 삼한을 일통하시면 요동치는 삼한의 불쌍한 백성들의 등을 스님께서 따뜻한 말씀으로 다독거려 주셔야 합니다. 저의 지아비는 일찍이 조천성 전투에서 백제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타소 언니도 형부 김품석과 함께 대야성에서 백제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였습니다.

백제는 우리 신라의 원수라고 하지만 백제를 다스리는 백제왕과 대소신료들 그리고 일부 군관들이 원수일 뿐 순진하고 착한 백제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저는 지아비를 잃고 많은 밤을 전전반측하며 보내야했습니다. 스님은 이 불쌍한 여인 먼저 위로해 주셔야 해요. 스님께 아버님과 제가 일방적으로 통혼(通婚)을 하여 송구하였습니다. 용서하시어요.

그러나 스님께서 먼저 신라 왕실에 청혼을 하셨으니 크게 송구해 할 것도 없겠지요. 저는 스님께서 신라를 떠받칠 천주(天柱)를 만들어주시겠다고 저자거리를 누비며, 노래를 부르고 다니실 때부터 스님의 깊은 뜻을 알았습니다. 일부 세상 사람들은 단지 스님께서 색욕(色慾)이 동하여 그런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고 비난하지만 아버님과 왕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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