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요석궁에 비는 내리고

“공주, 이젠 나도 지쳤답니다. 이제 잠자리에 들지요.”

“서방니임-, 이제 경우 스무 가지 형태 밖에 경험하지 못했는걸요. 지금 잠이 오셔요? 나는 서른여섯 가지를 모두 체험하기 전에는 잠을 자지 않을 거랍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스님께서 파계를 하실 수 있단 말이에요. 잘 아셨지요.”

“공주.”

요석공주는 밤새 열락의 문을 드나들며, 지옥과 극락세계를 맛보았지만 아직도 욕심을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

‘허어, 큰일이로다. 어찌된 여인이 지치지도 않는단 말인가. 이미 자루 빠진 도끼에 단단한 자루를 수백자루도 넘게 끼워 넣었거늘-.’

“서방님, 이번 자세는 너무 황홀할 것 같아요. 몸이 달아올라요. 어서, 어서 저를 달래주셔요. 어서요.”

설랑은 할 수 없이 엽자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읽고 보고 다음 행동을 취했다.

“스님, 공주님, 폐하께서 납시셨습니다.”

안에서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공주님, 스님, 폐하께서 납시어 계십니다. 어서 나와 보시어요.”

역시 내실 문이 굳게 닫힌 채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어제 밤늦도록 사랑을 나누시더니 두 분 모두 녹초가 되신 게 분명해. 이를 어쩐다. 폐하께서 와 계시는데.’

간전이는 할 수 없이 내실문고리를 잡았다. 힘을 주었으나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번, 두 번, 세 번, 아무리 문고리를 잡아당겨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궁녀들 서너 명이 합세하여 문고리를 잡아당겼지만 문은 바윗돌처럼 단단하여 열리지 않았다.

“폐하, 스님과 공주님이 주무시는 내실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려고 하여도 문이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공주님께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를 쳐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뭐라고? 문이 안 열린다고? 응답도 없다고?”

이번에는 김춘추가 직접 문고리를 잡고 힘을 주었으나 정말로 문고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 애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나? 아니면 요석공주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김춘추는 이상한 생각이 들자 겁이 덜컥 났다. 남녀가 격렬한 행위를 할 경우 종종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들은 바가 있었다.

“공주야, 아비다. 아비가 왔다.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느냐? 날이 밝았구나. 어서 일어나야지. 얘, 요석공주야, 아비가 왔다.”

“폐하, 두 분께서 깊이 잠드신 모양이니 점심때쯤 깨우세요. 초야를 치르느라 두 분이 몹시 피곤하여 깊은 잠에 빠지신 모양입니다.”

“아무리 깊이 잠이 들었어도 그렇지 여러 명이 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 기척이 없다면 안에 무슨 변고가 일어난 것이 아니냐?”

“폐하, 변고라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요.”

“여봐라, 내실로 통하는 문이 몇 개더냐?”

“내실로 통하는 문은 모두 세 개가 있사온데 두 개는 사람을 드나드는 문 이옵고 하나는 짐이나 물건을 넣다 뺐다할 때 사용하는 문이옵니다.”

“그럼, 그 문이 어디 있는지 안내하라.”

“폐하, 두 분께서 깊이 잠드신 것이 분명하옵니다. 어젯밤 합환주를 드시고 늦게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좀 기다려 보소서.”

간전이 아무리 아뢰어도 김춘추는 고집을 피웠다. 할 수 없이 간전이는 다른 문을 알려주었다. 발 받침대를 놓고 그 위에 올라서야 내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김춘추는 먼저 내관을 시켜 안의 동태를 살펴보게 하였다.

“아니. 두 분이 잠도 안 주무시고-.”

내관은 요석궁 내실을 살펴보다가 그만 기절을 할 뻔했다.

“폐하, 그냥 돌아가셔야겠습니다. 두 분이, 두 분이-.”

“그래, 스님과 공주가 곤히 잠을 자고 있더냐?”

“폐하, 그, 그게 아니옵고. 그게 저, 저.”

내관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말을 하지 못했다.

“답답하구나. 뭘 그리 우물쭈물하느냐? 어서 아뢰지 않고.”

“그것이, 저. 그것이-.”

“답답하구나. 그것이 뭐가 어찌되었다는 게야? 저리 비켜라. 짐이 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이번에는 김춘추가 국왕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받침대에 올라서서 요석

궁의 내실을 살펴보았다.

‘앗, 저애가, 저애가 스님하고 밤새도록 저 일을 지속하고 있었더란 말이냐. 짐이 법력이 뛰어난 불자 중에 십일 밤낮 동안 방사(房事)를 치러도 끄덕도 하지 않는 자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설마. 아, 절륜하도다. 저 정도니 짐에게 여식을 달라고 몰가부란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다녔겠지.’

김춘추는 한참 동안 요석궁 내실을 들여다보며 보희부인을 떠올렸다. 김춘추의 눈앞에서 요석공주가 보희부인의 특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김춘추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하였다.

“여봐라. 돌아가자. 해가 서천으로 기울 때쯤 다시 와야겠다.”

김춘추가 돌아가고 나자 궁녀들은 내실을 훔쳐보려고 혈안이었다.

“폐하께서 왜 크게 놀라워하며, 부리나케 가시는 것일까?”

“공님과 스님이 코라도 골며 주무시나?”

“쉿, 너희들 떠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내실을 살펴볼 테니.”

“간전 언니, 내가 먼저 볼게요.”

궁녀들은 서로 요석궁 내실을 훔쳐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간전이가 겨우 다른 궁녀들을 달래고 내실을 살펴보았다.

‘앗, 두 분이 잠도 자지 않고 저런 일을. 그럼 밤새도록 한잠도 주무시지 않았단 말인가. 그런데 공주님은 마치 체면에 걸린 듯 스님이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것 같고 스님도 잠을 자는 듯한 상태로 차분하게 일을 치르고 있는 장면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두 분이 무의식 상태에서 방사를 즐기고 있는 거야. 저런 상태라면 몸에 진액(津液)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망측한 자세가 가능할 거야. 과연 도통

한 분이라 그 일도 경지에 오르신 게야. 아아, 공주님이 정말로 부럽다. 나는 언제 저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간전이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요지경 속 사실들을 뇌리에 기억해 놓았다.

"공주님과 스님이 곤히 주무시고 계신단다. 우리도 물러가 있다가 폐하께서 다시 오시면 오자.”

“간전 언니, 정말로 두 분이 주무시고 계신 거죠?”

“그럼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니? 너희들도 알잖아. 두 분이 간밤에 밤늦도록 앉아계시다 주무셨다는 사실을.”

요석궁은 초병만 남아 있고 고요해졌다. 세상은 음,양이라는 두 가지의 성질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은 하늘과 땅으로 구분되고 동물도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사람도 남과 여로 나누어져 있다. 세상 만물은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상대되는 물질로 나누어져 있다.

남성적인 성질을 양, 여성적인 성질을 음이라고 말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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