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궁녀의 배신

“한 달이 지났건만 알아낸 것이 없단 말인가? 어마마마 장례 전까지일을 마무리 하여야 합니다.”

“세자마마, 송구하옵니다. 신들이 최선을 다하였으나, 물증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계속해서 물증을 찾기에 전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말미 를 주소서.”

인후와 장순룡이 왕원 앞에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경들이 이 왕원이를 너무 우습게보고 있습니다. 어마마마의 장례를 치르기 전에 흉인들의 목을 효수하여 어머니 영전에 바치려 했습니다.

지난 한달 동안 아무 것도 알아낸 게 없다는 것은 경들이 움직이지 않았 다는 말과 같습니다. 다시 한 달의 기간을 주겠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하 면 경들부터 참수(斬首)할 것입니다.”

세자에게 질책을 받은 장순룡과 인후 그리고 친원파 들은 다시 한 번 왕원에게 하냥다짐하였다. 그러나 시간만 흐를 뿐 왕비의 죽음과 관련한 특이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늦은 밤에 인후는 장순룡을 주루로 불러냈다.

인후는 장순룡에게 무비 처소의 나인 연희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후는 얼마 전에 음독하여 죽었다고 보고된 초비의 사건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 한 인후는 무비의 감시가 뜸한 틈을 타서 연희를 불러냈다.

“나는 다 알고 있다. 내가 너에게 건넨 약을 무비가 먹는 밥이나 국에 한 번도 넣은 적이 없으렷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쯤 무비년이 병들어 누 워 있어야 한다. 너는 왕비에게 상금을 받고도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왕 세자뿐만 아니라 우리 친원파 들은 너의 배신행위를 알고 있다.

그리고 너를 왕비에게 소개한 초비가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고 하였다. 너는 초 비가 살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렷다. 너의 파렴치한 행동 때문에 너 와 네 부모형제들 모두 목이 잘릴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실직고하면 너와 네 가족들 모두 살려 주겠다.”

“저는 나리가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초비의 일은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연희는 인후의 말에 겁을 집어먹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네가 아직도 눈치가 없구나. 늙은 왕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를 분이 누구더냐? 무비가 너를 언제까지 지켜주겠느냐? 상황 판단을 잘해야 한 다. 너의 판단에 너와 네 부모형제의 목숨이 달렸다. 나는 이미 다 알고 하는 말이다. 사실을 말하면 너와 네 가족을 보호해 주마.”

능구렁이 같은 인후의 넘겨짚는 말에 연희의 마음이 흔들렸다.

“나리, 그, 그것이-.”

연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말을 잇지 못하고 우두망찰 벌벌 떨었 다. 사실 인후가 넘겨준 약을 무비가 먹는 음식에 넣었더라면 지금쯤 무 비는 깊은 병에 걸려야 했다.

“연희야, 나에게도 너 같은 딸이 있다. 너를 살리고 싶어서 그러는 것 이다. 내가 하늘에 맹세하마. 네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실토하면 너와 네 부모 형제를 모두 원나라로 보내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도록 해주마. 어떠냐? 협조하겠느냐? 아니면 너 하나 때문에 너를 비롯한 부모형제 모 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테냐?”

인후는 칼을 빼들고 연희를 협박하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였다.

“나리, 그게-, 저, 그게-.”

연희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인후가 다시 연희 를 구슬렸다. 사실을 말하면 너와 네 가족 모두 원나라로 보내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살게 해주겠다고 하지 않느냐? 나를 믿고 말을 해라. 네가 나 의 딸 같아서 너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야. 인후는 연희의 마음이 흔들리 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다정스럽게 말하였다.

“나리, 그 약속 정말이지요? 정말로 저와 부모형제를 원나라로 보내주실 거지요? 믿어도 되지요?”

“내가 언제 거짓말하더냐?”

연희는 초비와 어릴 때부터 궁궐에 들어와 친자매처럼 지내던 사이였 다. 초비가 무비에 의해 태인으로 떠나기 전에 연희에게 행선지를 말해 주었다. 연희는 인후의 회유에 넘어가 무비의 처소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모두 실토하고 말았다.

인후는 연희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말 았다. 죽은 왕비 측에서 무비를 제거하려는 흉계를 진행하기 전부터 이 미 무비와 측근들이 초비를 통해 왕비에게 위해를 가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연희는 말뿐이었다. 물증이 될 만한 약이나 주술에 쓰인 물건은 없었다.

“인후, 자네가 방금 나에게 한 말이 모두 사실이렷다. 그것들이 왕비마 마를 해치기 위해서 초비를 통해 음식에 독약을 타고 무녀를 시켜 저주 를 퍼붓게 하였다고? 우리가 방심하였구나. 우리들이 왕비마마를 돌아 가시게 했어.”

삼가 장순룡 역시 크게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는 즉시 왕원을 만나 인후가 고한 사실을 소상히 보고하였다.

“뭐라, 그게 모두 사실이렷다. 증좌가 있으렷다.”

“세자마마, 소신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연희라는 무비 처소의 나인이 바로 증인입니다.”

왕원 역시 크게 충격을 받고 몸을 가누지 못했다. 왕원은 즉시 친원파 중신과 동조자들을 불러 모았다. 한밤중에 세자의 부름을 받고 몰려든 겁령구 출신과 고려 출신 친원파 들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세자 가 이번에는 또 무슨 명을 내릴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던 터 였다.

“인후 대부는 지금 당장 기마대를 이끌고 태인으로 달려가 초비라는 나인을 잡아오고 장순룡 대부는 병부의 지원을 받아 무비와 송린, 도성 기, 최세연과 국내파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이시오.

병부령은 직접 전라 도로 내려가 나주목과 전주목 관아의 지원을 받아 병사들을 풀어 지리산 일대를 샅샅이 뒤져 천옥이라는 무녀를 잡아오시오. 그들의 소행은 역모 죄나 다름없소이다. 그 연희라는 나인은 별도로 보호하시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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