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안으로 모여드는 근왕병들

소금 장수 출신 황소와 왕선지가 일으킨 난을 피해 사천 지역에 피신하 고 있던 황제 이현은 조속히 장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황소가 장안에 무혈입성한 뒤에 대제(大齊)라는 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자처하고있는 상태라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각 지역의 절도사들도 각자 자신 의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막강한 군벌로 성장해 있었다. 회남 절 도사이며 제도행영병마도통인 태위 고변에게 황제의 밀조를 직접 전하고 돌아온 전령자는 날마다 황제와 장안 수복계획을 논의하였다.

황제와 전 령자는 고변에게 장안을 탈환하라고 명을 내렸지만 그는 이러저러한 핑 계를 대며 뭉그적대고 있었다. 황제 또한 장안 탈환에 대한 확실한 묘책 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외부와 단절된 장안에 점차 군수물자 가 바닥을 보이면서 군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불평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황소는 상양(尚讓)에게 군사를 동원하여 물자가 풍부한 봉상 지 역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봉상 절도사 겸 경성사면제군행 영도통 정전(鄭畋)이 황소의 군대를 격파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일로 당 황제는 무척 고무되어 장안을 탈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 게 되었다. 장안에 황소를 조롱하는 방이 저자거리에 내걸리자 화가 난 황소는 당 나라 관리 출신과 서생 수백여 명을 참수하였다. 장안의 황소 가 별로 움직임이 없자 각주에서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던 군벌들이 자 발적으로 근왕병을 자처하며 장안으로 몰려들기도 하였다.

그 수가 무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황소는 몇 차례 근왕병들을 상대로 전투를 했 지만 상당수의 병사를 잃기만 하였다. 황소의 군대가 60여만이나 된다는 것이 거짓임을 눈치 챈 근왕병들이 황소를 더욱 압박하자 그는 장안을 빠져 나가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관군의 지휘관 정종초(程宗楚)가 이끄는 근왕병들이 장안에 무혈입성 하였다. 황소에게 억압과 학대를 받던 백성들은 근왕병들을 환영하였다. 그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경계를 소홀히 하고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 고 부녀자를 강간하는 등 패악을 일삼았다. 근왕병들의 군기가 해이해진 틈을 타서 황소가 장안성을 함락시키고 재입성 하였다.

황소가 다시 장 안으로 들어간 다음 백성들이 근왕병을 도와준 것에 대노하여 그는 장안의 백성을 닥치는 대로 살육하였다. 얼마나 많은 백성이 죽었는지 수 십일 간 피가 개천을 이루었다. 회남절도사 겸 제도행영병마도통인 태위 고변도 장안의 소식을 듣고 있었으나 당장 군사를 움직일 생각은 없 었다.

좀 더 사태의 추이를 두고 보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시기가 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령자가 다시 찾아와 출동을 독촉하자 고변은 고민하였다. 다른 지역 절도사들도 고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폐하, 신에게 좋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흑아군(黑鴉軍)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최근에 행재도지휘처치사에 임명된 전령자가 당 황제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들어본 적 있습니다. 주사집의(朱邪执宜), 아니지 이국창(李國昌)의 아들 독안룡(獨眼龍) 이극용이가 지휘하는 군대를 지칭하는 말이지요?”

“맞습니다. 그자를 이용해 보심이?”

전령자가 황제의 눈치를 보았다. 황제는 사천에서도 중신들을 물리고 오로지 전령자와 내관인 진경선(陳敬瑄) 등만 불러 국사를 의논하였다. 이에 간관인 맹소도(孟昭圖)가 황제에게 항의하는 뜻으로 상소를 올렸 으나 중간에 전령자가 가로채 황제에게 아뢰지 않고 부하들을 시켜 그를 살해하는 등 여전히 전령자는 황제를 기망하고 있었다.

“그자는 얼마 전에 대동(大同) 방어사 단문초(段文楚)와 하동 절도사 강전규(康傳圭)을 죽이고 우리군사들에게 쫓겨 돌궐로 도망치지 않았 소?”

“그렇습니다. 폐하께서 군사를 출동시키라고 명을 내려도 절도사들은 지금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이국창 부자의 죄를 용서해준다는 조건을 내걸고 그들로 하여금 황소를 치라하시지요.”

“그 오랑캐 놈들에게 황소를 치게 한다?”

이국창과 이극용 부자는 돌궐인 이며 투르크계 유목민인 사타족(沙陀 族) 출신으로 전쟁에서 용감하기로 소문난 전사였다. 주사집의는 방훈 (龐勛)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당 황제에게 이씨(李氏)성을 하사받아 이 국창이라 개명하였다. 사타족은 천산 산맥 동부에 있던 부족으로 토번의 지배하에 있다가 당의 간접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사타족의 우두머리는 주사집의였는데 당 조정은 그에게 음산부(陰山府)의 병마 사(兵馬使) 직을 제수하여 국경을 지키게 했다.

이극용은 한쪽 눈이 작 아서 독안룡이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다. 또 그는 몸이 날래서 비호자(飛 虎子)라고도 불렸다. 전령자의 제안에 황제는 귀가 솔깃했다. 단 한명의 병사가 절실한 형편에서 용감하기로 소문난 이국창 부자를 끌어들인다 면 황소를 장안에서 쫓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령자께서 칙서를 가지고 이국창 부자를 찾아가 설득해 보세요.” “폐하, 돌궐 오랑캐들은 머리가 별로 신통치는 않으나 기백은 대단 합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신이 당장 달려가 그들을 회유해 보겠습니다.”

전령자가 달단(達靼)으로 달려가 이씨 부자를 만나고자 하였다. 이극용이 친히 병력 1만 명을 거느리고 나와서 전령자를 맞았다.

“상공, 여기 격문을 작성했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해운이 고변에게 황소의 난을 잠재울 격문을 작성하여 건넸다. 이틀 전에 해운이 군관회의 자리에서 이틀 안으로 작성하겠다고 호언했을 때 고변은 반신반의했었다.

“최도통순관 벌써 썼구려. 대단하오. 지금은 내가 여용지(呂用之)에게 신선술(神仙術)을 연마해야 할 시간이오. 다녀와서 읽어 보겠소. 수고했 소이다.”

고변은 입으로 해운이 대단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전쟁터에 나가 한 번 도 전투를 해본 경험이 없는 서생이 얼마나 잘 썼겠나 싶어서 격문을 받아 책상에 올려놓았다. 해운은 밤새 고심하며 작성한 격문을 고변이 읽어보지도 않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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