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서라벌로 자객을 보내다

“그놈이 날개를 달았나, 아니면 축지법(縮地法)이라도 썼단 말이냐? 병사들을 이끌고 갔어도 붙잡지 못했다니. 아비가 너를 믿었거늘…….”

“부왕, 송구하옵니다. 반파국에서 신라로 넘어가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였으나 끝내 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뇌왕의 장남 뇌주는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이번에 도설지를 잡아 부왕에게 점수를 얻으려고 했던 뇌주는 크게 낙심하였다. 도설지를 잡았다면 반파국의 태자 자리는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었을 터 였다.

뇌주 아래로 두 남동생이 있었으나, 그들은 밤낮 술과 여인들 치맛자락을 붙잡고 사는 인생들이라 이뇌왕은 뇌주에게 내심 희망을 걸고 있었다. 뇌주가 도설지를 놓친 것을 가장 아쉬워하는 사람은 뇌주의 생모 가비(伽妃)였다.

또한, 반파국 중신들과 원로 등 친 백제파들은 사신을 신라에 보내 도설지를 데리고 와야 한다며 연일 이뇌왕을 압박하였다. 그 와중에서 도설지의 생모 양화왕비와 여동생 월화공주(月華公主)만 곤란하게 되었다.

가비와 친 백제파 중신들은 양화왕비와 월화공주를 당장 폐위하든지 아니면 신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뇌왕은 도설지가 돌아오면 태자에서 폐위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했다.

“대왕, 도설지가 신라로 도망갔으니, 이제 뇌주를 다시 반파국의 태자로 앉혀주셔요. 도설지는 가야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양화와 월화도 신라로 보내버리셔요. 혼인동맹은 벌써 끝났는데, 대왕은 뭐가 아쉬워서 그 모녀를 끼고 있습니까? 대왕이 백제로부터 완벽하게 신임을 얻으려면 조속히 그 모녀를 내치셔야 합니다.”

가비는 노골적으로 지아비 이뇌왕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가비는 반파국에서 가장 입김이 센 장자의 딸이었다. 그녀는 지아비 이뇌왕이 혼인동맹의 일환으로 신라 출신 양화왕비와 혼인하기 전까지 반파국의 왕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지아비가 양화왕비와 혼인하자, 그녀의 위세는 사그라지고 그녀의 큰아들 뇌주도 태자에서 폐위되었다. 그녀는 왕비에서 후궁으로 물러나 앉게 되자 양화왕비를 미워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왕비에서 후궁으로 전락한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가비는 무당을 찾아가 양화왕비를 저주하는 방자를 해달라고 부탁하였고, 아랫것들을 시켜 양화왕비가 거주하는 집 근처에 인골(人骨)이나 제웅을 묻어 놓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수시로 양화왕비가 입던 옷을 짚으로 만든 인형에게 입히고 화살을 쏘며 분풀이를 했다. 그러나 여러 해가 흘러도 아무 이상이 없자, 그녀는 반쯤 미치광이가 되었다. 뇌주는 이 모든 일이 양화왕비와 도설지의 탓으로 돌리며, 도설지를 해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이뇌왕의 양화왕비와 도설지에 대한 총애가 두터워지자 뇌주는 감히 그들을 해코지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도 부왕의 태도에 변함이 없자, 뇌주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술과 여인을 탐하는 것으로 세월을 죽이고 있었다. 혼자 아무리 반파국을 사랑하고 여러모로 애국을 위한 일을 하여도 아무도 뇌주를 알아주지 않았다. 도설지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뇌주가 장차 반파국의 왕이 되는 순서였으나, 예상치도 못했던 혼인동맹으로 아우가 생기자 뇌주는 앞날이 캄캄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나의 희망을 짓밟은 도설지를 죽여야 한다. 그놈이 반파국에 있을 때는 부왕의 그늘에 있어 내가 손을 쓸 수 없었지만, 이제는 도망자 신세이니 그놈을 보호해줄 자가 없다. 자객을 서라벌로 보내서라도 반드시 그놈을 제거해야 한다. 반파국과 신라가 언제 또 화해하고 가깝게 지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놈을 신라에서 처치하여도 부왕은 내가 시킨 일인지 전혀 모를 것이다.’

뇌주는 자신을 따르는 수하 중에서 검술에 뛰어난 자 두 명을 골랐다. 뇌주는 선발된 연두와 철수를 왜(倭)에서 건너온 검객 히라이(平井)에게 의뢰하여 왜의 검법을 익히게 했다. 히라이는 야마토 조정에서 가야연맹에 파견한 군관이었다. 그는 가야연맹의 군사들에게 검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가야연맹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야마토 조정에 보고하는 밀정(密偵) 노릇도 했다.

“연두, 철수, 너희들은 왜인 스승에게 검법과 은자(隱者) 훈련을 철저히 익혀야 한다. 너희가 시시풍덩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미래를 걸었다. 부디, 나의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뇌주 왕자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신들이 반드시 왕자님의 뜻을 받들어 임무를 완성하겠습니다.”

뇌주는 두 수하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깊은 신뢰를 보였다. 두 사람이 도설지를 죽이고 돌아오면 그에 따른 치하와 총애가 뒤따를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가야연맹이 친 백제로 정책 방향을 바꾸고 도설지가 신라로 도망치자 반파국뿐만 아니라 가야연맹의 왕들과 장자들은 뇌주를 주시하였다.

그들은 뇌주가 장차 반파국을 이끌어갈 왕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도설지가 신라로 건너가자 뇌주는 가야연맹을 돌며 자신이 반파국 태자의 지위를 되찾을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 갈수록 가야연맹에서는 뇌주를 따르는 무리가 늘어 갔다. 이뇌왕은 뇌주가 마구발방으로 가야연맹을 돌아다니며 헛소리하는 것을 모르는 체했다.

“어머니, 뇌주가 무서워요. 오라버니가 신라로 귀순한 뒤로 저를 험악한 얼굴로 대해요. 이러다가 뇌주에게 봉변이라도 당할까 걱정입니다. 저도 오라버니처럼 신라로 도망갈까 봐요?”

월화공주의 두 눈에 눈물이 갈쌍갈쌍했다. 양화왕비는 도설지가 신라로 떠나간 뒤로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리고 허수하여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지아비 이뇌왕은 양화왕비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려고 자주 찾아와 위무하고 *합기(合氣)하였지만 예전만 못했다. 이뇌왕에게 왕비는 신라가 반파국을 함부로 침공할 수 없게 하는 부적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합기 - 남녀가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 유의어로는 방사, 합궁, 운우, 상합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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