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백제 성왕의 피살

“월광 장군, 잘 오시었소. 나도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오.”
김무력이 월광의 손을 잡고 여낙낙한 태도로 맞아주었다.
“장군, 간밤에 무슨 일 있었습니까? 군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백제 연합군에게 패한 군대 같지 않습니다.”
“도도가 백제왕의 머리를 가져왔습니다. 서라벌로 보내려 합니다.”
“장군, 감축드립니다. 백제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겠습니다.”

김무력은 휘하 군관 도도가 백제왕 부여명농을 참수하고 왕의 머리를 전리품으로 가져왔다는 말을 하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월광은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어 안면이 있는 다른 장수에게 물었다.

백제왕이 관산성으로 달려오다가 새벽에 도도가 이끄는 신라의 특공대와 구천(狗川)에서 마주쳤다. 김무력은 도도에게 신라군과 백제군 진영 사이에 흐르는 *구천(狗川)에 매복하고 있다가 백제왕이 나타나면 사로잡아 현장에서 즉시 참수하라고 명했다.

구천은 궂은 벼루 또는 구진베루라 불리는 곡류(曲流)로 관산성 바로 앞에 있는 하천이었다. 주변에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곳으로 이곳을 통과해야 백제왕이 관산성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목이기도 했다.

도도와 마주친 백제왕은 겨우 보기 오십여 명만 대동한 채 관산성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관산성으로 가는 것을 백제 연합군 측에서도 알지 못했다. 백제왕은 관산성까지 가는 길에 신라군 매복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좌평 네 명과 군사 오십 명의 호위를 받으며 백제 사비성을 떠나 이틀 밤낮을 달려 관산성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도도가 성왕의 머리를 탈취하여 신라군 진영으로 돌아오자 신라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월광이 신라군 진영에 도착할 때까지도 백제군은 백제왕이 신라군에 잡혀 죽임을 당한 사실을 몰랐다. 김무력은 신라군 장수들과 군관들을 소집하고 작전 회의를 열었다.

“간밤에 백제왕의 머리를 탈취하여 서라벌로 보냈습니다. 지금쯤 백제 연합군 진영에서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승기(勝機)를 잡은 이상 곧바로 백제 연합군을 향해 질풍노도처럼 밀고 들어가 박살을 내야 합니다. 어쩌면 이번 전투의 결과에 따라 향후 삼한(三韓)의 정세 판도가 바뀔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지엄하신 대왕의 밀명을 받아 신라군 총사령관으로서 작전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거칠부(居柒夫) 장군은 구진(仇珍) 장군과 보기 오천을 이끌고 관산성 정면으로 달려가 치고 빠지는 전술로 적군을 유인하십시오. 비태(比台), 비서(非西) 장군은 군사 오천을 지휘하여 관산성 우측을 공격하고, 노부(奴夫), 서력부(西力夫) 장군은 군사 오천을 지휘하여 성 좌측을 공격하십시오.

비차부(比次夫), 월광 장군은 군사 삼천을 이끌고 성 후미를 공격하십시오. 나는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거칠부, 구진 장군이 적군을 유인해오면 곧바로 공격하겠습니다. 해가 뜨면 공격할 예정입니다.

관산성을 점령하면 곧바로 백제의 후발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고리산성과 이백산성으로 이동하여 공격할 것입니다. 관산성 전투에서 우리 신라군이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월광은 관산성 후미를 공격할 것을 명령받고 비차부와 협력하여 군사 삼천을 이끌고 이동하였다. 해가 뜨자마자 한여름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월광이 이끄는 부대가 성 후미에 도착하여 성벽을 기어올랐다. 성의 후미는 전면보다 무척 낮아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었다.

항우도 동료의 도움을 받아 성벽으로 기어올랐다. 성 전면과 좌우에서 군사들의 함성과 말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지난번 전투 때와 달리 백제 연합군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백제 잔당들을 토벌하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성벽을 넘은 월광이 칼을 빼 들고 소리쳤다. 삼천 명의 신라군이 일시에 후미로 침투하자 성안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백제 연합군 삼만여 명이 모두 관산성에 주둔해 있는 게 아니었다.

관산성에는 백제 연합군 주력부대가 있었고 나머지 고리산성과 이백산성에 분산 배치되어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신라군을 공격했었다. 신라군 주력부대의 공격을 받고 성안은 대혼란에 빠졌다.

백제 연합군들은 가리산지리산하며 허둥댈 뿐 제대로 신라군을 맞아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퇴각, 퇴각. 우리 야마토 군사들은 평지에서 싸울 때 기마전에만 능하므니다. 이런 산성 싸움에는 경험도 없고 어떻게 싸우는지도 잘 모르므니다. 우리는 먼저 퇴각하여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스므니다.”

성안이 불타면서 아비규환으로 변하자 왜의 야마토 장수 유지신(有至臣)은 백제 연합군 총사령관인 부여창의 승낙도 받지 않고 성문을 열고 달아나려 하였다.

“명령이오. 지금 성 밖으로 나가면 연합군은 전멸이오.”
“나는 오직 *덴노헤이까의 명령만 받스므니다.”

유지신과 물부막기무련, 츠쿠시노쿠니노미야츠 등 야마토 장수들은 부여창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관산성에서 도망치려 했다. 이미 대세는 기운 듯 했다. 남쪽 성문이 열리면서 한 떼의 왜군이 성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때 성의 남쪽을 공격하고 있던 비태(比台)와 비서(非西) 장군의 군사들이 왜군에게 달려들었다.

“우리는 *구다라 군이 아니므니다. 우리는 *시라기를 좋아하므니다.”
유지신과 야마토 장수들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신라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신라군사들은 그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 못했다.

 * 덴노헤이까 - てんのうへいか, 천황폐하(天皇陛下)
* 구다라 – 왜인들은 백제(百濟)를 ‘구다라(くだら) ’라고 불렀다.
* 시라기 – 왜인들은 신라(新羅)를 ‘시라기(しらぎ)’라고 불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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