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가야연맹의 백제 지지

 관산성이 신라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백제 연합군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칠 궁리만 하였다. 신라군의 공격에 두 산성 역시 힘없이 함락되고 말았다. 백제 연합군은 결국 신라군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삼만 명에 가까운 백제 연합군은 부여창과 가야 및 왜군 장수 몇 명만 사비성으로 도망치고 대부분 목숨을 잃고 말았다.

“부인, 보고 싶구려. 부인을 비명횡사케 한 원수 두 놈을 처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뇌주는 죽이지 못했습니다. 뇌주를 죽이면 반파국에 계신 어머님과 월화가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뇌주를 처단할 날이 올 것입니다. 이제, 눈을 감고 태손과 함께 편히 쉬시구려. 미안합니다.”

추문촌(鄒文村)으로 돌아온 월광은 제상을 차려놓고 비명에 간 아랑과 아들의 원혼을 달래주었다. 그 자리에는 항우도 참여하여 아랑에게 절을 올리고 생명을 지키지 못한 죄를 고했다.

“태자비님, 칠칠치 못한 소신을 용서하소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소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번에 뇌주를 살려 보냈지만, 반드시 그놈을 죽여서 원한을 갚아드리겠습니다.”

항우는 아랑 태자비에게 술을 올리며 목 놓아 울었다. 태자비와 태손에 대한 제사를 끝내고 항우는 이어서 백조와 청조에게도 술잔을 올렸다. 그는 한때 연인이었던 백조와의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리자 더욱 설움이 복받쳤다.

“백조, 미안하다. 사랑한다.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했구나. 나를 실컷 원망하거라. 내가 죽는 날까지 너를 잊지 않을 것이야. 청조야, 나를 용서해다오. 내가 미력하여 너를 구하지 못했구나. 너희를 비명에 가게 한 반파국의 원수 두 놈을 처단하였다. 그놈들을 사주한 뇌주에게 반드시 죗값을 물을 것이다. 이제는 편히 영면에 들기 바란다.”

월광과 항우는 제사를 마치고 제주(祭酒)를 음복하면서 옛이야기를 하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월광은 관산성에서 이복형 뇌주를 살려준 일이 잘한 것인지, 아니면 괜한 짓을 한 것인지 분간이 안 갔다. 반파국에 계신 어머니 양화왕비와 월화공주를 생각하면 차마 그를 죽일 수 없었다.

“백제보다 가야연맹이 나쁘다. 그들은 한때 우리에게 고개를 조아리던 족속들이었다. 이사부 장군을 중심으로 가야연맹을 합병할 방안을 짜고 즉시 실행에 옮기도록 하시오.”

신라왕 삼맥종은 관산성 전투에서 승리한 장수와 군관들을 불러 공로를 치하하였다.

“존명, 대왕의 명을 받잡겠습니다.”

중신들은 청년왕의 명령에 고개를 숙였다.

“경들도 알다시피 이번 백제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김무력 장군은 혁혁한 전공을 세웠소이다. 월광 장군 또한 전력을 다했고요. 과인은 장차 김무력과 월광 장군을 더욱 긴요히 쓸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은 이제 신라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경들은 그들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고 진실한 가슴으로 대해주기 바랍니다. 특히, 이번에 백제왕 부여명농을 잡아 현장에서 참수하고 머리를 탈취하는데 군공을 세운 도도에게 상을 내리고 관등도 올려주세요, 그리고 부여명농의 머리는 잠시 북청(北廳) 계단 아래 묻어 두세요.”

가야 출신 김무력과 월광이 신라왕의 치하를 받자 중신들의 견제가 더욱 노골화되었다. 그만큼 자신들의 위치가 점차 흔들리게 되면서 가야 출신 왕자들이 신라의 권력 핵심으로 부상할까 두려웠다. 백제는 국왕을 잃고 큰 충격에 빠졌다.

신라와의 전쟁을 반대하던 기로(耆老)들은 발언권이 강해졌고 왕권은 나약해졌다. 성왕이 죽자 그의 장자이며 태자인 부여창(扶餘昌)이 백제 제27대 왕위에 올랐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초긴장 상태로 팽팽하게 돌아가던 가야연맹 주변국 정세가 관산성(管山城) 전투로 인하여 급변하였다. 백제 성왕(聖王) 자신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백제에 동조하여 군대를 파병했던 왜의 야마토(大和)와 가야연맹도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신라의 삼맥종 왕은 백제 연합군에 상당수의 가야연맹군이 소속되어 목숨을 걸고 싸운 일에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가야연맹 중에서 대가야로 불리는 반파국(伴跛國) 병사들이 최선두에 서서 신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사실에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반파국은 한때 신라와 혼인동맹을 맺어 돈독했던 사이라 왕의 충격은 더했다. 혼인동맹의 일환으로 신라 출신 양화왕비가 반파국의 이뇌왕(異腦王)에게 시집가서 월광태자와 월화공주를 낳았다. 신라왕을 비롯한 보도왕태후, 지소태후 등 왕실 핵심 인사들은 반파국의 행동에 대하여 분노하면서 한편으로 신라를 위하여 헌신하고 있는 월광을 격려하였다.

신라왕과 군부(軍府)는 당장 군사를 일으켜 가야연맹으로 진격하고 싶었으나 월광을 봐서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백제 연합군의 관산성 전투 패배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반파국의 이뇌왕이었다.

그가 주도하여 가야연맹을 친 백제로 돌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백제 성왕의 요구에 부응하여 상당수의 가야연맹의 군대를 백제 연합군에 소속시켰었다. 관산성 전투에는 가야연맹뿐만 아니라 다라국(多羅國), 걸손국(乞飡國), 십여 년 전에 망한 탁순국(喙淳國)의 잔당, 비사국(比斯國) 등 가야연맹 주변의 소국들도 군사를 파병하여 백제를 도왔다.

이뇌왕은 서둘러 가야연맹 회의를 개최하였다. 회의에는 아라, 성산, 소가야, 고령가야 등 연맹 소속 왕뿐만 아니라, 전쟁에 소규모로 참여한 소국의 왕들과 장자들도 참가하였다. 반파국의 도읍지는 또 한 번 시끄러웠다. 아침 일찍부터 가야연맹과 주변 소국 대표들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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