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월화공주의 방중술

“왕비, 월화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요?”

“대왕, 걱정하지 마셔요. 공주에게 초야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가르쳤습니다. 얼마 전에는 왜국 상인들이 가져온 춘화(春畫)를 서너 권 사서 넣어 주었어요.”

“춘화가 뭐요? 야마토에서 나오는 옷이오?”

이뇌왕이 멍청한 시선으로 왕비를 바라보았다. 나이가 있기는 했지만, 아직도 사내를 후리는 데 자신이 있는 왕비였다. 지난 삼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왕과 왕비는 온갖 쾌락과 호사를 누렸다.

“대왕, 그것은 첫날밤을 맞은 신부가 신랑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자세를 취하면 쉽게 수태할 수 있는지 가르치는 규방의 비서(祕書)랍니다.”

양화왕비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자 이뇌왕은 호기심이 더욱 발동하였다. 이뇌왕도 여인에 대한 편력이 대단한 사내였다. 공식적으로는 양화왕비와 가비(伽妃)가 있었지만, 가야연맹과 주변 소국에서 바친 미인들이 궁궐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궁들은 양화왕비의 시선이 무서워 선뜻 왕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왕비 이전에 가비가 이뇌왕을 독차지하였지만, 신라와 반파국 간의 혼인동맹으로 양화왕비를 맞이한 뒤로 가비는 뒷방 신세로 묵묵히 지내야 했다.

가비는 자신보다 훨씬 곱고 빼어난 미모를 지닌 양화왕비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들 뇌주가 반파국 태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양화왕비의 몸에서 도설지가 태어나면서 가비 모자는 더욱 처참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뇌주는 태자 자리에서 폐위되고 도설지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신라를 등에 업은 양화왕비와 도설지 태자는 가야연맹의 제왕들 사이에서도 존경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차기 가야연맹의 맹주는 도설지가 되는 것으로 공식화되었다. 양화왕비의 물오른 미모로 인하여 후궁들은 무료하게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뇌왕은 양화왕비의 위세에 눌려 후궁들에게 침만 흘릴 뿐 어찌할 수 없었다.

“오오, 그러니까 첫날밤뿐만 아니라 부부가 운우의 정을 나눌 때 극락과 지옥을 오고 갈 수 있는 방도를 그려놓은 화첩(畵帖)을 말하는구려. 우리도 한번 그것을 보고 시연을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이뇌왕의 장난기 어린 말에 왕비는 기가 막혔다.

“아이고 대왕님, 남사스러운 말씀 그만하셔요. 아래 것들이 알면 욕합니다.”

양화왕비는 늙은 지아비가 주책맞다며 자꾸만 술을 권했다. 왕은 히죽거리며 왕비가 건넨 술을 연신 마셔댔다. 왕비는 월화공주에게 신라왕들과 신라 왕비들이 어떻게 합방을 하고 지식을 잉태하는지 소상하게 가르쳤다.

‘어머니,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너무 부끄러워요.’

왕비는 월화공주에게 처음으로 신라왕들이 왕비나 후궁들과 방사(房事)를 갖는 방식에 대하여 알려줄 때 월화공주는 너무 부끄러워 얼굴만 붉혔다. 딸이 신라왕의 후궁으로 갈 입장이 되었기에 왕비는 딸에게 수시로 신라 왕실 여인들과 후비들 관계에 대하여 가르친 것이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아무것도 모르고 신라 왕실로 시집가는 것보다 왕실에 대하여 상세히 알고 있는 것이 운신하기에 수월할 뿐만 아니라, 신라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보도왕태후와 지소태후에게 빨리 눈에 들 수도 있었다.

신라 왕실에는 고구려나 백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혼맥(婚脈)이 있었다. 바로 왕과 혼인하는 여인을 공급하는 인통(姻統)이었다. 이 인통은 다시 어머니의 계통에 의해 진골정통 또는 대원신통(大元神統)으로 나뉘었다.

대원신통은 *보미(寶美)를 시초로 하여 모계로 내려온 혈통이다. 신라의 왕비는 이 두 모계 계통에서만 나올 수 있었고, 두 계통은 서로 왕비를 배출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현재 신라 왕실에서 대원신통 계열로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후궁이 바로 미실 궁주였다.

 * 보미 – 박제상이 왜국에 인질로 잡혀가 있는 내물왕 셋째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구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목도(木島)로 피하도록 한 여인이었으며, 이전에 미사흔과 관계하여 낳은 딸 나해와 신라로 도망쳐 왔다.

 ‘어미가 전에 너에게 가르쳤던 신라 왕실의 혼인 습관이 너에게 요긴하게 쓰일 날이 다가오는구나. 소문에 들으니 미실 궁주가 희한한 요분질로 신라왕의 정신을 빼놓고 있다고 한다.

너도 신라왕의 후궁이 되면 미실 궁주와 경쟁해야 할 거야. 우리 반파국의 운명이 어쩌면 너에게 달려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이 어미가 가르치는 다양한 방술을 잘 기억해 두고 실전을 펼칠 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해야 한다.’

‘어머니, 막상 소녀가 신라로 시집간다고 하니 떨려요. 그리고 사내와 잠자리를 해본 적이 없는지라 더더욱 떨린답니다.’

‘두려워할 거 없다.’

왕비는 지그시 눈을 감고 며칠 전 딸에게 가르쳤던 남녀의 체위(體位)를 다시 떠올렸다. 왕비는 월화공주가 신라로 시집가는 일이 정해진 뒤에 자주 불러 신라 왕실의 혼맥과 왕과의 *상합(相合)에 대하여 재차 가르쳤지만, 사내와 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 월화공주는 어려워했다.

신라는 뼈의 왕국이었다. 부모의 양계가 모두 왕종(王種)이면 성골(聖骨)이고 한쪽만 왕종일 경우 진골이라 하였다. 따라서 신라 왕실 사람들은 자신과 후손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근친상간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이상한 혼인관습은 이제 신라 왕실에 고착되다시피 했다.

* 상합 - 남녀가 육체관계를 맺는 일.

 ‘이 체위는 호보(虎步)라고 한단다. 여인에게 백병(百病)을 없어지게 하고 사내에게는 더욱 원기가 왕성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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