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가야 사신단 서라벌에 오다

“공주가 신라로 떠나고 나면 왕비님이 제일 허수해 하실 겁니다. 나는 그동안 생모인 가비에게만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왕비님에게 지극한 효성으로 모실 겁니다. 공주는 아무 염려하지 말고 신라 왕실 사람이 되더라도 조국 반파국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됩니다.

나중에 공주가 왕자나 공주를 생산하더라도 외가인 반파국이 어떤 나라인지 잘 가르쳐야 합니다. 나는 반파국에서 부왕과 두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하며 살 겁니다. 공주가 나의 충심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정말로 변한 것일까? 모주망태, 파락호 같던 자가 갑자기 이리 변하다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월화공주는 예전의 뇌주를 그리며 방금 그가 한 말을 곱씹어보았다. 친 오라비 도설지가 없는 마당에 뇌주가 먼저 부모에게 효도하겠다고 말하니 고맙기만 했다. 도설지가 반파국 태자로 있을 때 뇌주는 자주 도설지와 말다툼을 벌이곤 했다.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일 때 뇌주의 동생들은 뇌주를, 월화공주는 도설지를 편들어 싸움이 크게 번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양화왕비는 뇌주는 그냥 두고 도설지와 월화공주만 나무라며 싸움을 말렸다.

“오라버니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이 동생은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제가 신라 왕실로 시집가면 아버님과 어머님을 누가 위로해드리나 걱정했습니다. 뇌주 오라버니께서 효도하신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오라버니만 믿겠습니다.”

“공주, 서라벌에 가면 도설지 태자를 자주 만나실 테니 내 이야기도 좀 전해주세요. 이 뇌주, 이제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아버님과 왕비님은 내가 지극 정성으로 모실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뇌주는 월화공주가 신라왕과 혼인하게 되면 어차피 도설지를 통해 자신의 악행이 드러날 것을 예상했다. 자신의 악행이 드러나더라도 반파국에 양화왕비가 있으니 자신에게 보복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관산성 전투 때 뇌주는 도설지에게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신을 크게 타격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한두 잔으로 시작한 어색한 술자리가 뇌주의 세 치 혀로 인하여 어느덧 남매가 회포를 푸는 자리로 변하고 말았다. 월화공주도 진심으로 뇌주에게 다가갔다.

이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이복 남매간의 반목과 질시도 곧 끝나고 앞으로는 용서와 화합만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서라벌로 시집가는 처지로 이복 오라버니 뇌주가 스스로 부모에게 효도하겠다는데 무슨 이의를 달 것인가.

월화공주도 뇌주의 달라진 태도에 호응이라도 하는 듯 자주 ‘뇌주 오라버니’를 연호하며 잔을 부딪쳤다. 가야의 밤은 서서히 저물어 가고 밤하늘의 뭇별들만 반짝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가야연맹의 사신단을 이끌고 온 반파국 이뇌왕의 아들 뇌주와 사신들이 감히 대왕을 배견(拜見) 하나이다.”

백여 명의 사신단을 이끌고 반파국을 떠난 지 나흘 만에 뇌주가 서라벌 신라궁에 들어 삼맥종 왕을 배견하고 예를 올렸다. 대전에는 신라 문무백관과 왕실 인사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조쌀해 보이는 보도왕태후와 야살스러워 보이는 지소태후도 자리하고 있는데, 두 여인은 오로지 독한 눈씨로 월화공주만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백여 명의 가야연맹 사신단이 서라벌에 진입했을 때 서라벌 사람들은 그들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서라벌의 화려하고 번화한 모습에 가야 사신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전 처음 보는 금입택과 주작대로 좌우로 거대한 건물들의 웅장한 모습에 사신단들은 기가 죽었다. 서라벌에는 초가(草家)가 한 채도 없었다. 모두 고래 등 같은 기와집 일색이었다.

그들이 신라의 정궁인 월성(月城)에 들어왔을 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숭례전(崇禮殿), 월정당(月正堂), 영명궁(永明宮), 월지궁(月池宮,) 내황전(內黃殿) 등을 둘러보고서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먼 길에 노고가 많았습니다. 이뇌왕이 직접 사신단을 이끌고 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떻든 가야연맹에서 많은 사신이 왔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가야연맹과 우리 신라는 예전부터 교역이 빈번하였고 많은 사람이 왕래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리해야 할 것입니다. 예전에 양국은 혼인동맹을 맺어 고구려와 백제의 야욕을 분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하여 동맹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라도 가야가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우리 신라에게 의지하고자 하니 과인은 가야연맹의 뜻을 기껍게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또한, 반파국의 월화공주를 과인의 후비(后妃)로 맞이하여 지극한 부부의 우애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반파국의 양화왕비는 신라 왕실 출신입니다. 이 사람에게 할머님이 되십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반파국 월화공주는 그 뿌리가 신라 왕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뇌왕과 양화왕비께서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을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흔쾌히 두 분의 깊은 뜻을 헤아려 양국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희망합니다. 나머지 세세한 사항은 양국의 담당 부서의 중신들이 알아서 검토하고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이나 협상을 지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맥종 왕의 능변(能辯)에 신라 중신들과 가야연맹의 사신들은 얼굴이 펴지며 안도하였다. 행여 왕이 예상 밖의 응수를 하면 어쩌나 하고 긴장하던 사신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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